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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21. 2020

[DAY68] 클림트를 내 눈으로 보다니

지수 일상 in Austria


오늘도 역시 날씨가 맑은 오스트리아. 여행의 8할은 날씨가 다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길을 나설 때부터 흥얼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도 당황스러웠지만 그만큼 날씨가 좋다는 말이니 그러려니 하고 그 기분을 즐겼다. 숙소에서 나와 트램을 타고 내린 한 정류장에서 바라본 곳, 자그레브와 다르게 건물 외벽 색깔이 너무 예쁘다.



벨베데레 궁전. 오스트리아다운 깔끔한 외관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정돈된 정원과 연못이 어우러져 진짜 유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진짜 유럽에 있으면서도 궁전을 보지 않으면 가끔 유럽에 있다는 사실을 까먹게 되는 것 같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주중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은 넘쳐났다. 한참을 줄 서서 입장권을 산 우리는 궁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진이 빠진 느낌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궁전은 삐까번쩍했다.



수많은 작품들을 거쳐 드디어 클림트의 THE KISS를 보았다. 사실 모네와 비슷한 화풍을 가진 그림을 평소에 봐 왔어서 별로 기대를 안 했다. LG 광고나 검색만 해봐도 볼 수 있는 유명한 작품이라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직접 가서 실제 작품을 보니 느낌이 달랐다. 금칠이 되어있어 그 어느 그림보다 화려한 듯하지만 그림이 담고 있는 사랑 때문인지 꽤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클림트 그림 최고, 감동이다.

 


그 와중에 미술을 다양한 각도로 관람한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 어린이 친구들을 만났다. 일단 이들 무리가 너무 귀여웠다. 작품을 설명해주는 선생님에게 모든 아이들이 집중하는데 나도 독일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바닥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을 만큼? 하여튼 작년 겨울, 융합전공 공부 중 해외연수에 선발되어 미국에서 실컷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한 미술관에서는 자체적으로 곳곳에 이젤을 배치해 미술학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또한 오랫동안 작품을 기억에 남길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에는 그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도 이런 장치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때 그 생각을 하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라 또 새로웠다.



붓터치가 살아있는 느낌을 한껏 받아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아침을 먹지 않고 공복에 관람을 해서 그런지 굉장히 지쳐 보이는 듯하다. 조금만 기운 내?



이번 오스트리아 여행 중 벨베데레 궁전 안에 있는 작품도 물론 훌륭했지만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시선이 갔다.  그중 청바지와 핏 되는 스프라이트 티를 입고 계시던 백발의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외국에 나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한국의 경우 어린 학생, 또는 데이트를 즐기러 온 젊은 나이 때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전시관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나 또한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미술은 신기하다.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이렇게 사실적으로 색 표현을 잘할 수 있을까?



관람 도중 창밖을 바라보니 궁전의 뒤쪽 정원이 또 반겨주었다.



사진과 그림의 어우러짐. 이 공간은 오스트리아 가족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함을 얻는 것 같았다.



궁전 안에서 바라본 정원으로 나왔다. 날씨가 맑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다. 하지만 춥지는 않은,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라 산책을 하며 룰루랄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진을 한 장 찍기 위해 정원 한편에 섰는데 바람이 너무나도 많이 분다. 머리숱도 숱이지만 와, 교환학생을 온 이후로 한 번도 자르지 않아서 그런지 정말 길다. 앞을 보고 정면으로 찍으려니 얼굴이 엉망이다. 바람아 멈추어 다오? 역시 나는 뒷모습이 제일 예쁜 것 같다.



Salm Braeu. 벨베데레 궁전 근처에 맛집이 있다는 한 블로거의 말을 믿고 관람을 끝내자마자 곧장 이곳으로 향했다. 궁전에서는 약 5분 거리 정도? 배가 매우 고픈 상태였던 나의 마음에도 들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일단 앉자마자 라들러를 주문했다.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한 생맥주 스타일을 주문했는데 병이 제일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맥주는 니맛도 내 맛도 아닌 맛이라 실망스러웠다. 갈릭 수프와 샐러드, 메인으로 립을 주문했다. 갈릭 수프는 적당히 고소하고 느끼해서 든든하게 딱이었다. 식사를 하며 풀을 안 먹어주면 죄책감이 들기에 자연스럽게 샐러드를 주문했다. 화장실을 편안하게 가기를 희망하며 기대 없이 주문했는데, 웬걸? 샐러드를 주문한 게 정말 신의 한수일 정도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맛도 있었지만 식사 중간중간에 리프레시시켜주는 역할도  담당했기 때문이다. 립 맛집인 거는 알고 있었지만 유럽을 여행하며 이 날이 제일 잘 먹은 날인 것 같다. 최고다. 이 글을 보는 사람 중 오스트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곳을 꼭 가봤으면 좋겠다. (참고로 사진으로 보이는 저 양이 1인분이다 꼭 샐러드와 립을 주문하세요)

 


밥 먹고 이동하기 위해 트램 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렸다. 아니 근데 아 나라는 정류장도 왜 예뻐? 배도 부르겠다 아름다운 풍경에 사람이 굉장히 넉넉해지는 기분이다.



