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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18. 2020

[DAY63] 이렇게나 화려한 피터팬이라니

지수 일상 in Croatia


스플리트에서 보내는 두 번째 날. 숙소가 너무나 편안해서였을까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꿀잠을 자버렸다. 소리나 잠자리에 굉장히 예민한 편인데 이번 숙소는 대 성공이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너무나 강렬해 창문을 곧바로 열었는데, 아니 글쎄 이게 무슨 일인가? 전날까지만 해도 안개가 짙어 노을도 보지 못하고 약하지만 비까지 맞았는데. 이럴 때 보면 날씨가 참 야속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도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면 그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자그레브 집으로 돌아가는 날 날씨가 제일 좋은 게 사실인가. 어제는 이렇게 바닷물 색이 맑지 않았던 거 같은데 왜 하필 오늘 이렇게나 에메랄드 빛인 걸까? 너무나도 억울해서 눈물이 날뻔했다. 슬픔을 꾸역꾸역 참으며 숙소 근처에서 포장해 온 참치 샌드위치를 먹었다. 여기서 한번 더 서러웠는데 기존에 먹던 든든한 참치 샌드위치보다 훨씬 빈약했는데 불구하고 가격은 오히려 배로 비쌌다. 에이... 배만 안 고팠으면 절대 안 먹었을 건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 동생이 한국에서 내 옷을 입고 사진 찍은 게 걸렸는 하는 말이 어이가 없다. "언니가 보고 싶어서 언니 옷이라도 입었어. 언니 냄새라도 날까 봐"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말 하나는 정말 말이 안 나올 정도로(기가 차서) 잘한다. 한국에 가서 두고 보자.



자그레브는 떠나는 날부터 도착한 지금까지 맑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불닭 볶음면을 끓여 먹었는데 정말 한국사람은 일정한 주기로 매운 걸 먹어줘야 한다는 것을 한번 더 깨달았다. 맵찔이가 되어서 먹는 게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다.



왜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를 타이트한 일정으로 여행해야 했는지, 당일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자그레브로 와야 했는지 여기에서 이유가 나온다. 바로 '피터팬' 발레를 관람하기 위해서! 약 2주 전, 룸메이트 학교 수업시간에 피터팬을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티켓이 있는데 관람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룸메이트도 나도 한 번쯤 자그레브 공연장에 가보고 싶어 티켓을 구매했고 여행 일정과 조금은 겹쳐 빠듯했지만 다행히 제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던 날, 조금 피곤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생각에 기분만은 최고였다.(많이 피곤했는지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눈이 감겨오는 건 비밀이다.)



오호? 생각보다 많이 화려해서 신기했다. 한국에서 뮤지컬이나 공연을 종종 보러 갔지만 이렇게 유럽에서, 1층부터 천장까지 하나도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없는 곳에서 저렴하게 공연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약 1만 원도 안 하는 금액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지하에는 오케스트라도 나름 있고,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이 공연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사 없이 진행되는 발레 공연이라 조금 생소하기도 하고 조금 지루하기도 했는데 음악의 수준은 매우 높은 퀄리티라 귀만큼은 행복했다.



피곤해서 중간중간 졸기도 했지만 그래도 공연 끝까지 정신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나름 볼만했던 공연! 공연이 막을 내리기 전 커튼콜을 위해 출연진들이 하나하나 인사를 하며 등장했다. 어느덧 대부분의 출연진이 나오고 끝나나 했는데 무대에 선 사람들이 한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는데 공연의 감초 역할이었던 악어가 무대로 엉금엉금 기어 왔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이었고 극장 안을 채운 사람들 대부분이 빵 터져 웃었다. 이렇게 나의 첫 자그레브 극장 방문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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