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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16. 2020

[DAY61] 이제 혼자 다니는 여행은 껌?

지수 일상 in Croatia


눈을 떴는데 핸드폰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은 오전 수업이 있는 날인데 왜 나는 지금 일어났어? 입으로 작게 욕지거리를 읊고는 신경질 낼 시간도 없이 학교에 가기 위해 양치와 세수만 하고 집을 나섰다. 난생처음으로  학교에 가기 위해 우버까지 불러서 미친 듯이 학교 왔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가 문득 느낀 것, 오늘은 수요일이고 수요일은 아침 10시 반 수업이 있는 날. 괜히 뻘 짓을 한 것이다. 피 같은 생돈만 날리고 우버는 야속하게 계속해서 학교로 향했다. 아저씨가 신나게 밟아주신 덕분에 예상보다 더 일찍 학교에 도착했고 나는 곧장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허무함에 빈속에 들이킨 요거트....정말 나는 바보 미친놈였다. 시험을 친 다음 주라 그런지 교수님은 보이지 않고 아침에는 조교만 얼굴을 비췄다. 아침에도 심장 두근거리는 일이 한가득이었는데 학교에서도 서프라이즈 POP Quiz를 치렀다.  정신없이 치고 세미나 시작 전 지원이와 커피 한잔을 했는데 잠시 쉬어 가는 쉼표 같은 느낌이었다. 지원이도 갑자기 친 시험에 정신을 못 차리겠는지 조금의 알코올이 들어간 썸머쓰비의 유혹에 넘어갔다.



집에 와서는 룸메이트와 함께 장을 보러 갔다. 평소였으면 너 하나, 나 하나씩 2L짜리 생수를 들고 왔을 거다. 하지만 드디어 머리를 써서 배낭을 가져가 어깨에 지고 왔다. 훨씬 편하고 덜 부담스러웠는데 우리는 왜 이제야 이 방법을 깨달았을까? 급한 집안일과 과제를 하다가 무려 밤 11시 55분 버스를 타기 위해 나 혼자 트램을 타러 나왔다. 그런데 술 취한 애들이 길에 너무 많아서 결국 우버를 불러서 터미널까지 갔다. 이로서 오늘 하루에 쓸데없이 우버를 두 번이나 탔다. 하 아까운 내 돈



약 12시간 동안 꼬박 버스를 탔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도착한 이곳은? 바로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에 속한 지역이지만 오는 길에 보스니아 국경을 지나와야 하기에 여권 검사까지 받았다. 잠 한숨을 편히 자지 못했지만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 혼자라도 버스를 타고 왔다.  4쿠나밖에 안 하는 자그레브 교통권에 비해 12쿠나나 하는 이곳.... 크로아티아의 청담동 답다.



너무나도 비싼 물가에 숙소를 찾는 것부터 고민이 많았는데 저렴하고 성벽 안에 위치해 있고 안전하며 이동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다 보니 두브로브니크에 딱 한 곳, 부자 한인민박이 있었다. 숙소에 가장 먼저 들러 체크인을 하고 민박지기와 인사를 했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후배 지원이가 두브로브니크를 왔다가 알게 된 분이라고 소개해줘서 그런지 처음 만났는데도 서로 편하게 말을 놓을 수(있었나?) 있었다. 숙소에 짐을 두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전날 저녁도 간편하게 먹고 출발한 터라 매우 배고팠다.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한 노신사가 레스토랑 앞에서 환하게 인사를 해 줘서 나도 모르게 쓱 들어가 버렸다. 메뉴를 한참 보다 보니 스위트 한 할아버지가 꽃병에 꽃을 꽂아 테이블에 올려주셨는데 그거 하나로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일단 커피 한잔 주문했는데 오늘도 역시나 에스프레소에다가 따뜻한 물을 추가로 부탁해 내가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아메리카노로 완성했다. 이런 식으로 먹다 보니 한국에 가서도 이렇게 먹을까 겁나긴 했지만 해외, 특히 유럽에서는 꽤나 추천하는 방법이다. 브런치는 역시 오믈렛이 진리라 고민 없이 선택했지만 12000원짜리라 처음 받고는 조금 실망,,, 감자튀김이 기름에 절여져 나와서 거의 남겼지만 오믈렛은 싹싹 비워서 먹었다. 혼밥을 하고 있는데 동행을 하기로 한 언니가 이쪽으로 오겠다고 해서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금세 친해졌다.



