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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13. 2020

[DAY58] 이름도 어쩜 체스키 크룸로프야?

지수 일상 in Czech


아침 일찍 나가야 해서 민박 사장님이 평소보다 더 일찍 아침을 준비해 주셨다. 남이 차려준 조식을 먹는다는 것... 굉장히 챙김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애호박전도 반찬으로 부쳐주셔서 감동이었다. 이래서 조금 비싸도 한국사람들이 해외에 가서 한인민박을 가는가 싶다. 이런 곳이라면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를 갈 때 한번쯤 모시고 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정말 간당간당하게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트램에서 내려 이곳까지 미친 듯이 뜀박질을 했다. 맛있게 먹은 아침을 다시 볼 뻔한 아찔한 경험이었다. 다행히 검표를 하느라 시간이 꽤 걸려서 출발은 하지 않았고 도착한 후에도 한참을 줄 서서 기다린 후에야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프라하에서 버스로 약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아침부터 바쁘게 온 이곳은 바로, 체스키 크룸로프! 프라하에서 멀지 않은 근교인 이곳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온 다양한 여행객들이 한 번쯤 들른다는 여행지이다.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입이 쫙 벌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동화 속의 동네인가. 동네 근처로 더 가까이 가던 중 발견한 COOP...? 학교에서 자주 보던 협동조합 마크가 있어서 조금 놀랐지만 다른 의미로 이곳에서 쓰이겠지라는 생각에 잠깐 '혹시'하는 마음만 가지고 지나갔다.

 


핑크 핑크 한 벚꽃도 만개하고 날씨도 너무나 좋다. 마을 초입에 발견한 한 공터가 처음 이곳을 들른 여행객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반겨주었다. 사진을 한컷 찍겠다고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어 포즈를 취했다. 햇빛이 너무나 강렬해 눈도 못 떴지만 기분은 너무나도 좋았다. 따스한 햇살에 아름다운 마을 풍경까지. 그나저나 옆으로 본 나의 볼이 정말 토마스 저리 가라인 것처럼 통실통실하다.(아마 근래 맛있는 걸 너무나 잘 챙겨 먹은 탓인 것 같다.)



골목골목이 참 예쁘다. 그러면? 당연히 찍어야지! 선글라스를 써도 미친 듯이 내리쬐는 햇살에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 언니 얼굴은 절대 못 쳐다보았다. 그리고 괜히 멋 낸다고 짧은 치마를 입고 갔는데 다리가 다 탔던, 탈 수밖에 없는 날씨였다. 그래도 자그레브에서는 자주 못 볼 햇살을 이곳에서 다 보고 가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으로 가니 회전목마가 눈에 딱 띄었다. 프라하에서도 보았던 알 수 없는 기념품도 팔고 귀여운 양초 컵도 팔았다. 가족들 선물을 하나씩 모으고 있었는데 마침 이곳에서 고양이를 콘셉트로 한 도자기 팻말을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 지금쯤이면 자고 있을 치즈의 선물로 귀여운 팻말을 하나 장만했다. 치즈를 가장 많이 보필하고(?) 있는 막냇동생에게도 영상 통화할 때는 비밀로 해야겠다. 한국에 가서 보여줄게?



마을의 한 중간에는 광장이 있었는데 푸드코트처럼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오늘 점심은 고민하지 않고 여기다!라는 생각을 했고 우리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몇 가지 사서 자리를 잡았다. 색깔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낙동강 녹조라떼가 생각났지만 이거는 정말 깔끔하고 맛있었던 맥주였다. 봄이 아니라 햇빛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오히려 여름처럼 더웠는데 green beer은 목마른 우리를 달래준 최고의 음료수였다. 한국이 원조인 회오리 감자를 여기에서도 팔고 있었다. 그럼 또... 사서 먹어야 섭섭하지 않겠지? 너무 맛있었다. 바삭하기도 하고 쫀득거리기도 해서 지금껏 내가 먹었던 감자칩은 다 가짜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했다. 역시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먼저 사가 작은 부스러기만 먹게 되는 일일 뿐. 맛있는 거는 하루빨리, 가능한 한 빨리 사서 먹는 게 이득인 것 같다.



