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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03. 2020

[DAY38-40] 여기가 한국인지 헷갈려

지수 일상 in Croatia


내가 잘 못 본건가? 일정이 바뀌어 확인해달라는 메일을 받고 굳게 마음을 먹고 확인했지만, 이렇게 X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교환학생에 '학생'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해도 사실 공부하는 학생보다 놀러 다니는 학생에 더 가깝다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리 교수님은 강의에 진심이었나 보다. 무려 6시간이나 연속으로 수업한다는 메시지를 싱글벙글 웃으며 보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그만해요 다들 제발.



보기에는 맛없어 보이기도 하고 떡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맛만큼은 보장할 만큼 최고인 메뉴. 오늘도 역시나 파프리카, 소시지, 양파를 가득 넣어 나름 건강하게 먹으려 노력했다. 최근 낙이라고 하면 물론 매주 여행 가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소소한 낙은 직접 만든 파스타 먹으며 한국 예능 챙겨보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 채널은 온통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하는 것과 동시에 약 70년대에 나올 법한 CG가 가득한 옛날 느낌 풍기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TV로 볼 수 있는 채널을 꼽으라면 아리랑티비? 그 이상은 말 다했다.



한국에서 엄마와 매일 얼굴 보고 1시간을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주말이나 되어야 1시간 채울 정도? 하지만 크로아티아라는 당신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살고 있는 딸이 걱정되었는지 거의 매일, 드물지만 통화를 안 해도 카톡 정도는 무조건 남겨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가 되었다. 반강제적으로라도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더욱 사이가 좋아진 것 같다.(한국에 돌아가서 취업을 한다면 본가 근처가 아닌 지역을 바꿔 살아야 하는 생각도 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날은 처음으로 엄마와 무려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한국과 8시간이나 시차가 나서 크로아티아가 낮인 시간은 엄마가 힘들 법도 한데 내색하지 않고 나의 생활을 궁금해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만 종종 마음에도 없는 툴툴거리는 소리와 행동으로 엄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평생 딸의 뒤꽁무니에서 짝사랑만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오늘도 삶은 계란과 파프리카로 마무리하는 하루. 맛있는 걸 먹으면 분명 좋겠지만 뭘 먹을지 끼니때마다 고민하는 게 더 싫어서 선택하는 저녁 메뉴.



다음 날,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는 나를 위해 엄마의 원픽, 육개장을 처음으로 개시했다. 너무 맛있다. 한국에서는 육개장을 1년에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롤 잘 안 먹는 메뉴였는데 자그레브에 와서 먹는 육개장은 꿀맛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집밥의 분위기라 살짝 감격할 뻔했다.



날씨가 너무 좋은 요즘 자그레브. 한국은 꽃샘추위가 와서 춥다고 하는데 여긴 딴 세상이다.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고기압의 차가운 바람도 없고 교과서에 나올 만큼 '봄'이 물씬 느껴지는 온도와 날씨가 사람의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또 어디를 놀러 가지?

 


정말 태어나서 처음이다. 후배 지원이에게 연락이 와 한참을 수다 떨었는데 갑자기 서머타임이란다. 부엌 한편에 붙어있는 시계를 확인해보니 한 시간 정도 늦어서 고장 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이 날부터 서머타임이 시작해서 나도 모르게 한 시간 빠르게 타임워프 한 것이다. 기분 탓이겠지만 괜히 이 날만큼은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원래 월요일은 수업이 8시 반이라 빈속으로 학교에 간다. 하지만 이 날은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프고 아침을 먹을 시간도 없고 특이하게도 평소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먹었을 요거트까지 먹기 싫었다. 그래서 학교 가는 길에 빵을 하나 샀다. 학교 근처 트램 정류장에서 내리면 한 공터에 빵을 파는 좌판이 하나 있다. 허름해 보여도 있을법한 빵을 대부분 구워 팔고 있어 구매하지는 않아도 한 번씩 눈길이 가곤 했는데 이 곳을 드디어 가보게 되었다. 역시 빵은 길빵이 최고인 것 같다(말 그대로 길에서 씹고 뜯고 즐기는 빵을 뜻한다.) 빵잘알(빵을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평가해본다면 Dinara보다 옐라치치 광장에 있는 Dubrovica가 더 맛있는 것 같다.



어제 먹은 국을 먹기 위해... 치킨 너겟을 구워봤습니다. (정말로) 치킨 너겟을 먹기 위해 국을 먹었다는 소리는 말도 안 된다. 근데 한국에서 먹던 치킨너겟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가격도 저렴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딱 적당한 양만큼 합리적인 가격에 팔고 있어 좋았다. 생각해보면 한국에는 밥과 먹을 반찬 정도로 사는 경우(마트에서 살 때)가 대부분인데 이곳에서는 반찬이 아닌 술안주 정도로 그치는 것 같다. 어쨌든 처음 시도한 반찬이 성공적이어서 뿌듯하다. 한 끼 식사를 굉장히 잘 챙겨 먹은 것 같다.



오늘은 한국의 날인지 한국에서 날아온 과자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이 날도 역시 펴보기만 하는 프린트.... 언제 정리하고 머릿속에 입력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저녁은 빵식(빵으로 식사하는 것)으로서 남은 빵 쪼가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브런치에 가까운 식사를 가볍게 했다. 보기에는 푸짐해 보이지만 막상 먹고 나면 간이 안되어 있어서 그런지 괜히 허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챙겨 먹는 것에 의의를 두고 오늘 마지막 끼니를 조촐하게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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