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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22. 2020

[DAY25] 바쁘다 바빠, 덴마크?

지수 일상 in Denmark


어제 점심을 춥고, 배고픈데 급하게 먹어서인지 둘 다 체 해 버렸다. 결국 저녁으로 사 온 베이글을 한 입도 대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온돌은 아니지만 방 안 공기라도 따뜻하게 해야 할 것 같아서 히터를 빵빵하게 틀었는데 다행히 아침에는 아픈 구석 없이 싹 나았다. 아침으로 어제 사온 베이글을 한입 베어 물었는데, 아니 글쎄 왜 이렇게 맛있는 거지? 덴마크에 와서 먹은 것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맛있었다. 분명 베이글 가게는 거의 맛은 포기할 정도로 허접하지만 가까워서 들어간 곳이었는데?


 

아침 9시 반 캐널 투어를 하기 위해 페리 타러 가는 길.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갔더니 알록달록한 벽이 가득한 골목을 만날 수 있었다. 여행은 낯선 곳 중에서 제일 낯선 곳을 발견할 때 제일 가슴 뛰는 것 같다.



출발하기 전, 페리에서 남은 베이글까지 챙겨 먹으며 첫 캐널 투어를 준비했다. 코펜하겐은 오래된 항구 도시여서 그런지 심심치 않게 큰 사이즈인 배를 찾아볼 수 있었다.



엄청 낮은 다리 아래로 조그마한 우리 배가 지나가기도 하고 물길을 가르며 구름 사이로 햇빛이 쨍-하게 들어오는 배 뒤로 가서 차가운 공기도 마셔보니 뉘 하운에 금세 도착했다. 이곳에 오기 직전, 국경 없는 포차라는TV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여러 해외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포차를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이곳 뉘 하운이 나오는 장면이 등장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풍경부터 낯선 분위기까지. 알록달록한 뉘하운의 건물들을 배경으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한 외국인의 사진을 찍어준 대가로 우리도 한 장 찍어주었는데 역시 사진은 한국인이 제일 잘 찍는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Huji film.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 보니 벌써 출발할 시간. 캐널 투어인 까닭에 패키지여행처럼 정해진 시간에 맞춰 단체로 이동을 해야 했는데 조금 더 돌아보지 못한 점은 아쉽다.



옥색?처럼 보이는 덴마크 해군 함대와 수상가옥인 것 마냥 물 위에 둥둥 떠있는 건물도 보고 현재 덴마크 왕족들이 살고 있다는 아멜리엔보르왕궁을 구경하다 보니 으응?? 저기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제가 생각하는 그곳 인가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동상이 있다고 해서 시간을 내서라도 보러 갈까 했는데 안 가길 잘한 것 같다. 사람들이 저 동상 앞에서 사진 찍는다고 그 앞에만 모여있고 주변은 물과 돌만 존재하고 그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투어 내내 귀여워서 힐끔힐끔 쳐다봤던 가족. 남자 아기가 나랑 눈을 마주쳤으면서도 안 본 척 고개를 돌리거나 숨바꼭질하듯이 부끄러워서 계속 숨고.



투어 마치자마자 발걸음을 옮겨 다음 코스로 슝-! 어제 시위대에 둘러싸여 못 갔던 크리스티안보르 왕궁을 다시 갔다. 안내하기로는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다고는 하지만 짐작하기로는 청소하기 귀찮으니까 관람객들에게 신발 양말을 신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로마에 왔으니 로마 법을 따라야겠지?



예은이가 이 사진을 보자마자 나에게 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덴마크에는 한국에 팬이 있을 정도로 귀여운 왕자가 있는데 사진 속에는 없지만 그 아이의 부모가 덴마크 왕족 서열 1위라고 한다.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왕과 왕비가 한국 별명으로는 근엄이 근숙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부모님이라고 한다. 이름조차도 귀여워 죽겠다.



레드카펫을 따라 올라갔더니 덴마크 왕궁 표식의 카펫과 샹들리에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여러 개로 연결된 방을 지나 한 공간으로 들어가니 엄청나게 큰 규모의 가족 초상화가 한쪽 벽을 채우고 있었다. 그림 앞에서 나와 예은이는 입 벌리며 한참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가이드를 따라 방으로 한 무리가 들어왔다. 그림 속 인물에 대해 한 명 한 명 설명해주는 가이드의 목소리에 우리도 귀를 기울였고 혼자였다면 알 수 없을 숨겨진 이야기를 많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 보존된 카펫이 엄청난 규모의 대형 홀 벽면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규모에 놀랐지만 문득 보다 보니 뭉... 크? 이삭을 줍는 여인...? 유명한 여러 미술작품이 숨어있어서 찾는 재미가 있었다. 너무 많아서 중간에 흥미를 잃어버리긴 했지만^^



딱 51명만 앉을 수 있다는 다이닝룸. 샹들리에 사이즈 좀 봐. 이곳에서 너무 화려한 샹들리에를 많이 봐서 그런가 이제는 샹들리에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왕비만을 위한 도서관. 이곳에도 어김없이 샹들리에가 있었고 많은 책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방 한쪽을 살펴보니 유리관? 같은 게 설치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엘리베이터!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한 사람만을 위한 엘리베이터인 것이다. 어이없음에 피식 웃었는데 내 옆에서 다른 할아버지가 비웃었다. 왜 한 층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있냐며,,,,저도 웃겨요.



