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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05. 2020

[DAY89-91] 장금이가 되어가는 일상

지수 일상 in Croatia


냉장고 털이에는 카레만 한 게 없다. 사실 시험기간 집에서 밖에 나가지 않고 존버 하기(열심히 버틴다는 그런 뜻) 위한 음식으로서 최고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남장금밖에 안 되는 수가 있다. 자제해야 되나? 한국에서는 카레를 한 번도 만들어 먹어본 적이 없는데 크로아티아에 와서



다음날, 드디어 대망의 학교 축제에 싸이가 오는 날,,,,슬퍼하는 나를 위해 친구들이 축제 현장이 담긴 영상을 미친 듯이 공유해줬다. 친구들 여럿 덕분에 쓸쓸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하나하나 보면서 나도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거 보면 얼른 한국에 가고 싶다. 그 누구보다 잘 노는 DNA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자그레브는 너무나도 조용해.



날씨도 좋고 친구들 덕분에 흥도 나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후배 지원이에게 연락을 했다. 들떠있는 나 만큼이나 지원이도 흥을 주체할 수 없어했다. 그럼 뭐다? 고민하는 시간도 아까우니 얼른 만나자.



흥이난 지원과 지수는 곧장 약속을 잡고 맥주를 마셔 속을 달래주기로 합니다. 슬금슬금 노을이 지려고 하는지 눈치 보는 하늘이 너무 예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정말 가끔씩만 핑크 보라 하늘색을 본 것 같은데 자그레브에서는 자주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만만한 Osujsko 레몬을 오늘도 주문했다. 사실 맥주라는 생각보다는 목이 마를 때 보리 냄새가 나지 않는, 조금의 알코올이 들어간 맛있는 음료수를 마실 수 있어 주저하지 않고 주문하는 편이다. 저녁을 먹을 겸 마실을 나온 거라 간단하게 크레페를 주문했는데 이번에는 실패했다. 속에는 과일 잼이 발려지고 그 위에 슈가 파우더가 뿌려진 크레페는 너무너무 너무 달아서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길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오랜만에 Konzum에서 장을 보러 갔다. 우선 물부터 시작해서 요거트, 그래놀라, 계란, 식빵 등 항상 구매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카트에 담았다. 얼추 필요한 것들을 다 담은 것 같아 셀프 계산대로 향했는데  가는 길목 중간에서 갑자기 나의 시선을 빼앗은 봉지 하나가 있었다. 아니, 이거는 한국에 있는 꼬깔콘이 아닌가? 꼬깔콘과 똑같이 생긴 과자이지만 Tornado라는 이름의 파프리카 맛 과자였다. 파프리카 맛이라길래 매운맛일 줄 알았는데 맵지도 않았고 불량식품 같은? 느낌이 드는 맛과 질감이었다. 일단 맛은 꼬깔콘 승! 그나저나 모양은 누가 따라한 거죠?



룸메이트가 며칠 전 한국에 잠시 갔다가 크로아티아로 돌아왔다. 빈 손으로 돌아오지 않은 그녀는 한국음식부터 양념, 과자, 생필품 등 다양한 물건을 캐리어에 가득 싣고 왔는데 그중 하나인 국물떡볶이. 아껴먹으려고 버티다가 꺼냈는데 웬걸, 유통기한 날짜가 일주일 정도 지나있었다. 먹을까 말까 하다가 일단은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조리까지 다 했는데 떡이 이상해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떡 표면에 하얀 반점이 있었다.) 결국 내가 가지고 있던 최후의 떡볶이 키트로 라볶이를 해 먹었다. 일단 그 어떤 것보다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랜만에 발견한 Konzum의 딸기. 많이 못 먹은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딸기 철이 지나버려 앞으로는 못 먹겠구나 생각을 하며 아쉬워했었다. 하지만 약 일주일 만에 마트에서 얼마 안 되는 소수의 딸기 팩을 보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나의 최애 과일은 딸기류, 사과, 수박인데 한국으로 떠나기 전 값싸고 맛있는 과일을 많이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한국의 과일은 너무나 비싸기도 하지만 우리 집은 가족 숫자가 많아 좋아하는 과일을 마음껏 먹지 못한다는 점?)



저녁으로는 레토르트 부대찌개를 해 먹었다. 근데 요즘 들어 느끼는 거지만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밥을 해 먹는 것 같다. 한국에서 나의 주식은 뮤즐리와 요거트, 그리고 면(라면 말고 파스타나 국수류)과 빵이 차지했다. 밥을 안 먹는 건 아니지만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아니면 잘 안 먹는 수준? 근데 크로아티아에 와서는 밥만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해 먹을 수 있는 몇 없는 메뉴가 다 나와서 그런 건지. 하여튼 한국인은 밥심인 게 맞는 것 같다.



밥 먹으면서 한국 예능을 보는 게 요즘의 몇 없는 낙이다. 이날도 어김없이 밥을 먹으며 문제적 남자를 봤는데 갑자기 크로아티아 국적의 한 교수님이 나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가 수강하고 있는 통계 과목 교수님과 너무나도 닮은 천재여서 순간적으로 '아니 우리 교수님이 저기에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깜짝 놀랐지만 구글로 찾아보니 다행히 다른 대학에서 교수님으로 계신 분이었다. 하긴, 아이큐가 저 정도로 높은 분이면 우리 수업을 왜....ㅎㅎ 밥을 다 먹고 나는 오늘도 또 기말고사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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