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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28. 2020

[DAY31] '갑자기'가 일상인 여행

지수 일상 in Slovenia


한국은 24시 편의점이라는 자랑스러운 편의시설이 있다. 그것도 전국 곳곳에. 하지만 유럽은 특이하게도 편의점은 물론이고 저녁이 되면 일반 상점들이 모두 닫아버린다. 결국 어제도 늦게 알아차려서 물을 구매하지 못했다. 아침까지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집 밖을 나선 우리는 제일 먼저 물을 사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유럽 전역에서 제일 쉽게 찾을 수 있는 DM(한국의 올리브영 같은 드럭스토어)이 오늘도 역시나 제일 먼저 문을 열어 물을 든든할 만큼 구매해 나왔다. DM 앞에서는 신기한 악기를 연주하던 중년 남성이 있었는데 노래가 끝날 때까지 한참을 지켜보았던 것 같다. 기타나 목소리로만 버스킹을 하던 한국과 달리 신기한 악기를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이 흥미롭다.

 


여행을 할 때, 기본적인 여행지와 숙소, 그리고 교통(가는 방법)에 대해서만 알아보는 편이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걸 귀찮아하기도 하고 무계획이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날도 원래는 Bled를 가야지 하는 목적지에 대한 계획만 가지고 있었다. 히지만 Bled를 가기 위해서는 두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버스터미널 직원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맛집이든 카페든 웨이팅 하는 것을 싫어하는 타입이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Bled를 가는 것은 포기하고 근교 도시로 떠나기로 급하게 계획을 수정했다. 그리곤 곧장 티켓을 끊어 버스를 탔다. 약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한 이 곳. Skofjaloka(스코피자로카). 사실 가는 길에 버스를 잘못 내린다던가 등등 오만가지 일이 겹쳤지만 그래도 다들 신경질 내지 않고 잘 도착했다.



무사히 도착한 후, 낙오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써서 일까. 곧장 점심을 먹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열어 맛집을 찾아봐도 분산되어 있는 레스토랑과 평점이 잘 나와있지 않은 상황에 그냥 눈에 보이는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갔다. 이날은 즉흥이 전부인 하루였다. 버섯 수프와 마르게리따, 그리고 고르곤졸라 파스타까지. 사실 마르게리따 피자가 나오고 나서 내가 알던 것과 너무 달라서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급한 대로 입에 넣을게 생겼다며 좋아했다. 음료 3잔과 음식 3개까지 다 해서 20유로 조금 넘게 나왔다. 팁 문화가 없는 덕분에 따로 고민 없이 음식 값을 지불할 수 있었고 혜자스러운 가격에 더더욱 만족했다.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시내가 너무 조용해서 당황스러웠다. 저희 빼고 다들 어디로 가신 거죠? 산책하듯이 슬슬 길을 걸어가니 스코피자로카 성이 있다고 해서 표지판을 따라갔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 좀 보세요. 날씨가 아주 최곱니다! 가는 길이 조금 가팔랐지만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그런가 시원해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사실 거짓말. 힘들어서 거꾸로 돌아서 올라갔다^^;;)

 


눈이 부시니 선글라스도 쓰고 사진을 남겼다.



현실은 그런 나를 담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한 여자의 모습. 고마워 지원아?



자그레브에서는 잘 못 봤던 빨간 지붕들, 이곳에 올라와 한껏 느끼고 갔다. 예쁜 배경을 봤다 하면 예의상 또 한 번 찍어줘야 하는 게 여행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평소라면 안 할 포즈까지 취해가며 열심히 인증샷을 남겼다. 이날 입은 자켓이 바로 어제 14유로를 주고 산 자켓인데 바로 다음날 코디를 해서 입고 다니니 잘 산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역시 작은 도시라서 그런지 관광지 하면 있을 법한 것들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시끄럽지 않고 한적해서 산책하기엔 딱 좋았다. 동네 둘러보기를 금방 끝낸 후, Bled를 늦게라도 갈지 아니면 류블나랴로 돌아갈지 못 정한 채 다시 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버스 시간표라도 확인하고자 돌아왔는데 1초 만에 우리의 고민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버스 계획 표상 Bled는 오늘 도착하면 1박을 하고 와야 하는 문제 때문에 자연스럽게 류블랴나로 돌아가야 했고 류블랴나로 돌아가는 것 또한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2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갑자기 시간이 붕 떠버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근처 카페로 향했다. 한 가지 맛에 1유로라서 넉넉하게 4개나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역시 싼 맛에 먹는 거는 질보다 양인 것 같다. (사실 1 유로면 그렇게 싼 것도 아니긴 한데 괜히 1유로라고 하니까 1000원처럼 안 느껴져서 부담 없이 쓰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괜히 100원 같고, 그냥 1장 같은 느낌. 심지어 동전이네?)



어찌어찌 류블랴나로 돌아와서 도착한 지 하루 만에 그 유명한 용의 다리를 실물로 보았다. 왜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자그마해서 사진 찍는 사람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심지어 횡단보도 앞이라 사진 찍는 관광객인 게 너무 티 나는 상황이 펼쳐졌다.



어제 보지 못한 골목을 둘러보기 위해 다시 시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우리는 한 밴드를 발견했다. 색소폰과 드럼의 조합이 신선했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분위기가 어우러져서 그런지 감동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너무 멋진 공연이어서 그런지 환호하는 사람 또한 많았다. 자그레브로 돌아가면 그곳에서도 이런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버스킹을 보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곧장 러쉬로 갔다. 쇼핑에 감흥이 없었던 나는 그냥저냥 구경했지만 함께 간 친구들은 자그레브에서도 안 갔던 러쉬를 슬로베니아까지 와서 플렉스를 했다. (알고 보니 크로아티아보다 슬로베니아 러쉬가 더욱 저렴해서 구매했다고 한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운하 근처 야외에서 커피를 마셨다. 보통 나는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것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아이스는 물론이거니와 아메리카노가 없는 유럽 아닌가. 그래서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여행에 왔으면 왠지 모르게 라떼를 마셔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유럽에 오고 나서부터는 라떼를 주로 주문하는데 이날 날씨도 조금씩 쌀쌀해지고 든든하게 먹고 싶기도 해서 라떼를 주문했다. 조금씩 해가 지더니 길거리에 전등이 하나, 하나 켜졌다. 밤이 되어서는 별도 보이더니 감성이 듬뿍 차올랐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하는 여행이 즐겁다.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고 추운데 밖에서 밥을 먹었다가는 체할 것 같아 숙소 근처에 있던 중국집에서 음식을 포장해와 저녁을 먹었다. 달고 짠 것만 찾는 유럽인들의 식사만 해 오다가 오랜만에 동양적인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한 끼 식사를 만족하게 했던 것 같다. 둘째 날도 완벽하진 않지만 행복한 하루를 보낸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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