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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26. 2020

[DAY29] Festival of Light

지수 일상 in Croatia


아침부터 학교에 갔다가 과제 폭탄에 치이는 하루를 보냈다. 맥이 빠져서 집에 널브러져 있는데 룸메이트가 자그레브에서 Festival of Light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 어느 도시보다 평화롭고 너무나도 조용한 자그레브에서 Festival이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이기에 피곤하긴 했지만 곧장 옷을 챙겨 옐라치치 광장으로 향했다. 사실 정확히 어디에서 하는지도 몰랐지만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무리를 따라가면 될 것 같아 무작정 출발했다. 거리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집 근처라 매번 지나는 도서관에서 특이한 행사를 하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낮에는 너무나도 조용해서 눈길조차 안 갔는데 매일 저녁마다 도서관에서 초청강사를 모시고 행사를 하는지 몇 번이나 사람이 가득한 내부를 보고 힐끗 쳐다보게 되었다.



역시나 자그레브에서 열리는 몇 없는 행사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저기구나! 마치 내비게이션을 찾은 것 마냥 우리도 한쪽을 향해 걸어갔다. 옐라치치 광장에서 약 10분 정도 걸었을까? 자그레브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고지대로 향하는 곳부터 빛 축제가 시작되었다. 낮에 보면 하얀 빈 벽인데 여기에 빔 프로젝터를 쏴서 예쁜 교회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오- 자그레브에서는 상상하지 못한 축제의 퀄리티에 룸메이트와 나는 입을 떠억 벌렸다. 솔직히 한국이었다면 보고도 스윽 지나쳤을 것 같다. 이것 말고도 화려하고 신나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데 왜? 이러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는 평화 그 자체인 자그레브 아닌가. 그래서인지 이런 시도를 한 것에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한 공간에 가니 무대를 설치해 놓고 투명한 구슬에 빛을 쏘아 디스코 볼처럼 의도해놓았다. 사방이 흰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온통 반짝거리는 빛이 가득 차서 그런가 괜히 파티에 온 것 같도 기분이 좋아졌다. 자그레브 현지에 있는 클럽보다 더욱 퀄리티 좋은 분위기 때문인지 현지인들은 흥이 제대로 나버렸다. 친구, 가족, 연인들끼리 춤판이 나서 나는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나는 평생 춤과는 거리를 두고 산 몸치라 그저 보는 게 분위기 안 망치고 좋은 선택이다)



춤신춤왕들을 뒤로하고 한 무대 앞으로 가니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흰 벽에 쏘고 있는 빔프로젝터에서 보이는 시계는 3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조금만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비욘세의 무대가 생각났던 퍼포먼스! 몽환적이면서도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미리 짜인 빔프로젝터의 여백을 무용수가 채우며 춤을 췄다. 작품이 나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소소해서 보는 내내 조용했고 지나친 침묵에 관객인 내가 눈치가 보였다.





한편에 마련되어있는 공원에는 매우 작은 전구를 설치해 동대문에 위치한 DDP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인파에 쓸리듯이 룸메이트와 나는 한참을 걸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앞에 너무 귀여운 아기와 아빠가 걸어가고 있었다. 3살? 4살? 정도로 보이는 아기는 혼자 씩씩하게 걸어가고 싶어 했는데 아빠는 넘어질까 봐 걱정되어 손을 잡고 싶어 했다. 결국 아기의 고집으로 손은 절대 안 잡았지만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놀이터는 여러 가지 색으로 입혀진 조명이 사방을 비추었고 클럽 노래로 어린이를 위한 공간에서 어른이를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지나가는 아이 얼굴을 보자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해 어른이 사과할게.



룸메이트와 나는 평소 밤에 군것질을 잘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꽤 괜찮은 페스티벌을 즐기고 온 우리는 금세 배가 고팠고 결국 야식을 선택했다. 이전에도 피자로 유명한 이 가게에서 주문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피자보다 감자튀김과 너겟이 더 끌려서 거하게 주문해왔다. 결과는 성공적. 이 집은 피자보다 감자튀김과 너겟 맛집이었나 보다. 맥주도 마셨는데 괜히 향 없는 일반 맥주를 택했다가 금세 후회했다. Ozujsko는 역시 레몬맛이 최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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