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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07. 2020

[DAY98] 요정이 사는 호수, 플리트비체

지수 일상 in Croatia


서프라이즈! 지난주까지만 해도 별생각 없었는 날 중에 하루였다. 하지만 전날 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학교만 착실히 다니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결국 지원이와 나는 큰 맘을 먹고 학교를 쨌다. 말 그대로 쨌다. 대학생이면 자체 공강을 할 수 있는 나름의 묘미가 있는데 크로아티아에 와서 두 번째로(뇌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못 갔던 날을 포함해서) 학교 수업을 들으러 가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라서 그런가 아침 일찍 눈을 뜨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의 지방에 위치한 유명 관광지 플리트비체에 가기 위해 아침 8시까지 버스정류장으로 서둘러 갔다. 아침을 먹지 않고 하루를 시작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오늘도 소시지 빵으로 가볍게(?) 아침을 먹었다. 지원이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플랫폼 벤치에 앉아 빵도 먹고 여행 온 사람들을 구경하는 시간도 가졌다. 여행 전 이런 여유.. 너무나도 오랜만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감당되지 않는 머릿결과 머리카락 기장에 대해 지원이와 썰전을 했다. 자그레브에 있는 아무 미용실이나 갈까, 아니야 무작정 갔다가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조금만 참아라 등 아주 불꽃 튀는 시간이었다. Flix bus 2시간 정도는 이제 껌인 우리. 도착하자마자 바로 입장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허황된 꿈이었다. 약 1시간 정도 땡볕에서 줄을 서야 했고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표를 구매해야 했다. 국제학생증으로 할인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입장료만 160쿠나가 실화인가? 최근에 다녀왔던 뮤지엄, 갤러리 등의 입장권 중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입장료가 가장 비쌌다. 비싼 만큼 제대로 즐기고 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출발 전 소시지빵을 먹고 왔지만 불꽃 수다와 더불어 땡볕 아래에서 1시간이나 서서 기다렸더니 소화는 물론이고 당까지 딸려 힘이 쪼옥 빠져버렸다. 국립공원이라 그런지 입구 근처에 먹을만한 것도 없기도 했고 입맛도 별로 없어서 나는 honey cake, 지원이는 plitvice burger를 주문했다. 그런데 웬걸? 관광객도 많고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있는 한국인 두 명도 마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종업원이 덤터기를 씌우려다가 딱 걸렸다. 내가 주문하지 않은 메뉴까지 더해 결제를 하라는 것이다. 이런 건 또 참을 수 없지. 목소리는 높이지 않더라도 내가 할 말을 천천히 말하니 조금 쫄았는지 오히려 그 종업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너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잘못 들을 리 없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매니저가 나와 원래대로 결제를 해 주었고 속으로 열불을 낼까 고민했던 나와 지원이도 다시 침착하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래도 맛은 있었다. 



무려 160쿠나나 하는 입장권. 마- 이게 그 플리트비체 입장권이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초입에 세워진 안내판으로 코스를 확인했다. 날씨가 화창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햇빛이 강렬해 매우 더웠던 탓에 초반의 기세는 조금 약해졌다. 결국 우리는 체력 거지라는 꽤 논리적인 이유로 제일 짧은 A코스로 가기로 했다.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복작복작해서 엥? 저기에 뭐가 있나?라는 마음으로 우리도 한발 한발 다가갔다.



와우!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가 되어 더욱 유명해진 곳답게 물 색깔이 정말 장난 없이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제주도 천지연 폭포만 평생 알고 살아왔는데 이런 곳에 와서 플리트비체의 남다는 폭포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니 정말 놀라웠다. 새삼 자연의 신비 또한 느꼈다. 세상에는 정말 내가 알지 못한 신비한 곳이 많다는 것과 이런 멋진 곳을 내가 와봤다는 것 모두가 축복 같다.



크으- 물줄기가 정말 기가 막히다. 너무나도 맑고 많은 양의 물이 흘러서 그런지 소리 또한 대단했다. 더운 날이라 그런지 시각과 청각 모두 나를 자극해서 신발을 벗어 발이라도 담그고 싶었다. 물 색깔이 어쩜 이러지? 점점 가다 보니 발을 담그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이 들 만큼 너무나도 물이 깨끗해서 신기했다. 물이 옥 색인 건 정말 태어나서 머리털 나고는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나저나 지원이가 나를 찍어준 사진 한 장이 있었다. 그런데 사진에 담긴 나의 머리카락이 정말 개털이 된 것 마냥 난리였다. 안 그래도 난리인데 이날 햇볕마저 너무 뜨거워 머리가 다 타는 줄 알았다. 



한참을 헉헉대며 트래킹을 하다 보니 플리트비체의 하이라이트인 정상까지 등장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곳,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이대로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가족들과 다시 와도 똑같을 수 있길 바라본다. 이 광경을 마주하고 나니 곧이어 A코스가 마무리되었다. 약 1시간 반~2시간 정도 걸어서 힘들었지만 또 마무리되고 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는 뭐다? 목도 마르고 아쉬울 때는 맥주 한 잔을 마시자. 갈증이 말도 안 되게 심하기도 했지만 자그레브로 돌아가는 버스가 플리트비체 입구에 오는 시간까지 많이 남아 오랜만에 라들러 한 잔을 했다. 운동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가 최고인 것 같다.

 


다시 두 시간 걸려 자그레브로 오는 길은 갈 때랑 다르게 정말 쥐 죽은 것처럼 조용히 자면서 왔다. 정말 체력 거지들이 맞나 보다. 약간 더위를 먹은 느낌도 나서 집으로 돌아와 찬물로 샤워를 싹 했다. 그리고는 아껴둔 메밀도 해 먹었다. 정말 자그레브에 있는 자취방에는 없는 게 없는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면 오히려 더욱 아쉬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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