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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04. 2020

[DAY41,42] 자그레브가 익숙한 리틀 현지인

지수 일상 in Croatia


이런 날이 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개운하고 늦잠을 자지 않아 아침도 여유롭게 먹고 나갈 수 있는 날. 상쾌하게 샤워 후, 애정 하는 향이 나는 바디로션까지 바르고 좋아하는 옷이 제때 세탁되어 바로 입을 수 있는 날. 학교에 갔는데 교수님의 일이 잘 풀린 건지 아니면 날씨가 좋아 기분이 좋아지신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예상보다 빨리 끝난 수업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몸과 마음 모두 가벼운 날. 이런 날은 정말 손에 꼽을 만큼 드물어 행운이라고 생각까지 하는데 마침 그런 날이 딱 오늘이었다. 수업도 일찍 끝나고 날씨마저 끝내주게 좋아서 집에 바로 들어가기 싫었다. 장바구니는 챙겨 오지 않았지만 뭐 어떤가. 다시 집에 다녀오는 한이 있어서 당장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몇 번 가 봤다고 벌써 익숙한 돌라츠 시장,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더 반갑다. 딸기 러버인 나는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딸기를 구매했는데 살짝 미스이긴 하지만 6쿠나 주고 한 소쿠리를 저렴하게 구매했는데 품질이 영 별로였다. 조금 모순되긴 하지만 앞으로 딸기는 대형마트인 콘줌에서 사는 걸로! 여전히 다짐만 하지만 한국 가기 전에 꼭 꽃은 한번 사서 집에 꽂아두고 싶다.



오늘도 역시나 양 조절 실패한 파스타(하지만 맛만큼은 너무 맛있어서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울처럼 정량만을 꼽지 않는 나의 큰 손에 감사할 따름) 자취생에게 가장 필수적인 것은 아마 TV, 또는 TV 채널을 볼 수 있는 핸드폰이나 노트북이 아닐까 싶다. 안 그래도 조용한 집안에서 밥 먹을 때만큼은 북적북적한 소리가 들렸으면 하기 때문이다. 언제 봐도 사랑스러운 '질투의 화신' 드라마를 한국에서 다운로드하여 왔는데 드디어 다시 정주행 할 때 인가보다. 낮에 봄인가 싶어 외투도 벗어던지고 다녔더니 감기가 올 모양인가 보다. 으슬으슬 추워서 감기 걸리는 것만큼은 막고자 누룽지를 해 먹었다. 한국에서는 누룽지를 1년에 한 번이라도 직접 끓여 먹을 일이 있을까? 별거 없는 반찬에 먹는 누룽지였지만 몸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따뜻해서 맛있게 잘 먹었다. 이쯤 되면 이 글은 먹방이 콘셉트인 것 같다.



시험기간이라 공부한다고 했던 지원이가 이걸 보느라 시간이 다 갔다고 했다. 무려 우주 영상. 나도 별거 없으면 종종 집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우주까지 아직 가지 못했다. 그 매력이 뭐길래 매일 밤 지원이가 보는 걸까. 나도 한번 볼까 하고 클릭했다가 10분 만에 잠들뻔했다. 서로의 영역은 지켜주는 게 맞는 것 같다.



다음 날, 학교 가는 길. 오늘도 옐라치치 광장에 위치한 트램 정류장에서 트램을 기다렸다. 요즘 공짜로 트램을 타는 사람이 많은 걸까. 네이버 블로그를 살펴보면 검표원을 보았다는 사람이 극히 드문데 나는 최근 트램을 타는 족족 만나는 것 같다. 살짝 검표원들마다 얼굴을 익힐 정도? 이날은 아저씨 한 분이 돌아다니며 검사를 했는데 출근과 등교를 위해 트램에 올라탄 수많은 사람들을 가로지르며 검사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자니 조금 불쌍했다.



사람들에게 치여 도착한 학교, 아침을 든든하게 먹지 않은 내 탓을 하며 카페테리아로 발걸음을 바로 돌렸다. 언니, 저는 카페인 완전 많이요. 에잇 기분이다. 커피와 함께 먹을 초코빵까지 주문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한쪽에만 초코시럽이 몰려있었다. 아 살짝 2000년대 초반 던킨도너츠의 버전 같다.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살짝 천국과 지옥을 맛보는 느낌? 이어지는 세미나 때문에 커피를 테이크 아웃을 해 왔다. 이렇게까지 카페인에게 나의 기분이 올라갈 수 있다니. 어째 보면 이제 카페인에 중독된 것 같기도 하다. 카페테리아에서 마실 때는 못 봤는데 컵에 웃고 있는 이모지가 붙어 있어 괜히 '고마워 브로'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학교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장을 보러 콘줌에 들렀다. 처음으로 사본 샐러드용 야채와 곁들여 먹을 치즈. 한국에서도 샐러드는 챙겨 먹지 않았는데 혼자 살다 보니(사실 룸메이트도 함께 살지만 음식을 해 먹고 하는 부분은 각자 하기로 해서 혼자 산다는 것을 강조한 부분) 샐러드는 고사하고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야채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화장실을 가는 문제(중요)도 그렇고 스스로도 탄수화물 중독자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에 "돈을 주고" 샐러드용 야채를 씹어먹었다. 역시나 배는 평소보다 부르지 않지만 산뜻한 한 끼를 먹은 것 같아 기분만큼은 좋았다.



시험기간이니 공부를 해보자고 책상에 앉았다. 입이 심심하면 머리가 일을 못한다는 핑계로 어제 돌라츠 시장에서 산 딸기를 씻어 10분 만에 먹었다. 역시나 많은 부분이 물러서 먹을만한 부분은 굉장히 적었지만 그래도 상큼한 딸기를 먹을 수 있음에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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