ALT&NEU. 영화 '비포 선 라이즈'에 나온 LP판 가게로 유명한 곳이다. 나의 방문 목적은 딱 두 가지. 하나는 에코백을 사는 것, 두 번째는 내가 사랑하는 재즈 CD를 사는 것. 부푼 마음으로 이곳에 가니 영화 속에서 봤던 그대로 수많은 LP판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알록달록한 LP판을 구경하기도 하고 직접 음악을 들어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까,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잘 프린트된 에코백을 골라 계산을 했다. 그때 주인아저씨가 나를 지켜보셨는지 LP판과 CD를 챙겨주시겠다며 나의 음악 취향을 물으셨다. 괜찮다고 사양을 했지만 선물이라며 계속해서 물었고 감사하게도 재즈 CD를 찾아 선물로 챙겨주셨다. 지금 당장은 들어볼 수 없어 아쉽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들어봐야겠다.



Phil Cafe. 여행 중 미술관, 관광지 등을 찾아가는 것 또한 의미가 있지만 나에게는 카페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루에 최소 한 군데는 현지의 카페를 가는 걸 혼자만의 철칙으로 삼아 왔기에 열심히 검색해 찾아낸 곳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야외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라 실내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카페로 한참을 걸어와 조금 더웠는데 메뉴판을 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판매하고 있어 곧장 주문했다. 얼음이 동동 띄워져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곧바로 나왔다. 마시기 전 이전의 카페들처럼 밍밍할까 봐 걱정을 했는데 하나도 연하지 않고 맛있었다. 한국에서는 산미 있는 커피보다는 고소한 커피가 많아 조금 아쉬웠는데 유럽은 이 부분에 있어 최고인 것 같다. 바로 옆에는 작은 책방도 같이 운영 중이 었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구경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직원들 바이브도 활기가 넘쳐서 즐거웠는데, 그중 한 언니의 패션에 취향을 저격해 혼자서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패션센스에 박수를 보냈다.



독일어로 된 책 말고도 영어로 된 책도 많아 꽤 구경할 맛이 났다. Don't classify me, read me. L'm a book, not a genre. 이 글귀를 읽고 나의 책 편식을 반성하기도 했다.



쇤브룬 궁전. 고생 고생해서 갔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그저 자그마한 공원만 있을 뿐? 사실 사진으로 담은 마당의 푸른 풀도 이게 다였고 뒤를 돌면 전부 모래 바닥이었다. 실망스럽다. 여행을 하다 보면 블로거들이, 또는 지도에 첨부된 사진을 보고 무작정 향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가보면 실망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는 와봤다, 라는 생각으로 아쉬움보다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고 다르게 생각했다.(그 편이 마음 편하다. 아니면 계속해서 아쉬움만 가득할 것)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힘이 들어 잠시 숙소에 가는 길,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전날에는 보지 못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공원 근처에는 작은 놀이동산이 있었는데 그중 동그란 관람차가 나의 눈에 문득 들어왔다. 힘들었던 하루를 보내며 피곤이 가득했는데 이 장면을 보자마자 피로가 싹 풀렸다.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숙소에 들어가 잠시 쉬다가 지원이와 나는 비엔나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또 동행을 구했다. 그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발견한 노을 지는 하늘, 순간순간을 놓치기 싫은 날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 치고는 꽤 빠르게 친해졌다. 그중 한 사람은 폴란드에 위치한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주재원이었는데 휴가를 보내기 위해 6시간 동안 차를 몰아 오스트리아로 왔다고 했다. 소주 러버라 여행 중간에 만나게 될 한국사람들과 함께 마실 소주를 차 트렁크에 몇 병 실어왔다고 해 그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열정까지 보였다. 그가 우버를 타고 소주를 가지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근처 오페라 하우스 야경 맛집이 있다고 해서 올라갔다. 막상 올라가니 한국인들에게 꽤 알려진 야경 맛집이었나 보다. 한국인 투성이라서 사진을 찍는데 조금 눈치가 보였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으니(왜냐면 곧 소주를 마시거든요) 사진을 빠르게 후다닥 찍었다.

 


1차로 저녁을 먹은 동행과 우리는 2차로 한 바에 갔다. 생각보다 일찍 문을 닫는 오스트리아의 술집 문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늦게까지 여는 술집을 찾기는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보다 오스트리아에 며칠 일찍 온 동행이 구석에 위치했지만 나름 오래, 나름 안주가 맛있는 곳이 있다고 해 곧장 향했다. 잘 모르는 낯선 이로부터 듣는 그들의 삶 이야기, 인간관계, 잘 아는 지인이었다면 오히려 말하지 못했을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한국에서는 내 사람만 잘 챙기자 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앞만 보며 살아왔는데 여행을 하며 이런 관계도 만들 수 있어 나름 좋았다. 한국에서도 연락을 할지는 미지수지만 이곳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꽤 괜찮은 관계인 것 같다. (참고로 이 사진은 숙소에 있었던 바디워시인데 출국하기 전에 꼭 살 생각으로 기록해 두었다. 정말 달콤한 향이라 샤워하다가 마시고 싶을 만큼 향기로웠다.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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