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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05. 2020

[DAY2] 반갑다 친구야

지수 일상 in Croatia

다행이다.

눈꺼풀이 감기는데도 허벅지를 찌르며 참았던 덕분인지 다행히 시차 적응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잠자는 데 있어서는 꽤 예민한 편이라 자주 깨는데 앞으로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꿀잠 잤다. 크로아티아는 출국 전 따로 비자 신청을 하지 않고 도착 후 경찰서에서 거주 신청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때문에 도착 이틀 차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아침 일찍 룸메이트와 경찰서에 가서 90일 동안 유효한 여행자 비자를 우선 신청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침이라 그런지 살갗이 조금 따가울 정도로 쌀쌀한 온도와 동시에 따스한 햇살도 동시에 나를 비추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 싫어도 이 맛에 다들 일어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후다닥 경찰서에서 서류 처리를 하고 나는 학교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또 다른 길을 나섰다.


한국에서 나는 한 달에 100GB 조금 모자라게 데이터를 사용하는 헤비 유저이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데이터 유심도 집에 두고 오고, 와이파이도 없이 길을 나섰다. 내 칠칠맞음을 누구에게 탓하랴. 학교 가는 길에 창밖을 구경하고 있으니 와이파이 없는 삶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그래 놓고 모든 신경은 곤두세워 지금 생각해보면 인상은 더러웠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다니게 될 경제경영대학교는 오픈 캠퍼스였는데 생각보다 조그마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 벽에 그래피티도 많고 구석구석 풀도 많아서일까 캠퍼스라는 생각보다는 사무실 건물처럼 생겨 조금은 실망했다. 그래도 길 잃어버릴 일은 없겠다고 생각하며 학교와 은행을 오가다 보니 1시간도 채 안돼서 모든 일처리가 끝났다. 사실 학교 후배인 지원이와 캠퍼스에서 보기로 했었지만 데이터 안 되는 벽돌폰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연락할 길도 없었고 결국 다시 옐라치치 광장으로 돌아와 혼자 아점을 카페에서 먹었다.



오후에는 특별한 일정이 있었다. 바로 대학교 조별과제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혜진이를 자그레브에서 만나기로 한 것! 사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면 말이 너무 길어 지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이곳에 오기 직전 학기에 혜진이가 자그레브 교환학생으로 왔고 우리가 만나는 날이 마침 혜진이가 자그레브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자취 선배인 혜진이에게 약 3만 원을 주고 사는데 필요한 밥솥, 전기포트, 프라이팬, 양념, 과자 등등을 토스받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짐 정리하느라 정신을 빼놓은 혜진이가 지각한 탓에 옐라치치 광장에서 조금 뻘쭘하게 기다렸지만 약 7개월 만에 얼굴을 봐서 그런지 보자마자 반가움에 얼싸안고 포옹을 했다. 걸걸해진 목소리로 미친 듯이 환영해주는 혜진이는 자그레브 선배로서 이곳을 소개해주겠다며 골목 구석구석을 지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으로 나는 데려갔다.



역시 유럽은 햇빛이 눈 부시다.

저기 멀리 보이는 높은 건물은 아직도 복원 중인 오래된 자그레브 성당이다. 방송 "꽃보다 누나"의 김희애와 김자옥 씨가 이곳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종교와 상관없이 나도 나중에 꼭 들어가 보고 싶다. 혜진이 따라서 설렁설렁 걷다 보니 여행책에서만 보았던 성마르크 교회도 볼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국기부터 교회까지 빨강. 파랑이 많이 눈에 띄어서 그런지 생동감이 넘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불량배들이 담배 하나 물고 있을 법한 힙한 골목에서 사진도 찍고 난 후, 점심이 지난 시간에 만나 카페를 갈까 고민하다가 유명한 젤라토 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식간에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먹는 것에 있어서 조금은 보수적인 나는 역시나 만만한 레몬, 하지만 자그레브 짬바가 있는 혜진이는 피스타치오를 골랐다. 역시. 뭐든 현지인(?)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걸 한 번 더 배웠다. 젤라토 맛집 빈첵에 들린다면 무조건 피스타치오는 먹자.


밥솥을 받기 위해 혜진이 집에 들렀다가 그녀의 짐 폭발 현장을 직접 목격하면서 배운 것 하나. 쇼핑은 너무 많이 하지 말자.(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울까. 나도 역시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다짐은 아무 쓰잘데도 없는 말 뿐이었다.) 만난 기념으로 그녀는 사진 한 장도 인화해주었다. 역시 다꾸의 신 다운 고급 장비.


귀가하는 길에 룸메이트 선아와 함께 들어가려고 근처 광장에 잠깐 앉았다. 집 앞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될 인가. 이틀 차밖에 안되었는데 눈호강을 너무 많이 해서 아찔했다. 시끌벅적한 광장 한편에 위치한 꽃집에서 언젠가 꽃 한 다발을 사서 집에 꽂아두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하기도 했다.

친구야 잘 가, 나는 여기서 잘 살아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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