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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02. 2020

[DAY81,82] 다시 돌아온 일상, 그리고 아쉬움

지수 일상 in Croatia


Tourism principle 수업을 하는 날이면 전날 저녁부터 긴장이 된다. 왜냐하면 지각을 하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가차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아침부터 비가 오기도 했고 늦장을 부리다가 늦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고민하지 않고 우버를 불러 학교로 갔다. 한국보다 저렴한 택시비 덕분에 우버를 타는 거지 만약 한국이었다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갔을 것이다.(사실 엄마한테 부탁해서 차를 타고 갔겠지?)



한국에 있는 친구와의 합동작전으로 계절학기 수강신청을 했다. 2과목 중 다소 쉬운 과목은 무사히 신청했지만 경쟁률이 치열할 것 같았던 수업(전공 필수 과목이기에 항상 인기가 많다.)은 실패하게 되었다. 많이 아쉬웠지만 시간을 내어 수강 신청해준 친구에게 우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저학년이었다면 수강변경기간에 주야장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나는 4학년 아닌가? 4학년이라고 다를 거는 없지만 조금 더 노련하고 찌질한 메일 쓰기가 가능하다. 최대한 구질구질하게 메일을 써서 교수님께 보내니 친절한 답장과 함께 증원을 받아주셨다. 이런 훈훈한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빌넣(빌고 넣기)이 통할 때면 아직 세상을 살만하다고 느끼게 된다.



Tourism principles 강의를 1차로 끝내고 뒤이어 해야하는 되는 세미나를 기다리며 비가 와서 추운 날, 커피 한 잔으로 힘을 내 보았다. 빌넣이 성공해 행복한 감정이 더욱 나를 따뜻하게 감싸는 느낌이기도 했다.



설마설마했는데, 결국 싸이가 모교 축제 때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왜 나만 못가?(눈물) 너무나도 가고 싶은 데 갈 수 없는 이 환경을 탓하며 나의 간절한 마음이 흠뻑쇼까지 다하버렸다. 근데 슬프게도 흠뻑 쇼 또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와 겹쳐 갈 수 없었다. 이래저래 올해는 싸이와의 인연이 없나 보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룸메이트와 콘줌에 가 장을 실컷 봐 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엄마 따라 마트에 가는 게 전부였지만 자그레브에서 자취를 하니 일주일에만 두 번 정도? 많으면 세 번까지 장 보러 가는 것 같다. 언제 갑자기 여행을 떠날지 모르는 일정이기에 냉장고 안에 재료를 많이 사두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자취방 냉장고가 너무나도 허약해 신선하게 보관해주지 못하는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낑낑대며 장을 본 후 곧장 집으로 돌아오기 아쉽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빈첵(Vinceck)에 들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추운 와중에 덜덜 떨면서 먹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당 폭발 현장인 건지, 집으로 돌아와서는 청포도까지 야무지게 씻어 먹었다.



다음날, 벌써 지히를 만나기로 한 날이 돌아왔다. 자그레브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만난 우리는 그날 이후로 가끔 연락을 했다. 마치 사이버 친구처럼? 이날 약속을 잡게 된 것도 SNS로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번개처럼 잡은 약속인데 자그레브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즘 만났는데 불구하고 어색하지 않고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지난번에 방문해서 깨달음을 얻은 걸까? 이 카페는 되도록이면 1인 1 디저트를 실천하기에 딱인 곳이라 당연하게 각자 베이커리를 주문했다. 결과는 역시 성공적. 커피와 함께 먹으니 이곳이 천국인가 싶었다. 좋은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에 맛있는 빵까지 함께하다니. 행복하다.



지히와 함께 한참 수다를 떨고 난 후, 옐라치치 광장으로 돌아와 뮐러 마트에 잠시 들렀다. 지하로 내려가면 식품부터 사탕, 과자, 젤리, 치약, 세제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모여있는데 그곳에서 휴지 2개만 포장되어있는 상품을 발견했다. 마침 휴지가 딱 2개만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던 후배 지원이가 생각이나 이 소식을 제보해 주었다. 7.90쿠나니까 짤짤이 챙겨서 얼른 와?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가 발견한 동물 코너. 한국에서도 가끔씩 구매했던 상품인데 여기에도 있다니! 한국에 있는 치즈에게 갖다 바쳐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저렴할 것 같았는데 한국의 가격과 비슷한 것 같아 괜히 짐 만들기는 싫어 슬프지만 매대에 올려두고 왔다. 치즈야 미안해?



며칠 전, 바르셀로나에서 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들어 구매했던 앤 아더 스토리즈 팬츠를 처음으로 개시했다. 괜히 색깔이 예뻐 계속해서 사진을 남겼는데 생각해보니 학교 안 가는 날에만 제일 꾸미고 나오는 것 같다. 역시 한국이나 자그레브나 학교는 그저 학교일뿐인가? 딱히 학교에 큰 뜻이 없는 건 분명하다.



곧장 집으로 가려다가 후배 지원이와 연락이 닿았다. 마침 시내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보고 싶었던 근처 카페로 향했다. 오랜만에 1일 2 카페인데? Kava s mlijekom로 적힌 메뉴를 주문했는데 바로 Coffee with milk라는 뜻으로 보통의 카페라떼를 뜻한다. 카페라떼라고 명시해놓은 카페도 있지만 크로아티아에서는 주로 이런 식으로 풀어 적는 것 같다. 우유맛이 강한 커피는 좋아하지 않는데 이 커피는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비율이 적당해 맛있었다. 카페에 가면 주로 노트북이나 과제할 거리를 들고 가 대부분의 시간을 고개 숙이고 있는 편이었는데 오랜만에 이야기만 하러 카페에 가 나름 새로웠다.



룰루랄라. 자그레브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아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으로 곧장 들어가면 분명 후회할 것 같기도 하고 카페인을 오랜만에 가득으로 충전했더니 에너지가 많이 남아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담쟁이 안녕? 예쁜 하늘과 분위기. 산책 삼아 몇 번 지나갔던 길거리인데 불구하고 사진으로 남기니 또 다른 곳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비에 젖어 촉촉한 땅도 그립고

집 바로 옆 공원도 그립고

복작거리지 않은 길거리도 그립고  

난생처음으로 피터팬 발레를 봤던 공연장도 그립고

저곳은 뭐하는 곳인지 아직도 모르는 집 건물 0층도 그립고

엉망진창이지만 초록 초록해서 집 나설 때마다 기분 좋게 한 이 창문도 그리울 것 같다.



하지만, 일단 그리운 것보다는 비가 오는 날에는 부침개가 먼저라는 생각에 부침개 믹스를 찾아 섬 머쓰 비 맥주와 함께 꿀맛 저녁을 먹었다. 아참, 감자전도 야무지게 먹었는데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잘해 먹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리울 것 같은 자그레브를 두고 한국 전통음식인 부침개를 해서 먹다니. 일단 맛있으면 만사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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