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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17. 2020

[DAY62] 스플리트에서 보낸 하루

지수 일상 in Croatia


보통은 크로아티아로 여행 오는 사람들이 두브로브니크에서 최소 2박은 한다. 하지만 스케줄을 쪼개고 쪼개서 온 나에게 2일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아쉽지만 나는 두브로브니크에서 하룻밤만 자고 아침 일찍 짐을 싸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아침 일찍 떠나야 하는 일정 때문에 정신없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민박 지기(스탭)가 샐러드를 조식으로 챙겨 주셨다. 고마워요 글로리 킴!(손수 적은 쪽지까지... 감동)



4시간 정도 걸렸을까?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지도상으로는 가깝게 보였지만 막상 버스를 타고 와보니 두브로브니크에서 생각보다 멀었던 이 곳, 스플리트에 왔다! 혼자 자기 위해 에어비앤비에서 예약을 했는데 숙소의 위치, 컨디션 등 모두 좋았지만 호스트 Maja(마야)가 너무 착해서 더욱 좋은 인상이 남았다.



Terminal F. 스플리트에 도착하자마자 동행과 점심을 먹기 위해 만났다. 여행을 갈 때마다 같이 다닐 사람과 함께하는 편인데 이번에 혼자 하는 여행도 물론이었다. MBTI상 나는 E에 속해서 웬만하면 대부분의 모임에서 의도치 않게 사회자(MC)를 맡는 편인데 이번에도 역시나 내가 주도적으로 말을 걸었어야 했다. 나도 분명 낯을 가릴 수 있는 사람인데 이왕 여행을 하기 위해 만난 사람과 보내는 시간 내내 어색하게 있으면 오히려 서로에게 시간만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관계가 한편으로는  신선해서 재밌지만 또 한편으로는 쓸데없는 체력소모인 것 같아 조금은 힘들기도 하다. 점심으로 맛있는 햄버거집이 있다고 해서 바로 달려갔다. 빵 두께부터 장난 없는 곳.



점심을 먹으며 동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시간이 훌쩍 갔다. 어쩌다 보니 동행을 두 명이나 만나 총 3명이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 조합이 살짝 갸우뚱하게 만들긴 해도 오디오는 빌 일이 없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나는 좋았다. 여자분은 공항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일반적으로 공항 하면 떠오르는 스튜어디스가 아닌 비행기를 직접 관리하시는 설비사였다. 이쪽 분야의 사람을 많이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중 가장 만나보기 힘든 분야의 사람을 만나 괜히 반갑고 신기했다. 점심을 먹은 후 소화도 시킬 겸 스플리트의 유명한 리바 거리를 걸었다. 이리저리 굽이치는 골목길도 핸드폰 지도를 보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만난 젤라또 집, 또 모른척하고 지나가기엔 아쉬울 것 같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을 선택해 맛보았다. 알록달록하게 과일 맛을 기대하게 만드는 젤라또는 역시나 성공적이었다. 먹는 것에  있어서 종종 도전을 해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것 같다.



골목골목을 가다 보니 마주한 열주 광장. 한국인 패키지 관광객을 만나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부끄러웠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어린애가 뭘 해보겠다고 시도하는 걸 들킨 기분? 광장 한편에는 스핑크스 같은 게 놓여있었는데 아마 전리품?으로 가져다 놓은 게 아닐까 싶다. 또는 무역의 영수증 같은 흔적? 지하궁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내려가 보니 생각보다는 작은 공간이 나왔다.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공간이 쫙 펼쳐졌는데 나와 동행은 1분 정도 구경하고 빠르게 빠져나왔다.



큰 맘먹고 비싼 돈을 주고 지하 궁전을 관람할 수 있는 표를 구매했다.(정말 다행으로 국제 학생증 할인을 받았다. 이것마저 안 받았으면 돈 아까워서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지 싶다.) 보존이 하나도 안된 지하궁전... 지금껏 다녀왔던 궁전, 심지어 야외에 있는 유적지도 대부분 보존이 잘 되어 있었는데 이곳은 너무나도 보존이 안되어 있고 대부분의 공간에 물이 차 있어서 이끼 또는 관람 자체를 할 수 없었다.(조명 자체도 없는 곳이 다수) 실망스러운 마음이 가득한 와중 지하 궁전에 유일하게 볕이 드는 공간에 고양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양이 얼굴을 봐서라도 풀어야지 뭐.



학교 후배 지원이도 어쩌다 보니 같은 날에 스플리트로 왔다. 각자 다른 곳을 여행하다가 일정상 중간에 들른 곳인데 날짜마저 딱 맞다니. 각각의 동행들과 만나서 커피 한잔을 하기로 했다. 지원이도 살짝 나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우리 둘이 사회자가 되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말을 무진장 많이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적막함이 가득....) 그래도 정말 신기한 인연이라며 만난 사람들 모두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보냈다.



다시 리바 거리를 지나 스플리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와중에 성당이 있었는데 마침 그날, 그 시간에 결혼식이 열렸나 보다. 성스럽게 느껴지는 피아노 소리와 함께 하하호호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의 행렬까지. 여행을 하며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을 현지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결혼식만큼 설레게 만드는 때는 없는 것 같다.(그렇다고 결혼에 대한 무지막지한 환상은 없다. 그래도 한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모였다는 사실 자체가 부럽다는 정도?) 안타깝게도 하늘이 화창하지 않고 안개가 자욱했다. 여행 온 나도 섭섭한데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 신부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언덕 위에 올라와 보니 자다르처럼 이곳 스플리트도 보트가 천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개 때문에 노을도 안 보여서 속상했다.



그럴 때는 뭐다? 밥부터 먹자! 밖에서 안 먹고 장 봐서 후배의 숙소에서 저녁을 해 먹었다. 분명 요리할 때는 많다고 노래를 불렀던 거 같은데 먹다 보니 어째 다 먹었다. 인간의 배는 신기한 것 같다. 스플리트에서 동행과 요리까지 해 먹고 헤어지다니, 참 신기한 인연인 것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해도 되고, 아니면 그만인 사이.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동행으로 만난 사람들에게 그러한 인연이었으니까. 이러한 관계를 통해 잃는 것은 정말 조금이었고 오히려 좋은 추억, 좋은 인연을 만난 것 같아 나는 굉장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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