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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20. 2020

[DAY67] 말똥냄새가 가득한 비엔나

지수 일상 in Austria


오늘은 오스트리아로 떠나는 날! 오랜만에 후배 지원이와 둘이 하는 여행이라 떠나기 전부터 매우 설렜다. 출발하려고 모든 준비를 다 끝냈는데 갑자기 플릭스 버스 어플에 알람이 떴다. 클릭해보니 8시 40분에 떠나기로 한 버스가 20분 딜레이 되었다는 알람. 다른 지역을 거쳐 자그레브로 오는 버스이기 때문에 딜레이 될 수는 있지만 늦는다고 알림을 주는 것도 처음이라 신기했고 집을 떠나기 직전 알림을 받아 조금 김이 빠졌다.



20분 딜레이 돼도 우버를 타고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어리석은 사람(=나). 분명 일찍 준비해 집에서 멍하니 대기까지 했으면서도 왜 버스터미널에는 간당간당하게 도착하는 걸까? 이게 다 제시간에 오지 않는 트램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한국의 그 흔한 지하철이 그립니다. 아침은 가볍게 제치고 여행을 시작한 지원이와 나는 버스에 오르기 전 근처 빵집에서 소시지 빵을 사서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짭조름한 빵이라 그런지 반가우면서도 여행 가는 느낌이 물씬 나 설렘이 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하자마자 메트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 가는 길에 만난 공원. 굉장히 넓은 이곳에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피크닉, 놀이터 등을 즐기기 위해 모여있었다. 어린아이부터 연인,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굉장히 구성이 다양했다. 숙소 근처에 공원이 있다니. 서구의 공원은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른 경우가 많다. 낮에만 하더라도 어린아이들이 뛰어놀던 곳인데 밤만 되면 노숙자들이나 비행청소년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저녁에는 이 곳을 거치지 말고 다른 길로 와야겠다. 에어비앤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호스트의 집을 빌려서 인지 후기도 별로 없었지만 가격 대비 위치나 사진이 훌륭해 보여 예약했다. 결과는 대만족! 노랑노랑 한 침대 이불부터 호스트의 취향이 담긴 빈티지한 소품까지. 딱 좋았다.



Mosaik.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짐 푸를 새도 없이 곧바로 길거리로 나섰다. 아침을 거의 안 먹었다고 무방했기에 일단 점심부터 먹었다. 여행 왔는데 이왕이면 맛집을 골라 찾아가면 참 좋겠지만 우리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숙소 가까이에 그나마 평이 많은, 괜찮은 곳을 찾아 들어갔다. 모차르트의 나라가 아니랄까 봐, 벽에 악기를 붙여놓은 인테리어가 나를 진정한 오스트리아로 데리고 왔다. 어딜 가나 라들러는 있는 유럽, 오늘도 1일 1 라들러를 실천했다.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지금껏 먹은 까르보나라중에 가장 맛있었다. 배가 고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문한 메뉴 모두 맛있어 오스트리아를 떠나기 전 한 번 더 방문해 먹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슈테판 대성당.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난 후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본격적으로 비엔나를 탐험했다. 시내 중심으로 들어오니 역시나 성당이 우뚝 솟아있었는데 어딜 가든 유럽의 성당은 보수공사를 안 하는 곳이 없나 보다. 이 곳 역시 공사를 위한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갤럭시를 광고하는 이미지가 붙어있어 낯설면서도 괜히 어깨가 펴지는 기분이었다. (외국으로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더니, 나를 보고 하는 소리였나 싶다.) 슈테판 대성당으로 숨죽여 들어가니 사람들이 무언갈 찍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조금씩 헤쳐 가며 앞으로 다가가니 성당에 전시된 돌을 찍고 있는 걸 발견했다. Sky of stones. 공중에 돌을 띄워두었는데 멀리서나마 지켜보니 되게 멋있게 느껴졌다. 돌이 어색하지 않고 성당이랑 잘 어울리는 듯한? 유럽의 성당은 종교와 상관없이 한 번쯤 들어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걸 다시 한번 더 느꼈다. 이곳도 역시나 스테인 글라스가 위쪽 창문을 빠짐없이 장식했지만 그림이 그려져있지 않고 담백하게 색색깔의 창을 채우고 있어 더 예쁘게 느껴졌다.



