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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06. 2020

[DAY6] 개 강해져야 하는 개강 첫날

지수 일상 in Croatia

드디어 그날이 왔다. 바로 개강. 한국에서도 미룰 수만 있다면 최대한 미루고 싶은 게 개강인데 낯선 땅에서 마주하는 개강이라니. 후배 지원이와 머리를 싸매고 짠 시간표대로 월요일은 오리엔테이션 2개를 참석해야 했다. 첫날이니까 기죽지 않게 최대한 깔끔하게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추운 등굣길이지만 설레서 그런가 트램을 탄 후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느라 전혀 춥지 않았다. 약 15분 정도 17번 트램을 타고 내리니 경제경영대학 건물이 바로 보였다. 건물 입구에 다다르니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로서는 입구 코앞에서 담배냄새 풀풀 풍기는 게 더 신기했지만 그들은 아닌가 보다. 오히려 동양인을 처음 보는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고 자발적 아싸인 나는 살짝 기죽은 채로 건물을 후다닥 들어갔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라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찍 온 탓인지 교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 비하면 노후화된 강의실이었지만 생각보다 깔끔해서 첫인상은 긍정적으로 기억된다. 대신 앉고 설 때마다 삐그덕거리는 의자 소리는 빼고. “나 일어나요”라는 티를 한 바가지로 내는 의자다. 사실 혜진이에게 물어보니 이 강의실이 가장 최신식이라고 한다... 예정된 수업시간이 다가오니 학생들로 교실은 점차 채워졌고 내 마음도 두근거려왔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우리는 20분을 눈만 뜬 채로 앉아있었다. 한국이었으면 바로 휴강 인가 하고 나갔겠지만 이방인인걸 어찌하겠는가. 그러던 중 한 학생이 들어왔고 1시간 후에 오리엔테이션을 하겠다는 허무한 말을 하고 떠났다. 달갑지 않은 쉬는 시간을 얻은 우리는 배나 채우자라는 마음에 학교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말만 카페테리아고 학교 급식 축소판 같은 곳이 나왔다. 학생들은 크로아티아어로 적힌 종이를 보고 메뉴를 정했고 우리도 낯선 크로아티아어를 보며 수수께끼를 풀 듯이 메뉴를 골랐다. 현지인 말을 따르는 게 최고라는 신념 하에 어깨너머로 다른 학생이 고른 메뉴를 나 또한 주문했다. 감자튀김과 콜라 한 병. 감자튀김이 4.55쿠나라니. 나중에 알고 보니 유럽인 교환학생인 에라스무스는 2쿠나밖에 안 한단다. 400원이라니 소꿉장난 같다.



주문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한 공간에는 미니 카페가 있었고 음식을 찾으러 간 후배를 잠시 기다리는 사이 카페 분위기를 잠시 느껴보았다. 한국에서는 보통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음료를 찾아가는 편이다. 하지만 이곳 크로아티아(아마 유럽 대부분이)에서는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지고 온 후 주문을 받는 시스템인가 보다. 다음에 카페에 가면 허둥대지 말고 곁눈질로 배운 걸 써먹어야겠다.



아. 왜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을까. 감자튀김에는 케첩이 필수인데. 퍽퍽해서 목 막혀 죽어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나의 첫 카페테리아 메뉴를 조금 집어먹다가 거의 남겼다.


개강 첫날 오리엔테이션인데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2시간 풀로 수업하셨고 심지어 미니 조별과제도 시키셨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이 수업을 들으면 나는 공부해야 한다. 한국에서 크로아티아로 온 가장 큰 목적은 여행이었는데 말도 안 된다. 당장 드롭해야겠다. 집에 오니 진이 다 빠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입에 풀칠은 하자는 마음에 먹고 남은 소고기를 구워 푸짐하게 먹었다. 걱정, 근심이 가득하면 입맛 없다더니 나는 해당사항이 아닌가 보다. 풀칠은 개뿔 기름칠 제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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