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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27. 2020

[DAY30] 옆동네 슬로베니아로 놀러 가기

지수 일상 in Slovenia


전날은 과제한다고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 놀러 가지도 못하고 집 또는 카페에 틀어박혀 과제를 하다니. 한국이나 크로아티아나 대학생들의 발목을 잡는 건 과제임이 틀림없다. 어쨌든 마무리하고서 다음 날, 룸메이트와 나, 그리고 후배 지원이까지. 셋이서 여행 가는 것이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 시간이 맞아 슬로베니아로 2박 3일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등교하지 않는 날이었지만 룸메이트는 오전에 수업을 다녀와야 해서 혼자서 나름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헐레벌떡 집에 돌아온 룸메이트와 나는 짐을 대충 싸들고 슬로베니아로 떠나기 위해 자그레브 버스정류장으로 떠났다.



너무 여유로운 아침을 보낸 걸까. 아침과 점심 식사를 모두 건너뛴 나는 버스터미널 한편에 위치한 빵집에서 빵 하나를 샀다.(사실 시간이 부족한 탓에 나는 버스정류장 플랫폼을 알아보고 룸메이트가 소시지 빵을 사다 주었다. 버스정류장은 항상 올 때마다 플랫폼을 알아야 하는 구조다. 이렇게 비효율적일 수 있을까?) 맛은 그럭저럭 딱 저렴한 가격만큼의 맛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별점을 주기도 애매할 정도였다. 밀가루와 소시지 본연의 맛.



약 1시간 조금 덜 되게 달려왔을까? 자그레브 국경을 넘기 위해 톨게이트처럼 생긴 국경관리소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껏 유럽에 와서 엄청나게 많이 여행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돈을 아껴보겠다고 버스로 주로 여행을 했던 덕분에 국경관리소만큼은 더 이상 봐도 떨리지 않았다. 그저 귀찮음만 있을 뿐. 심지어 이날 여권 심사가 지금껏 했던 것들 중 가장 빠르게 끝났다. 내 얼굴을 보는지, 여권을 확인하는 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끝난 심사. 국경을 들어오는 거는 힘들게 해도 나가는 거는 상관없다는 뜻인가 싶다.



약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내리니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 도착했다. 크로아티아와 비슷한 듯, 다른 듯한 도시 풍경을 구경할 새도 없이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버스터미널까지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에어비앤비, 호스텔, 호텔 등 다양한 숙소에서 지내봤지만 이렇게나 저렴한 가격에 좋은 위치와 깔끔한 숙소를 제공해줌에도 불구하고 버스터미널까지 나를 데리러 온 호스트는 처음이다. 한국일지라도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 것 같다. 너무나도 친절한 부부가 승용차를 끌고 와 우리의 짐을 손수 실어주고 짧은 영어라도 분위기를 좋게 해 주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감동받았다. 심지어 류블랴나의 유명 관광지와 슬로베니아의 가볼만한 곳까지 추천해주다니. 에어비앤비 별점을 줄 수 있다면 벌써부터 5점 만점에 5점을 주었을 거다. 자그레브와 달리 외벽이 깔끔하고(자그레브는 건물 외벽에 그래피티가 많고, 외벽 일부의 마감이 덜 된 곳이 많다) 알록달록 했다. 숙소에 도착해 집에 대해 설명 듣고 이리저리 둘러보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번 여행, 시작부터 너무 좋다.



어디부터 갈까 하다가 숙소 근처에 있던 '류블랴나 성'에 가기로 했다. 걸어가는 길이 조금은 가팔랐지만 조금씩 조금씩 보이는 류블랴나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 조금 숨찬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올라가는 길에 발견한 언덕과 건물들, 그리고 탁 트인 하늘에 펼쳐진 몽글몽글한 구름마저 너무나 아름다웠다. 류블랴나 성을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유적지에 딱히 관심이 없는 우리는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패스했다.



한참을 걸어서 그런지 목도 마르고 앉아 쉬고도 싶어 한 카페로 향했다. 가는 길을 구글 지도에 검색해 가라는 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가장 빠른 길만을 알려준 것인지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계단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힘들어 죽겠다. 조금씩 움직이는 GPS 파란 점을 보며 걸어가니 골목 끝자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미안하지만 우리가 촬영 중이라서 5분 후에 지나갈 수 있어"라고 말했다. 마침 우리도 잠시 쉬어갈 겸 계단에 걸터앉아 숨죽이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무슨 촬영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카메라도 보이고 매니저처럼 보이는 관계자도 여럿 있었다. 컷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지나갈 수 있었고 어린 연기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유아 영화 촬영장이었던 것 같다)



그 길로 쭉 내려왔더니 너무나도 아름다운 운하? 수로? 가 있었다. 저기 언덕 위에 보이는 성이 우리가 방금까지 있었던 '류블랴나 성'이다. 위에 있을 때는 못 느꼈지만 막상 내려오니 생각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놀랐다. 약 오후 3시쯤이어서 그런지 따뜻한 햇살이 도시 전체를 감쌌고 건물의 색깔이 알록달록한 게 햇빛을 받으니 더욱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유럽으로 놀러 오는 체력 거지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 두 가지. 하나는 평소에 스쿼트(다리 운동)를 열심히 할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습관처럼 주머니에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들고 다닐 것. 많은 거리를 걸어 다녀야 하다 보니 자주 당이 부족해져 지치곤 한다. 직접 몸으로 겪어야 아는 나는 이날 당도 떨어지고 배도 고파져 얼른 근처 카페로 향했다. 왼쪽에 보이는 많은 케이크 중 우리는 고민도 하지 않고 1인 1 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귀하디 귀한 얼음이 담긴 커피(콜드 브루)도 한 잔 주문했고 양이 생각보다 적어 하마처럼 벌컥벌컥 마셨다. 자두 파이, 치즈케이크, 브라우니까지. 오늘도 역시나 모든 메뉴는 성공적이었다.



