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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05. 2020

[DAY4,5] 여유 가득한 주말

지수 일상 in Croatia

미세먼지가 무슨 뜻인지 가늠도 못할 이 곳의 공기.

한국은 겨울에도 종종 미세먼지가 끼인 하늘을 자주 보기에 마음껏 숨 쉰다는 생각은 일 년에 한두 번 산에 올라갈 때만 스치듯이 경험할 수 있는 나라였다(서울에서 살지 않는 나도 해당사항이었다). 렌즈를 대학교 입학하고부터 계속 껴온 나에게는 만성 안구건조증까지 가져다준 골칫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힘차게 숨을 쉬어본다. 흠하. 사소한 거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고 자그레브의 하늘 디폴트 값에도 점차 익숙해져 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난 덕분에 아침형 인간 흉내를 내고자 산책길을 나섰다.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도 여느 유럽 도시처럼 일요일에는 마트 문이 닫는다. 시내 한복판에 사는 나의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쫄쫄 굶는 주말은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장바구니(에코백)도 챙겨 출발했다. 복합 몰 앞에 위치한 꽃집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돌아갔다. 아직 꽃을 사기에는 춥다는 핑계로 오늘도 꽃다발 구매는 나중으로 미루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눈 길이 가는 동네 꽃집이라 안 여는 날이 생기면 왜 안 열지라는 생각에 혼자 오만가지 소설도 쓸 것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맞다. 사실 말은 안 해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쓸데없는 것들에게 애착을 잘 두는 편에 속한다. 그럼 어떤가. 이제는 미우나 고우나 4개월 동안 매일 보게 될 동네 주민 아닌가?



오늘도 한국보다 훨씬 싼 시장 물가에 감탄하며 장 본 것을 집으로 이고 지고 왔다. 자그레브에 온 첫날부터 유럽의 전형적인 대문을 한 번에 뚝딱하고 열어서일까. 한국처럼 비밀번호를 누르는 형태도 아닌 열쇠를 여전히 고수하는 자그레브의 방식도 새삼 마음에 들었다. 나무 문이지만 무지막지하게 무겁고 큰 문 크기에 도둑은 안 들겠다 싶은 든든한 우리 집 대문, 한번 구경하고 가세요!



저녁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스타를 만들었다. 재료는 캔 토마토, 양송이버섯, 양파만 넣은 간단한 토마토 파스타. 양 조절은 실패했지만 나름 먹을만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맛보라며 줄 정도는 아닌 딱 그 정도.


다음날,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일으켜 난방을 최고로 올렸다. 자그레브로 온 이후로 가장 추웠던 날인 것 같다. (오기 전 전기장판 구매를 고민했는데 결제까지 하지 않은 과거의 내가 미웠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새의 짹짹 소리만 분명하게 들릴 뿐 너무나도 조용했다. 잠을 깨기 위한다는 핑계로 오늘도 선택한 나의 아침, 요거트. 언제까지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점심시간에 훌쩍 지난 시간, 집에만 있기에는 찌뿌둥해서 평소에는 절대 시도하지 않는 산책을 혼자서, 외투만 입고  가볍게 나섰다. 감성적이게 보이는 집 복도 창문. 사실은 창문도 깨져있고 화분 속 식물도 말라비틀어져있다. 이걸 감성이라고 찍은 나도 엄청난 콩깍지가 씌었나 보다.



지나다니는 차도 없고, 트램 또한 보이지 않았다. 걷다 보니 발견한 크로아티아의 신기한 주차법. 인도와 차도 사이에 위치한 자전거 공간, 그리고 좁디좁은 골목에 놓인 주차공간 때문에 대부분은 일방통행. 보드게임 중 ‘rush hour’이 생각났다. 정처 없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카페도 점찍어 두고 알록달록한 건물 외벽을 구경하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자그레브 살이 선배였던 혜진이와 갔던 전망대를 다시 가보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 발견한 ‘푸니쿨라’ 너무나도 짧은 거리에 타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심심치 않게 인스타그램 속 인증사진을 발견하면서 허투루 돈 쓰지 않는 나도 한 번쯤 타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역시 나는 타지 않았다.)



반짝이는 햇살에 눈이 부시기도 했지만 탁 트인 곳을 바라보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자그레브에는 생각보다 많은 갤러리가 있다. 이곳에 오기 전 구글 로드뷰를 살펴보며 다녀와볼 만한 곳을 집어놓은 목록만 봐도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중에는 실연 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도 있다. 이걸 들으니 자그레브의 전시가 어느 정도 레벨인지 감이 오는가? 벽에 포스터를 다닥다닥 붙여놓은 게 신기해서 이 곳도 한번 시간 날 때 와 봐야겠다.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집에 가니 손이 엄청 차가워져서 댕강 떨어지는 줄 알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냥 좋았다. 그래도 앞으로는 더 추워질 일은 없겠지? 제발 화창만 하여라. 자그레브에서 보낸 첫 주, 개강하면 정신없고 조금은 스트레스받겠지만 새로운 경험 한다고 셀프로 다독이며 극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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