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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05. 2020

[DAY3] 활기 넘치는 시장 바이브

지수 일상 in Croatia

축구의 나라 크로아티아. 제대로 느껴버렸다.

전날 새벽 3시까지 근처 펍에서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는데 소리에 예민한 나에게는 귀에 바로 꽂혀버렸다. 나는 계속해서 뒤척이다가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짜증 가득한 밤을 보냈다. 시내 근처에 집을 구한 게 잘못한 걸까. 약 3달 동안 밤마다 발품 팔아가며 구한 집인데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네이버에 자그레브를 검색했다. 2018/2019 유럽연맹 유로파리그 32강 2차전에서 크로아티아가 체코에 3-0 완승을 가졌단다. 아하. 이 경우라면 이해해야지 암. 전날 밤 왜 다들 집에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음악에 몸을 맡겼는지 이해가 단박에 되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앞으로는 노랫소리가 문밖으로 안 새어나가도록 조심들 해줘, 자그레브 친구들아?



폭풍우가 지난 아침은 다행히 조용했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던 아침, 시차 적응을 한 것 같았지만 순 거짓말쟁이 몸이었나 보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결국 깨버렸고 눈만 뜬 좀비 같았다. 하지만 잠은 안 오는 이상한 신체리듬 때문에 의도치 않은 아침형 인간 노릇을 했다. 매일 아침식사로 사과 한 개와 요거트, 뮤즐리를 한국에서부터 먹어서 그런지 자그레브에서도 배 굶지 않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사실 뭐 먹을지 고민하는걸 굉장히 싫어하는 귀차니즘이라 이런 루틴이 고민 없이 매일 아침을 시작할 수 있는 나만의 소소한 의식인 셈이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친 후, 나와 룸메이트는 자그레브의 유명한 노천 시장인 '돌라츠 시장'을 방문했다. 유럽의 유명한 시장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 매일장인 이곳은 크로아티아의 물가가 얼마나 저렴한지 알 수 있는 곳이었다. 귤 2kg에 10쿠나라니. 한국 돈으로 약 1700원 정도 되는데 제주 귤만큼 달고 맛있었다. 한국에 살면서 한 번도 내 돈으로 귤을 사본적이 없는데 이런 소소한 것에서도 자취하는 느낌이 들어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새삼 뿌듯했다. 매일 아침 먹을 사과도 구매했는데 더 기가 막힌다. 3kg에 10쿠나밖에 안 해서 아싸 하는 마음에 구매했지만 시장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어서 무려 과일만 5kg를 사버려서 낑낑대면서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다녀야 했다.



노천 시장 아래 지하로 가면 수많은 상점이 있는데 그중 수제 파스타 가게가 눈에 띄었다. 내가 아는 거라곤 소면보다는 조금 더 굵은 스파게티 면과 널따란 링귀네 면밖에 몰랐는데 이렇게 종류가 다양했다니. 크로아티아와 멀지 않은 곳에 이탈리아가 있다. 파스타가 거의 주식이라고 해도 무방한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크로아티아도 파스타에 진심인가 보다. 옆으로 가니 하몽처럼 생고기를 소금 처리한 고기와 소시지를 파는 집까지. 시장 구경하는데 시간 가는지 모르고 구경했다. 한창 장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꽃모종을 파는 곳을 발견했는데 엄마랑 대구 칠성시장에 봄마다 꽃 사러 갔던 게 문득 생각나서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기도 했다.



이것저것 장 본 것을 이고 지고 집에 왔더니 힘이 쪼옥 빠져버렸다. 대충 냉장고에 정리해놓고 잠깐 쉬다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 것 마냥 금방 또 집 밖으로 나왔다. 광장 주변 카페 'cogito coffee'로 구글 지도를 켜고 호다닥 도착했다. 자그레브의 감성카페란 이런 곳을 말하는 걸까. 조금은 투박하게 느껴지는 자그레브의 일반적인 카페들과 달리 아기자기하고 북유럽을 연상케 하는 카페 입구에서부터 나의 블로거 습성이 꿈틀거렸다. 한국에서 이곳 자그레브로 파견된 단 2명. 그중 한 명은 나였고 나머지 한 명은 나보다 한 살 어린 후배인 지원이다. 출국 직전 딱 한번 만나고 자그레브에서 두 번째로 봤던 우리는 카페의 분위기 때문일까. 커피를 주문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이날은 학교 시간표를 짜기 위해 만나는 자리였다. 머리를 맞대고 부지런히 짰지만 마음에 쏙 드는 시간표는 만들 수 없었고 결국 나는 여행을 위해 학점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월화수만 수업하고 목금토일은 놀러 다녀야지. 그게 교환학생의 특권 아니겠는가. 우유맛이 조금 강했지만 그래도 카페라테가 16쿠나, 한국돈으로 2700원밖에 안 하는 착한 가격 때문에 만족한 cogito coffee에서의 첫 경험. 나중에 또 와야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즈음, 집에 와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동생이 보여준 반려묘 치즈의 얼굴. 웃기게도 가족들보다는 치즈를 쓰다듬고 싶어서 더 속상했다. 그래 봤자 치즈는 날 기억도 못하겠지. 맨날 나만 아쉬운 쪽이다. 역시 집사는 평생 짝사랑하는 존재라더니 맞는 말인 거 같다. 평소 돼지고기를 좋아하지만 450g에 5천 원도 안 하는 파격적인 가격에 이날은 소고기를 구매했다. 그리고 돌라츠 시장에서 구매한 10쿠나인 가성비 갑 미니양배추도 곁들여 푸짐한 저녁식사를 했다.



하루를 알차게 보낸 것 같아 뿌듯한 금요일 하늘이 분홍 빛으로 조금씩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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