다 보고 나와서 만난 지나칠 수 없는 기프트샵. 너무 귀여운 뉘 하운 블록을 발견했지만 쓸데없이 비싸서 제자리에 두고 왔다.... 눈물 나.



방금 본 리셉션 옆에 위치한 다른 전시관. 다시 봐도 여긴 뭔지 의문이다.... 나도 알고 싶다......(여기 무슨 전시실인지 알려주실 분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궁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지하까지 내려갔다 왔더니 벌써부터 지치는 이 기분? 그래도 아직 볼게 많으니 얼른 발을 바쁘게 움직여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의 키친을 가보자. 궁전의 부엌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많은 식기들과 냄비가 전시되어 있었다. 스테인리스는 아닌 것 같은데도 냄비가 엄청나게 빤짝거려서 눈길을 끌었고 동시에 요리하는 듯한 모형과 소리도 실감 나게 설치해놔서 신기했다. 이 곳에 있는 것들은 뛰어가다가 순간 쳐다봐도 비싸 보이는 것들이었다.(이런 거 좋아함)



그러고 나서  벽면에 걸린 TV에는  공간에서 찍은 듯한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영상에서  여자아이가  등장했는데 음식 만드는 주방장 주변을 서성이며 선반 아래에 숨어 몰래 지켜보길래 뭐지 싶었다. 희한한 아이다라고 생각하며 마카롱과 같은 예쁜 디저트들을 보고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기 위해 움직였는데, 소름. 덴마크애들 이런 취미 있는  몰랐네? 정말 creepy 해서 소름돋아버ㄹ렸다...



우리는 코펜하겐 카드 뽕을 뽑아야 해서 먼길을 떠납니다! 그 길, 배고플 수는 없기에 요거트로 유명한 덴마크 요거트를 마트에서 집어와 기차에서 먹방 했다. 평소에도 요거트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크론보르 성 이 있는 마을에 도착!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꾸리꾸리 한 하늘. 역시 이 곳에도 성 바깥에는 수로가 있었다.



덴마크는 알다가도 모를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예은이랑 수로 한가운데에 있는 손을 보고 호미곶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나 뭐라나. 생각보다 성이 예뻐서 들어가기 전부터 마음에 들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등장하는 입구, 입장!



벽난로가 있는 방이 있었는데 이 곳에서 성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끝판왕을 보게 되었다. 방마다 여러 마네킹과 장식품들이 있었지만 벽난로 속 장작이 타는 불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사실적이었다. 이 사람들 정말 진심이구나? 관람하는 도중 다른 팀의 가이드를 보았는데 과거 전통의상을 입고 부채질을 하며 설명해서 이 상황극을 기획한 사람이 누군지가 정말 궁금해졌다.



관람이 생각보다 싱거워서 좀 당황했지만 풍경만큼은 어느 성보다 가장 좋았다! 점심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가까운 데에서 먹기로 했다. 예은이의 앞머리 정리하는 모습에 눈길이 더 가지만 사실 이 사진은 그걸 노린 게 맞습니다(웃음) 오픈 샌드위치가 유명한 덴마크의 스뫼르와 믹스 볼을 주문했다. 배가 고파서 고민하지 않고 순식간에 주문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았고 간이 세서 믹스 볼은 반 정도 남겨버렸다. 약 8천 원 정도를 날려버린 지수 씨.



부른 배를 두드리며 버스를 타고 또 다른 목적지, 루이지애나 미술관으로 우리는 출발했다.



미국에서 지겹도록 봤지만 오랜만에 보니 정겨운 잭슨 폴락. 오랜만이야 잭슨?



통유리가 마음에 들던 이곳. 야외에 설치미술들이 있었지만 비 와서 못 봐서 너무나도 아쉬웠다.



판화작품이 대부분이 었던 컬렉션 중 하나. 여성의 출산 장면을 극사실적으로 드러내서 조금은 충격적이었지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해 주어 색달랐다.





이곳이 핫플인가요....? 저 언니들의 살신성인 인정합니다. 이 추운 날 얇은 반팔을 입고 수 십장 사진을 찍은 그녀의 열정에 박수도 보내고 싶다. 그 뒤로 보이는 큰 창,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탁 트인 공간. 내가 살고 있는 자그레브에도 유리창이 크고 넓은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나오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가까스로 기차를 타고 다시 코펜하겐 중심가로 넘어왔다. 그 사이 핸드폰을 꺼내 계산기로 지금껏 다닌 관광지 입장권이 코펜하겐 카드 뽕을 뽑았나 계산을 해보았다. 약 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을 채우지 못했고 우리는 다시 한번 기적을 바라보았다.


미쳤다. 그놈의 코펜하겐 카드가 뭐라고 마감 15분 전에 도착해서 탑을 올랐다. 이 속도감 보이는가? 중간에 예은이랑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뿜으며 올라갔지만 탁 트인 코펜하겐의 전경을 보고 나니 힘든 것도 사라지고 뿌듯함만 느껴졌다. (사실 진짜 힘들어서 죽어버릴 뻔했다.)



숙소에 들러서 한참을 쉬다가 저녁 먹기엔 배가 안 부르고 그렇다고 넘기기엔 아쉬워서 근처 카페에 갔다. Living room 12. 대니쉬-Blahblah는 다 옳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티라미수도 항상 옳습니다. 부른 배를 땅땅 두드리며 예은이랑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4년 만에 봤는데 하나도 안 어색하고 서로 할 이야기가 많아서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고 말하면 믿겠는가? 우리가 딱 그렇다. 벌써 마지막 여행 날인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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