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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05. 2020

[DAY43,44] 마음만은 새내기

지수 일상 in Croatia


슬슬 자그레브에도 봄이 오나보다. 집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복도의 창문 밖을 바라보니 초록 초록한 잎이 눈에 박힌 듯이 선명하게 보인다. 사진으로 보면 이 창문이 굉장히 감성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창문 곳곳에 이유모를 금이 가있고 창 한쪽이 아예 깨져 비어있기도 하다. 창문 앞에 놓인 화분의 식물은 말라비틀어져있기까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이럴 때 나오는 걸까 싶다.



학교는 일주일 중 월화수 아침에만 가면 되도록 시간표를 짰다. 덕분에 목금토일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여행을 간다. 하지만 이날은 목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있어가 여행을 가지 않고 학교로 왔다. 개강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중간고사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학교 후배인 지원이와 공부해보자고 도서관에 왔는데 책 들춰 본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부터 잠이 온다. 학교 카페테리아로 휘적이며 와 카페인 가득한 카페라떼 한 잔을 마시며 정신을 차려본다. 세 시간만 더 해 보자.



커피를 마신 후, 한 시간도 안되어 집에 간 지원이를 뒤로하고 나는 꾸역꾸역 도서관에 앉아 그동안 진도 나갔던 것들을 살펴봤다. 사실은 정리만 했다. 생각보다 많이 나간 진도에 한번, 언뜻 본 것 같지만 기억은 안나는 상황에 또 한 번 놀라며 보낸 세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별로 한 거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피곤해 오늘도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옐라치치 광장에 내려야 하지만 한 정거장 일직 내려 잠깐 걸었다. 잠시 걷고 있으니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영상통화를 하는 우리, 엄마와 동생은 처음 자그레브 바깥 풍경을 라이브로 봐서 그런지 통화하는 내내 신기해했다. 몸은 지쳤지만 잠시나마 힐링한 것 같아 좋았다. 푸른 하늘도 원 없이 보는 요즘, 행복하다.

 


다음날,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창문을 열어 보니 찬바람은 숭숭 불어오고 하늘에서는 우박과 비가 섞여 떨어진다. 이럴 리 없다며 날씨 어플을 켜니 그새 온도는 훅 떨어지고 다음 주 금요일까지 비가 온단다. 어제는 그렇게나 맑았는데... 살짝 병 주고 약 주는 느낌이다.



???? 웃기게도 몇 시간 후 깔끔하게 날이 화창하게 갰다. 유럽이 보통 날씨가 오락가락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금방 날이 개어 기분은 금세 좋아졌다. 내 기분도 날씨에 따라 오락가락하는데 맛들 린 것 같다. 오후에는 잠시 한국에 있는 대학교 동창들과 연락을 했다. 1년밖에 안 지난 경주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우리 왜 이렇게 생기 넘쳐? 정말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너무나도 어리게 느껴졌다. 



공부를 하려면 일단 딸기를 먹어야 한다. 오늘은 돌라츠 시장이 아닌 콘줌에서 할인하는 딸기를 한 팩 집어왔는데 가격은 4-500원 정도 비싸도 품질은 최상이었다. 무른 곳도 없고 한국 딸기보다 크기도 크고 달아서 너무나도 맛있었다. 평소 우리 집이었다면 많은 가족 식구 때문에 한두 개밖에 못 집어 먹었을 것 같은데 자취를 하니 이건 좋은 것 같다. 한 팩 모두 내가 다 먹을 수 있다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원 없이 딸기를 많이 먹고 가야겠다.

 





한참 공부를 하다가 창 밖을 바라보니 벌써 저녁이 되었다. 저녁을 뭘 먹을까 하다가 오늘은 아껴두었던 짜파게티를 꺼냈다. 옷장 안 깊숙이 넣어놔서 그런지 꺼낼 때 느낌상 금고에서 보물을 꺼내는 분위기였다. 고춧가루를 솔솔 뿌리고 계란 프라이까지 반숙으로 해서 완벽한 콤보를 맞추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맛있게 조리해서 그런지 너무나도 맛있었다.  나에게 주는 선물로 자주(가끔은 힘들 것 같은 느낌?)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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