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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19. 2020

[DAY21] 점점 늘어가는 요리 실력

지수 일상 in Croatia


화요일은 Strategy management 강의하는 날. 한 시간 정도 한국의 대학교 방식으로 강의를 한 후, 나머지 한 시간~한 시간 반 동안은 세미나로 보충학습 또는 에세이를 쓰는 시간을 가진다. 지난주에 한번 해봐서 그런지 오늘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우선 에세이 주제에 맞는 내용을 한국말로 생각해보고 조금 끄적여 본다. 얼추 하고자 하는 말의 구성을 잡아 놓으면 거기에 나의 초라한 영어실력을 덧붙여 영어로 에세이를 작성한다. 그러고 나서 교환학생들의 찬스인 구글 번역기로 마지막 문법 및 문장 체크까지! 이런 방식을 하다 보니 이제 더 이상 영어로 에세이 쓰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대신 교수님은 구글 번역기의 존재를 몰라야 함) 어쨌든 가벼운 마음으로 에세를 끝내니 학교에서 해야 할 오늘의 수업을 모두 끝났다. 조금 싱겁긴 해도 스라벨이(스터디 앤 라이프 밸런스) 굉장해서 마음에 든다. 날씨도 좋으니 오랜만에 걸어서 집에 가봐야겠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걸어갈 때 꽃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일주일 차이이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집 담벼락에는 산수유인지 노란 꽃도 피고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팝콘인 것 마냥 알알이 화창하게 핀 꽃까지. 걸어가는 내내 너무 기분이 좋았다. 정말 봄이 자그레브에 찾아왔나 보다.



분명 나올 때는 추워서 양털 재킷을 입었는데 돌아가는 내내 너무나도 더워서 재킷을 벗어 들고 있는 팔조차도 더웠다. 한 20분을 걸었을까? 한참을 걷다가 결국 더워서 트램을 타고 광장까지 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꽃놀이를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매우 따스했다.(실제로도 햇살이 너무나도 따스해서 더워 미치는 줄 알았다. 한국에서 널리고 널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



겨울 내내 자그레브의 중심가 옐라치치 광장에서는 크로아티아의 각종 특산물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장터가 열렸다. 한국으로 치면 각 지방의 특산물을 소개하기 위한 농협의 벼룩시장 정도? 한창 추웠던 지난주까지만 해도 커다란 돔 안에서 행사가 주로 열렸다. 하지만 꽃이 활짝 피어난 봄이 다가와서 일까. 동유럽 분위기 폴폴 나는 자판으로 나와 특산물을 소개하는 장터가 열렸다. 이렇게 보니 내가 여행잡지에서 본 크로아티아 특유의 느낌이 물씬 났다. 자그레브에서 산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여행 다닐 국가가 많이 남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직 살 것은 없었지만 구경하는 것은 매번 재미있다.



바람도 솔솔 부는 자그레브. 하루 중 가장 여유롭고 좋아하는 시간이다. 잠시 책을 읽기도 하고 한국의 예능을 노트북으로 찾아보기도 하는 이 시간. 하지만 주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가장 많이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다.



룸메이트랑 함께 문방구도 갔다가 화장품 샵도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러 외출을 했다. 볼일을 모두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학교 갈 때마다 항상 가게에 있는 사람들 반 또는 피자 반을 구경했던 피자가게에 들렀다. 다양한 맛을 선택할 수 있는 조각피자가게였지만 선택 장애가 있는 나는 첫 시도로 익숙한 페페로니 피자를 주문했다. 혜진이가 물려주고 간 핫소스를 뿌려 먹으니 조금 식은 피자여도 맛있었다. 콜라나 맥주처럼 탄산 가득한 음료를 못 먹은 게 아쉬울 따름. 하지만 다시 나가서 사 오기는 귀찮은걸?



학교로부터 교환학생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미리 살펴본 교환학생 일지에는 개강 전 학교 측에서 마련한 오리엔테이션을 참여하라는 소식을 글로 배웠다. 꼭 참여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행사는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 학부에서 조촐하게 마련한 자리를 참석할 수 있도록 메일까지 보내주다니. 조금 섭섭했지만 불쌍한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마음으로 챙겨주는 느낌이라 재빠르게 참석 요일을 체크했다. 드디어 우리 경상대도 모이는 건가... 진작 했어야 했어.



요리가 자취를 하면 할수록 늘어간다. 조금 부담스럽기도 한데 어쩌겠는가. 백종원 선생님 제자까지는 못하더라도 얼추 색 입히는 것이나 맛없지 않은 반찬이나 음식을 만드는 것은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룸메이트와 제육볶음을 만들었다. 보통은 얇은 고기로 만들지만 자그레브에서는 그런 고기를 얻기 위해 크로아티아어로 점원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굳이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있을까? 숭덩숭덩 자를 수 있는 고기 중 비계가 많은 삼겹살은 구할 수 없어 목살로 만들었다. 하지만 부드럽고 양념이 흰 밥이랑 먹으면 딱 좋을 정도로 적당히 짭조름했다. (사실 설탕도 부족했고 맛 내는 스킬이 부족해 눈대중으로 만든 제육볶음인데. 맙소사. 좋은 건 한번 더 봐야 한다는 생각에 확대해서 한번 더 보기. 



놀랍다 아주. 일주일 동안 (실제로 쓴 건 하루)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를 모두 받아가며 작성한 Short essay를 드디어 끝냈다. 한국어로 쓰면 에세이의 질은 보장 못하지만 그래도 양으로 승부한답시고 휘갈겨서라도 제출할 텐데, 자그레브에서는 그것마저 쉽지 않다. 영어로 써야 하는 것과 동시에 글자 수도 정해져 있어서 정말 짜증을 내면서 작성했다. 글에도 나의 감정이 들어가 있을 까 봐 걱정되긴 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글, 성적 잘 부탁한다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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