오스트리아가 모차르트로 유명한 나라라 모차르트 박물관이 있다면 한 번쯤 가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규모도 굉장히 작고 입장료도 비싸 흥미가 쉽게 죽었다. 입구까지 들어갔다가 입장료를 보고 곧장 나왔다(비밀)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니 분수대가 있었는데 금장 장식에 푸르른 하늘까지. 이 도시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게 만드는 요소가 한 데 모여있는 것 같았다. 응? 저게 무슨 건물이지.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걸어가 우리도 그들을 따라갔다. 엄청나게 큰 건물이 우리를 반겼는데 호프부르크 왕궁이었다. 건물 앞에는 말이 관광객을 위한 마차 체험을 위해 대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보다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바로 말똥 냄새. 도시에서는 쉽게 맡기 어려운데 그 어려운 걸 비엔나가 하고 있었다.



 The vienna store. 편집샵을 좋아하는 나는 후배와 함께 호프부르크 왕궁의 근처에 위치한 한 편집샵에 들어갔다. 이곳은 괴짜 같은 오스트리아 감성을 담은 기념품 샵인 것 같았다. 통조림, 틴 케이스, 책, 엽서, 마그넷 등 수많은 기념품이 독특한 주제를 가지고 진열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곳에서 예쁜 엽서 두 장을 샀다. (하나는 막냇동생 지민이를 위한 선물로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고양이 러버에게는 맞춤인 것 같아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비엔나 어딜 가든 만날 수 있는 마차. 덕분에 비엔나 길거리는 말똥 냄새로 가득하다.



Cafe Central. 이곳은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자주 방문한 곳이어서 유명해진 곳이다. 인테리어는 그 세월을 짐작할 만큼 고풍스러우면서도 클래식해 프로이트가 이런 분위기를 좋아했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안녕 프로이트? 모형 프로이트 앞에서 사진을 한참 찍던 지원이가 웃겨서 피식하고 웃기도 했다. 디저트 케이크도 꽤 많았는데 가격대가 높아 눈으로 구경만 했다. 음료 두 잔과 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다. 나는 따뜻한 카푸치노를 주문했는데 온도도 적당하고 맛도 적당히 씁쓸해 매우 만족했다. 카페 중간에서는 한 할아버지가 피아노를 치고 계셨다. CD를 튼 줄 알았는데 중간중간 사람들이 박수를 쳐서 주위를 둘러보니 할아버지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분위기 너무 좋은데? 나중에 비엔나에 다시 오게 된다면 또 방문하고 싶었던 공간임은 틀림없다.



잘 마시고 갑니다? 밤이 되니 더욱 아름다운 왕궁.



이날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였나? 챔스 경기가 있어서 근처 펍에 가서 축구경기를 보기로 했다. 경기를 함께 볼 동행도 구해서 만났는데 이게 웬걸, 펍마다 사람들이 잔뜩 있어 자리를 찾기도 어려웠고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엔나에 펍 자체가 너무나도 적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전반전이 시작된 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자리도 이미 사람들이 앉아 있던 곳이었는데 의자를 가져다가 앉으면 세 사람은 충분히 앉을 수 있을 것 같아 자리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합석을 한 상태였다. 근데 여기서부터가 잘못된 걸까? 질문충인 한 외국인이 계속해서 나와 지원이에게 말을 걸어서 보고 싶은 축구는 집중해서 보지 못하고 의도치 않게 영어만 잔뜩 늘어나 버린 시간이었다. 고통받는 지원이를 뒤로하고 나는 벽에 걸린 TV를 보며 맥주를 마셨는데 전반전 쉬는 시간에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남녀 무리를 발견했다. 어려 보이는 그들은 남자 3명, 여자 3명으로 이루어진 모임이었는데 남자 3명은 모두 축구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여자 3명은 대부분 축구에 관심이 없고 그 남자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난 것 같았다. 한참 좋을 때다 하고 늙은이처럼 그 무리를 지켜보았는데 조금 나이 든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직 23살밖에 안된 사람...) 하루를 아주 알차게 보낸 오스트리아에서의 첫날도 이렇게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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