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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05. 2020

[DAY1] 기대되는 첫날의 노을

지수 일상 in Croatia

인천 국제공항에서 카타르의 도하까지 약 11시간, 도하에서 대기만 2시간 반, 그러고 나서 도하에서 약 6시간 비행을 하면 도착하는 곳,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사실 꽃보다 누나가 방영된 이후에 대한항공에서 자그레브까지 11시간밖에 안 걸리는 직항 편이 있다. 하지만 아끼고 아껴야 살아남는 대학생에게 고작 몇십만 원은 거금 몇십만 원이라 선택권이 없었다.



그 누구도 함께 하지 않는 비행이라는 사실에 보딩 전부터 조금 긴장했지만 그래도 비행보다 자그레브에 적응할 생각이 들어서일까. 비행기에 타고 나서부터는 자그레브 공항에 내려서 집까지 찾아갈 걱정이 더 많이 되었다. 기내식을 잘 소화 못하는 위장 덕분에 비행 내내 잘 먹지 못했고, 자그레브에 도착해서는 룸메이트 선아를 찾고 나서야 비로소 허기가 몰려왔다. 깔끔하게 씻고 대구에서부터 출발한 여정이었지만 집에서부터 나선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인지 꾀죄죄한 생쥐꼴이었다.(고등학교 때 얻게 된 수많은 별명 중 하나가 "시골쥐 더 냄시지" 였다... 사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지만 착착 입에 붙는 말 때문에 고3 한 달 정도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왜 갑자기 생각난 거지?)


2월 말 자그레브의 날씨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사실 추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모든 것이 새로웠던 첫날 처음 만난 룸메이트의 환대, 오랜 시간 동안 공들인 내 첫 자취방, 구글 로드뷰로만 살펴본 자그레브 시내의 분위기 등등 정신없이 다가온 첫날의 활기가 나에게 매우 따뜻하게 다가왔다. 입고 있던 외투는 벗어던질 만큼. 사실 추울까봐 히트텍(노재팬 시국 터지기 전이라서 이해부탁ㅠㅠ)도 입고 기모처리된 GAP후드티도 입어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부분...


우버를 타고 도착한 나의 첫 자취방에 대한 설명은 차차 풀어봐야겠다.(할말하않) 대충 짐을 풀고 선아와 나는 점심을 먹으러 시내로 나섰다. 사실 우리의 자취방이 시내 중심에 위치해서 5분만 걸어 나가면 맛집 투성이었다. 그중 트러플이 유명한 크로아티아에서 트러플 버거로 유명한 OTTO&FRANK로 발길을 재촉했다. 선아는 트러플 버거, 나는 OTTO&FRANK의 스페셜 버거를 주문했다. 시원한 맥주로 잠시 목을 축이고 있으니 주문한 버거가 금방 나왔고 먹는 내내 너무 행복했다. 근데 먹다 보니 나는 너무 맛있는데 선아는 평범하다고 해서 바꿔 먹어봤는데 글쎄... 내가 트러플 버거를 먹고 있던 게 아닌가. 어쩐지 너무 맛있더라. 결국 버거를 반반 나눠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여유를 즐겼다. 동네를 둘러볼 새도 없이 중개인 Sandro와 약속을 잡아놓았던 터라 근처 마트에서 장만 약간 본 후 집으로 돌아왔다.



Sandro와 필요한 서류를 주고받으며 어른 흉내를 내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시차 적응에 실패하지 않으려고 30kg+9kg짜리 짐 정리도 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한 후 대학 친구 재은이가 선물해준 스누피 잠옷으로도 갈아입으며 나름 일분일초를 버텼다. (스누피 잠옷을 입고 드는 생각은 자그레브에서 내가 제일 귀여운 잠옷을 입고 자는 사람임이 틀림없다는 것) 생애 처음으로 냄비밥까지 해 먹고 난 후, 문득 창밖을 보니 너무나도 예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유럽에서 내가 살다니...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아빠 없는 곳에서 살게 된 것이 가장 낯설었다.

앞으로 5개월, 기대되는 첫날의 노을이 눈부시게 예쁘다.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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