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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03. 2020

[DAY86-88] 길에서 먹는 빵은 길빵인가?

지수 일상 in Croatia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겠지. 이런 걸 보면 하루를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세계는 멈춰있다고는 하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돌아가고 있으니까. 인생 한번 사는데 막 사는 것보다 이왕이면 잘 살고 싶으니까? 아침을 못 먹고 학교에 가는 날이면 무조건 길빵(길에서 빵 먹기)이 답이다. 이제야 걸으면서 빵 먹는 재미를 알았다. 늦게 알게된 만큼 자주 해봐야겠다.



오랜만에 룸메이트와 저녁 외식을 하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자취방이 시내에 있어 집 근처 밥집에 간 택이지만 그래도 이왕 외식을 하는 거 맛집을 찾아가고 싶어 열심히 서치를 해 방문했다. 산책을 하거나 등교할 때마다 한 번씩 간판을 본 적 있는데 2층에 위치하고 있어 장사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알고 보니 구글에서 꽤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Ribice i tri toekice.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맑은 게 외식을 하기에 최고의 날씨였다. 어린이 식당인지 콘셉트가 의심 가는 인테리어인데... 물고기 나라에 온 줄 알았다. 나는 먹물 리조또, 룸메이트는 생선 머시기를 주문했다. 생선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생각보다 그저 그랬다. 하지만 내가 주문했던 먹물 리조또는 꽤 맛있어서 룸메이트와도 나누어 먹었다.



집으로 바로 가기엔 아쉽기도 하고 항상 식사 후에는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게 버릇이 되어 근처의 카페로 들렀다. Oranz Bistro & Wine Bar. 자그레브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공간인 이곳,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런지 반가웠다. 주문을 하고 카페 안쪽에는 처음 들어와서 매장을 잠시 둘러보았는데 창가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기계를 발견했다. 바로 젤라또 기계! 처음 보는 기계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둥글게 생긴 기계의 모양과 더불어 엄청나게 큰 사이즈에 언뜻 보아도 종류가 다양해 보이는 맛 때문에 한 번쯤 먹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한 번쯤 와서 먹어봐야겠다.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는 나에게 유럽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주로 Esspresso with milk를 주문해서 마시는데 카페라떼는 거의 우유맛밖에 안나는 커피 음료 종류라 신기하지만 다르게 구분하는 것 같다.(예를 들어 Esspresso with milk는 샷이 2개 들어간다면 카페라테는 샷과 우유의 비율이 비슷하거나 더 많은 정도?)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아서 밤마실을 떠났다. 나는 밤 산책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닌데 룸메이트는 거의 매일 혼자서 산책을 떠난다. 오늘은 그녀가 자주 가는 산책길로 나 또한 따라서 걸었다. 밤에 보는 이곳은 낮과 달릴 또 다른 분위기인 것 같다. 다시 봐도 반가운 자그레브 대성당과 성 마르코 성당을 보았다. 친구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10시가 되었다.



다음날, 오전 수업을 마친 후 다가오는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지원이와 나는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기로 했다. 모양새는 이래도 맛있었던 지하 카페테리아 음식. 지원이가 주문한 메뉴 중 닭다리와 함께 나온 밀가루(?)는 아직까지도 무슨 음식인지 모르겠지만 주문한 것들 중 가장 맛있었다.



공부다운 공부는 역시 학교에서 해야 하나 보다. 한국과 달리 칸막이가 쳐진 자습용 책상이 아닌 일반 책상이 놓여있던 이곳의 도서관 열람실. 집으로 돌아가면 바로 퍼져 공부를 하지 않을게 뻔하기에 나름 독한 마음을 먹고 도서관에 왔는데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집중력과는 다른 결과물. 분명 수업시간에 졸지도 않고 잘 들었던 거 같은데 왜 모조리 낯선 내용밖에 없는 걸까? 역시 답답하고 잠이 올 때는 가베(커피) 한 잔이 최고인 것 같다.



지원이의 빠른 귀가 이후에도 나는 한 2시간 정도 도서관에서 더 머물렀다. 엉덩이 무겁게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내가 너무나도 기특했다. 이런 날은 맛있는 걸 먹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할 겨를도 없이 저녁을 준비했다. 오늘의 특식은 버섯 계란말이와 한국에서 공수한 밑반찬, 그리고 들기름이 발려진 김까지. 고슬고슬한 밥과 먹으니 너무나도 맛있었다. 이럴 때 보면 참 잘 챙겨 먹는 것 같다.



다음날은 내 사랑 카프레제와 애증의 닭가슴살 한 덩이를 먹었다. 평소 먹는 음식이 꽤 정해져 있기도 하고 내가 먹는 게 엄청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기에 양심상 닭가슴살을 샀다. 하지만 어렵게 먹은 내 마음에 브레이크를 거는 방해꾼이 있었다. 바로 제정신이 아닌 냉장고. 옵션 중 하나인 냉장고는 냉장, 냉동칸이 제대로 나눠져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온도 기능이 많이 망가져버려 냉장고에 보관해 둔 닭가슴살 세 덩이 중 단 하나만 먹고 나머지 세 덩이는 금세 쉬어버려 건드려보지도 못하고 버려야 했다. 아까워.

  


집순이에게 집은 천국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옥이다. 집에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면 좋겠지만 현생은 살아야 하기에 공부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집을 탈출해야만 했다. 집에서 탈출해 터덜터덜 걸어(사실은 트램을 타고) 꾸역꾸역 도서관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학교에 도착한 지 3시간도 못 버티고 바로 퇴근해버렸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새로운 광경을 만날 수 있었다. 분명 갈 때만 하더라도 조용했던 옐라치치 광장인데 몇 시간 안 지난 지금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한편에서는 한 행사장 부스가 열렸는데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자그레브에 살면서 안 좋은 점도 분명 있지만 그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 나는 나름 만족한다. 그중 수도라서 갖는 이점도 있는데 그중 광장에서 행사를 꽤나 자주, 많이 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문제는 매번 기습적으로 해서 뭐하는지도 모른다는 거지만...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괜히 마음이 헛헛해질 때면 나는 길빵을 하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그 마음을 크로와상으로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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