언니는 내일 친구와 함께 성벽 투어를 한다고 해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홀로 햇빛이 제일 강렬한 1시에 성벽 투어를 하다니. 벌써부터 기대된다?



역시나 쨍쨍한 하늘, 구름이 한 점도 없었다. 사진을 찍으면 선명하고 아름답게만 보이지만 현장에 있었던 나에게는 죽음이었다. 하 덥네? 앞은 광활한 바다이고 뒤는 스지르 산이 우뚝 솟아있었다. 산 위에서 노을질 때 올라가면 전망이 최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정치적인 이유로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되어 올라갈 수 없었다. 사실 우버를 이용하면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비용적인 문제, 안전상의 문제로 나는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SNS에 올라오는 한국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홀로 위로했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건물 중간중간에는 정원이 꾸며져 있었는데 주황색 지붕만 가득할 것 같은 곳에 초록 초록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게 조화롭고 꽤 아름다웠다.



쭉 뻗은 골목길도 보이고, 날씨가 맑아서 그런지 멀리 보이는 섬도 선명하게 보이고 전망하나는 최고였다.



옛 국가의 깃발, 동굴 안의 작은 틈으로 바라본 두브로브니크의 모습까지. 이곳의 풍경이 정말 이쁘긴 했지만 사실 약 1시간 동안 성벽 투어를 했는데 너무 자주 보다 보니 이제 주황색 지붕이 감흥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멀서 본 푸른 바다가 절벽에 부딪히면서 물조각이 깨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수영복만 챙겨 왔으면 얼굴에 철판 깔고 외국인들 사이에서 나도 수영했을 텐데(아쉽다). 더워서 그런지 성벽에 기대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도 꽤 보여 나도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췄다.



카페처럼 보이는 저곳에서 나도 커피 한 잔을 하고 싶다. 왜냐면 너무나도 더워서 곧 탈수하기 직전이기 때문,,, 그래도 힘을 내 걸어가니 중간중간에 작은 정원이 나왔는데 요런 소소한 공간을 구경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 정말 한 도시의 구석구석을 알게 된 기분?



약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 끝난 성벽 투어. 더위 때문에 곧 죽을 것 같아서 피스타치오 젤라토로 수혈하러 갔다. 크로아티아의 청담동이라 그런지 자그레브보다는 조금 비쌌지만 그래도 젤라또에는 다들 진심인지 생각보다는 별로 안 비쌌다. 젤라또 가격이 살짝 최후의 보루 같은 느낌?

 


두브로브니크에는 고양이가 참 많았다. 하지만 버려진 유기묘가 아닌 동네에서 자체적으로 양육하고 있는 듯했다. 마을 곳곳에 사료와 물이 놓여있기도 했지만 고양이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도 많았다. 한국에 있을 나의 고양이 치즈가 보고 싶은 하루이기도 했다. 동행 언니와 다시 만나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슬슬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성벽 안에는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노을에 반사되는 빛이 도시를 굉장히 꽉 채우도록 만들었다. 해가 떠도 아름답고 져도 아름다운 도시인 것 같다.



저녁에는 민박집에서 고기 파티를 연다고 해서 동행 언니도 초대해서 갔다. 민박과 조금은 떨어진 한 공간으로 향했는데 가는 중간에 민박지기가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두브로브니크의 spot을 설명해주어 굉장히 신기했다. 아지트처럼 꾸며진 공간에 도착하니 미리 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민박 주인과 민박지기가 주최자가 되어 한식과 고기, 술을 제공해주셨다. 참가비 냄) 언니와 나 말고도 다양한 곳에서 온 여행자들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또래의 한국인을 만나서 그런지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노래방 기계가 왜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노래까지 틀면서 즐긴 엉망진창 파티였지만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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