거의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카페에만 있을 수 없어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역시 도시에는 물이 흘러야 낭만이 있고 그 도시가 더욱 예뻐 보이는 것 같다. 서울의 한강만 하더라도 밤이 되면 얼마나 아름다운지(지방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항상 가지고 있는 낭만 중 하나인 것 같다). 파리의 센 강도 빠질 수 없다. 하긴 거기는 강 아니더라도 도시 자체가 감성에 젖어 있으니 파리는 예외로 해야겠다.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두 사람. 사실 이 두 사람은 중간에 나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서로 알 수도 친해지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각자 "우연"이라는 인연 덕분에 이곳 슬로베니아까지 여행을 오게 되었다. 너무나도 신기한 사이가 아닐 수 없다. 최선을 다해 서로를 찍어주고 나까지 인생 샷을 찍어주겠다며 다리 한쪽으로 나를 세웠다. 날씨가 도와줘서 다 한 것 같은 류블랴나를 배경으로 정면은 부끄러우니 뒷모습이라도 사진을 남겨보았다. 역시 뒷모습이 마음에 든다.



관광객이 많이 모여있던 '성 프란체스코 성당' 붉은 벽돌로 쌓인 건물에 독특하게도 청동으로 마무리된 첨탑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성당의 모습이라 신기했지만 나와 함께한 모두 성당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주변은 오래된 건물과 새로 만들어진 다리와 길이 노을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그리곤 북적북적한 사람들 틈을 지나가며 이 곳만의 향기와 분위기를 온전히 느껴보고자 천천히 걸어 보았다.



꿀이 유명한 슬로베니아. 하지만 나와 친구들은 가게 들어가서 시식도 하고 여러 가지 상품도 둘러봤지만 결국 구매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크로아티아도 꿀이 유명하니까? 지금 돌아보면 유럽지역 대부분은 꿀이 유명한 건지 모든 관광지를 들릴 때마다 특산물이라고 내놓는 것 같다. 유럽에 사시는 분들, 정말 그런가요? 알고 싶습니다. 하여튼 귀여운 콘셉트의 포장지가 유혹했지만 이곳에서 꿀은 구매하지 않았다.(괜히 아쉽)



짝짝짝. 이곳이 제가 누울 곳입니다. 빈티지 의류를 좋아해 한국에 있을 때도 자주 빈티지 샵을 갔었다. 그런데 길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그것도 류블랴나에서 빈티지 샵이라니. 빈티지 덕후인 나는 이곳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 kg당 무게를 재서 판매하는 이곳의 콘셉트상 곳곳에 저울이 있었는데 역시나 나는 (놀랍지도 않다) 무게 안 재고 판매하는 자켓을 딱 골랐다. 심지어 24유로인 자켓을 14유로에 구매해 개이득을 실현했다. 너무 일이 술술 풀려서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이게 웬 횡재인가?



자그레브에서 처음 알게 된 동생 자양이가 류블랴나에 다녀온 후 인스타그램 피드 하나를 올렸다. 거기에는 엄마를 위해 류블랴나 흔적이 담긴 앞치마와 조카를 위한 턱받이를 구매했다는 내용. 가족 한 명 한 명을 위한 선물을 살 계획이 있던 나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 같았다. 자양이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단순히 구글링만으로 찾아왔는데 멀리서 보이는 앞치마와 외벽을 보고 단박에 잘 찾아왔구나를 확신할 수 있었다. 엄마를 위한 선물이기에 앞치마를 구매했는데 직원이 글자를 새겨줄 수 있는데 할래?라고 묻는 말에 당연히 하겠다고 답했다. 어리게만 보였는데 순식간에 재봉틀로 글자와 그림을 그리는 걸 보고 범상치 않은 실력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너무 착하고 귀여워서 카드로 긁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Hvala~

 


슬로베니아에는 의외로 아기자기한 소품샵이 많았다. 어른을 위한 리빙샵부터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기자기한 장난감 가게까지. 가장 마지막에 들른 곳은 어린아이들이 직접 만든 것들을 팔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곳이었다. 이곳의 취지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너무나도 친절하게 상품 하나하나와 가게의 목적을 설명해주는 주인아주머니의 태도였다. 사실 크로아티아에도 친절한 사람들이 많지만 슬로베니아가 훨씬 더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 아주머니의 역할이 대단히 컸던 것 같다.



저녁으로 마무리는 역시나 맥주가 옳다. 이날 처음으로 라들러 자몽맛을 먹어봤는데, 아니 글세 여기서 찐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있는 유럽 거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자몽맛 라들러를 먹어주세요. 느끼한 양식과의 조화가 아주 기가 막힙니다. 블로그를 샅샅이 뒤진 지원이의 놀라운 서칭 능력으로 이곳을 발견했다. Second Violin. 이곳은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혜자스러운 양이다. 한참을 먹었지만 너무 많은 양에 결국 포장해와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정도였다.



함께 여행한 룸메이트, 그리고 후배 지원이와 저녁을 먹으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던 첫날을 마무리했다. 아무쪼록 아무도 다치거나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여행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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