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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25. 2020

[DAY28] 한국으로부터 온 택배

지수 일상 in Croatia


다음날 아침, 우중충의 끝판왕이 었던 어제의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오늘은 이상할 만큼 날씨가 너무 좋았다. 자그레브 현지인들의 외투는 아직까지 두꺼웠지만 가끔씩 보이는 관광객들이 오늘은 다들 선글라스도 끼고 웃으며 돌아다니는 것 같아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자그레브의 중심가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벽돌로 지어진 꽤 오래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내를 통과하는 트램만큼은 현대식이라 과거와 현대의 조화 같은 느낌이 물씬 나지만 종종 옛날 트램도 돌아다니고 있다. 오늘 등굣길에서 그중 하나를 탔는데 옛날 트램 특유의 달달 거림 때문에 귀가 아팠다. 그래도 오래 걸리지 않는 학교까지의 거리를 트램 제일 뒤에 서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것만큼 여유롭고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벌써 이것마저 일상이 되어 익숙해지다니. 자그레브인이 다 되어가는 느낌이다.



지난주 금요일, 한국에 있는 엄마가 무려 10만 원이나 주고 자그레브로 택배를 보냈다. 해외에 살게 된 딸내미 때문에 평생 처음으로 국제 배송을 해보게 되었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자그레브의 건물이 아파트도 아니고 빌라도 아닌 것이 굉장히 복잡한 주소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건물 주소는 쉽게 알 수 있어도 그 건물의 몇 층, 몇 번째 집인지 헷갈리는? 이곳 사람들은 어렵지 않을 수 있어도 한국에서 택배를 보내는 입장에서는 잘못 적어 반송될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랑 통화할 때마다 택배가 도착했는지, 택배 고유번호로 검색했을 때 지금 어디쯤 왔는지 확인했다. 오늘 아침에도 분명 통관이었는데 학교에 다녀온 사이 집에 왔다가 부재해서 배송 못했다는 연락이 엄마에게 가서 엄청 걱정했다.



TA-DA! 택배가 언제 집에 도착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집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얼마 안 지나고 나서 일까. 대문 밖에서 똑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크로아티아어로 한 남자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라는 안도감에 문을 열었고 택배 아저씨(?)가 "도바르단(dobar dan)" 하고 인사를 하며  사인을 해 달라고 종이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신나게 사인을 하고 나 또한 "흐발라(hvala)"라고 감사 인사를 했다. 두근두근하며 택배를 열어보니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나의 소중한 식량과 여름옷이 도착했다.



눈물 찡해서 또 울어버리게 한 엄마의 편지. 23살에게 귀염둥이에게 라니. 한바탕 눈물 찔끔하고 택배를 하나하나 풀어보았다. 보기만 해도 든든한 떡볶이와 육개장 제군, 장 튼튼 유산균 친구들과 한국 과자 컬렉션까지. 무엇보다 짜파게티... 정말 최고였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의 여유로움은 두둑한 지갑에서 나온다고. 유학생 버전으로 따지면 집에 한국음식이 비상식량으로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마음의 위안 정도가 다른데 오늘만큼은 100퍼센트 완충되었다.



이날 점심은 그동안 먹던 빵 쪼가리가 아닌 엄마가 보내준 볶은 김치로 소시지를 퐁당 넣은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다. 계란 덕후는 그동안 아껴먹었던 계란을 오늘만큼은 확실하게 지르자라는 마음으로 두 알을 깨어 프라이하는 플렉스를 했다. 피날레까지 완벽한 식사였다.

 


오후에는 나의 7년 지기 친구 수지와 처음으로 영상통화를 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저녁이라 화장을 지웠다고 라이언 인형을 방패 삼아 통화했는데 한참 이야기하고 나니 조금 현타는 왔지만 그래도 너무 오랜만에 목소리 듣고 나니 너무 행복했다. 자랑한다고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더니 질투쟁이 유정이(고등학교 동창, 1살 언니지만 철판 깔고 반말한 지 6년째)가 DM 와서 한 소리를 들었다. 결국 찐한 우정을 공유 중인 유정이와도 영상통화를 했다. 오늘 한국의 날인가? 택배부터 김치볶음밥에 엄마, 수지, 유정이와 영상통화까지. 매우 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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