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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23. 2020

[DAY26] 일상으로 돌아가 만난 특별한 손님

지수 일상 in Denmark


자그레브로 돌아가는 덴마크 마지막 날, 아침 11시 비행기라 혼자서 아침 일찍 일어났다. 전날 자기 전, 미리 짐을 싸놓았지만 막상 아침에 일어나 마지막으로 숙소를 돌아보니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결국 다시 숙소를 뒤집어 짐을 쌌고 프랑스로 출국하는 시간이 꽤 많이 남은 예은이는 배웅해 주었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 특히 너랑 와서 좋았어. 우리 나중에 또 여행 가자! 마지막 날에도 비가 내렸는데 이 비는 덴마크를 떠나는 날이라 그런지 내 마음 같이 느껴졌다.



버스도 타고, 메트로로 갈아타서 코펜하겐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근데 메트로를 기다리면서 이상한 사람(아직까지는)을 만났다. 조용히 플랫폼에 서 있던 나에게 “너 중국인이니?”라고 말을 걸어왔다. 안 그래도 덴마크 뜨는 것 때문에 심란해 죽겠는데 중국인...? 화를 꾹 참으며 “아니”라고 답했고 에어팟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 나서 “너 이름이 뭐야?”라고 묻는데 너무 기분이 나빠져서 인상을 팍 쓰고 째려보니까 그 미친놈이 실실 쪼개면서 지나갔다.  평소에 욕은 잘 안 쓰는 편인데 정말 이때는 나도 꼭지가 돌아서 영어든 한국어든 욕을 하고 싶었다. 기분 좋게 3일 동안 여행 잘하고 떠나기 직전에 기분을 잡쳐서 매우 짜증이 났지만 어쩌겠는가. 화를 꾹 참으며 내 갈길을 갔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공항... 하 벌써 힘들다. 자그레브 가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할 거 생각하면 벌써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 오는 도중에 온라인 체크인을 해서 그런지 조금 일찍 도착했나 보다. 게이트가 바로 안 열려서 조금 기다렸다가 탑승했다!



엄청나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는 아니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주전부리를 주는 크로아티아 항공. 네....? 햄이요? 웬만하면 비행기에서 커피 안 마시는데 너무 짜서 입 헹군다고 커피까지 마셨다. 대신 함께 나온 크래커와 말린 오렌지는 너무 맛있었다.



공항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길에 문득 익숙한 단어를 발견했다. 크로아티아에서 한국어로 광고판에 '김희애 피토 크림'을 홍보했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이 광고판을 봄으로써 자그레브가 관광지구나, 그리고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여행지가 되었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다. 잠깐 구경하다가 집으로 가기 위해 구글 지도를 켜 이 친구가 가라는 데로 걸어갔다. 그런데 역시나 오늘도 구글 지도는 날 울게, 또 한때는 웃게도 만드는 것 같다. 바로 코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 차도까지 걷게 하면서 돌고 돌아 간 덕분에 35분 배차간격인 버스까지 놓치고. 힘들어서 힘 빠진 웃음만 피식하고 터져 나왔다. 멍 때리며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집 도착해서 빨래 돌리고, 늦은 점심도 허겁지겁 먹은 나는 고모들을 만나기 위해 옐라치치 광장으로 갔다. 사실 여기에는 길고 긴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는 고모 두 분이 계시는데 두 분이서 동유럽 여행 패키지로 여러 나라를 도는 일정 중, 마침 내가 덴마크에서 자그레브로 돌아오는 날 고모들도 자그레브를 들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야외에서는 데이터를 쓸 수 없는 고모들의 상황 때문에 대략적인 시간과 장소만 정해놓고 만나자며 약속을 했다. 한 20분을 옐라치치 광장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고모들을 기다렸고, 5분만 더 기다려 보자고 생각한 순간 광장 구석쯤 인 것 같은 곳에서 한 여자가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왔다. 광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상황에 당황스러웠만 반가운 마음에 나도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패키지여행이라 그런지 짧은 자유시간만이 주어졌고, 여유로운 차 한잔은 포기하고 자그레브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같이 가서 사진 몇 장만 찍고 헤어졌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낯선 곳에서 가족을 만나서 너무 좋았다. 내가 점점 익숙해져 가는 낯선 곳에서 만난 특별한 손님, 너무나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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