3-4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특이한 박물관도 구경하고


 

사람들 가는 길을 따라왔더니 물가에 도착했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저기 저 높아 보이는 체스키 성은 꼭 가야 할 것 같았다. 체스키에 왔으면 체스키 성은 들러야지?



이렇게 날 좋은 날 결혼하는 장면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소규모로 신랑 신부, 참석한 사람 모두 행복해 보여서 아무런 상관없는 나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행복하세요!



산책하듯이 슬슬 걷다 보니 성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엥? 성문에 들어서자마자 웬 곰 한 마리가 우리에 있었다. 얘가 여기에 왜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멀리서 보면 곰 자체는 귀여워서 사진 찍고 말았다. 하지만 나중에 민박 사장님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이곳은 '사형장'이어서 저 곰이 사형수를 잡아먹었다고.... 이야기를 들은 당시에는 소름이 쫙 들었지만 지금 저 곰은 해당사항이 아니기에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아, 지금은 맛있는 것만 먹자?



국제학생증으로 할인을 받아 뿌듯한 마음으로 성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아찔한 계단을 마주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다(너무 높아, 엉엉)



그래도 덴마크에 있던 성보다는 계단이 적어서 다행인 체스키 성. 하지만 너무나도 좁고 가팔라 올라오는 내내 집중을 해야만 했다.(잠시라도 정신을 놓치면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 정말 안 올라왔으면 너무 억울했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에 한참을 입 벌리고 구경했다. 함께 온 언니, 동기와도 외국인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었다.(그리고는 교훈을 하나 얻었는데, 역시 사진은 한국사람들이 제일 잘 찍는 것 같다.)





체스키 성 정복 성공! 제일 높은 꼭대기는 올라갈 수 있는 인원이 최소한으로 적어 얼른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면 눈치껏 내려와야 했다.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으니 이렇게라도 몇 장 찍어본다고 친구가 이리저리 열심히 잘 나올만한 각도를 찾아 찍어주었다. 기대서 찍은 분수대가 너무 작아서 귀염 뽀짝 했다.



산을 올라온 것 마냥 힘들기도 하고 갈증도 심했다. 우리의 여행은 힐링이 목적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쉬고 싶거나 힘이 들다면 한 템포 쉬었다 가기로 했다. 지금이 딱 쉬어가야 할 타이밍이라 체스키 성 근처에 위치한 작은 카페로 들어가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나는 곧 죽어도 아이스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메뉴판을 뒤졌고 다행히 우유나 크림, 아이스크림이 들어가지 않은 깔끔한 아이스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잠시 쉬기도 하고 길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구경하다 보니 배꼽시계가 조금 울렸나 보다. 친구는 프라하에서도 먹지 못한 굴뚝 빵을 이곳에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고민 없이 주문했다. 체코 돈을 조금만 환전했던 나는 남은 돈이 간당간당해서 친구가 산 굴뚝 빵을 야금야금 얻어먹었다. 쌀짝 목 막히는 게 내 스타일이었지만 한국에서도 찾아먹지 않을 맛이라 여행지에서만 맛본 걸로 만족한다.

 


좁은 골목길을 구경하다가 만난 예쁜 카페. 오래된 책방.

유럽에 살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꽃이나 초록 초록한 식물들을 많이 어딜 가나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꽃 시장이나 꽃가게를 가야만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와서 그동안 부족했던 꽃구경을 몰아서 다 하고 가는 것 같다.



한참 동안 체스키 골목 구석구석을 돌고 나니 벌써 프라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버스정류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는데 공원에서 뛰어노는 강아지들과 사람들을 발견했다. 너무 귀엽다. 멀든 멀지 않든 이렇게 시간을 내서 가족들과,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보며 나중에 나도 이렇게 여유로운 삶, 바쁘더라도 여유를 찾기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오니 해가 다 저물어 프라하에 도착했다. 원래는 체스키에 함께 갔던 친구의 지인들을 함께 만나 술 한잔을 하려고 했지만 너무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혼자 숙소로 돌아갔다. 너무 아쉽지만 내일도 여행을 이어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트램을 타고 혼자 숙소로 가는 길이 조금 외로웠는데 곧바로 강아지를 데리고 트램에 탄 주인 덕분에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너도 잠 오니? 피곤함에 잠이 쏟아졌지만 낯선 체코 땅에서 미아가 되기는 싫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숙소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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