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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07. 2020

[DAY47-49] 자그레브에서 시험을 친다니

지수 일상 in Croatia


오늘도 비 오는 자그레브. 나보다 한 학기 먼저 자그레브로 와 생활했던 혜진이가 유독 생각나는 날이었다. (중간고사가 코 앞이라 그런가 보다. 나 어떻게 하지?) 비가 와서 그런지 더 추웠다. 얼른 집에 가야지.



아침 일찍 수업을 갔다 와서 그런가 집에 와서는 뭐든 하기 귀찮아진다. 그래서 그런가. 안 그래도 평소에 좋아하는 참치 샌드위치를 테이크 아웃해서 오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 같다. 약 2천 원 정도? 밖에 안돼서 매우 가격도 저렴하고 맛까지 환상적. 유럽에 오게 된다면 그 무엇보다 빵집 투어를 해 봤으면 좋겠다. 이날은 참치 샌드위치를 먹는다고 엄마에게 보고까지 했는데 괜히 잘 챙겨 먹는 것 같아 뿌듯했다. 우유랑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한참 샌드위치를 먹다가 고소한 우유 한 모금 마시면 정말 행복해지는 것 같다.



수업이 끝난 직후에는 비가 안 내렸는데 슬금슬금 또 비가 내린다. 그만 오란 말이야.



다음 날, 교환학생으로 자그레브에 온 후 처음으로 시험을 치는 날이다. 중간고사를 치러가는 길, 비가 온 후라 그런지 하늘도 맑고 공기마저 상쾌하다. 나에게는 나름 역사적인 날이어서 등교 길을 살짝 찍어봤는데 너무 감성 넘쳐서 놀랐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었나? 너무 익숙해지는 일상의 소중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수야. 나름대로 공부한 것을 녹여 시험을 잘 치르고 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 박수를 (속으로) 쳐 주었다. 후련하게 학교에서 나와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집에서 옐라치치 광장으로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한 한 광장인데 요 며칠 비가 왔다고 그전에는 앙상한 가지만 있던 나무에 초록 초록한 풀이 엄청나게 자랐다. 앞으로 비는 그만 오고 얼른 더 푸릇한 풀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오늘도 볶은 김치와 밥, 김가루, 빠질 수 없는 계란 프라이. 계란 덕후이니까 당연히 프라이는 두 개를 하고 이불처럼 살포시 덮어주었다. 후식으로는 딸기까지. 정말 완벽한 식사인 것 같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난 후 또 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수강하고 있는 과목 중 가장 스파르타로 수업하는 교수님의 수업이자 시험 범위도 가장 많은 과목을 내일 시험을 치른다. 한국처럼 깐깐하게 시험의 유형과 공부해야 하는 범위, 그리고 꽤 타이트한 시험 시간까지. 아직 시험지를 받아보지 않았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빡센 교수님의 시험을 보기 위해 꾸역꾸역 저녁 늦게까지 보고 자리에 누웠다.(이러려고 교환학생을 왔나 자괴감이 들어..)



완전, 대박적으로 빡센 시험을 치고 지원이와 나는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시험장을 나왔다. 한국 같았으면 시험을 친 후 바로 집에 갔었겠지만 자그레브, 특히 이 교수님은 헛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 분이라 잠시 쉬는 시간만 갖고 곧이어 세미나를 해야 했다. 하지만 처음 본 이 교수님의 중간고사가 20분 뒤에 세미나가 있음에도 학교 카페테리아로 가서 맥주를 마셨다. 세미나 하면서 조금 알딸딸해졌지만 역시 과제는 알코올 빨이라고 하던가, 그 누구보다 과제를 빨리 해결해 초반에 제출하고 교실을 나섰다.



집에 와서는 갑자기 매운 게 당겨서(해장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안주가 필요했던 걸까) 엄마가 보내준 불닭 라볶이를 해 먹었다. 너무나도 맛있었지만 매운맛의 최약체가 되었는지 눈물, 콧물이 폭풍 흘러내렸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휴지로 닦으며 흡입했다. 이제 어디 가서 매운맛 좋아한다는 말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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