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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09. 2020

[DAY102] 드디어 꿈꾸던 베를린 입성

지수 일상 in Berlin


설렘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감정. 크로아티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 그런지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계속해서 뒤척인 탓에 피곤이 가득한 채로 다음날 아침 뻑뻑한 눈을 떴다. 비행기 놓치는 것에 꽤 공포가 있었던 터라 이른 아침 비행에 늦지 않기 위해 전날 미리 싸 둔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내 첫 자취집이라 애정을 쏟는다고 쏟았는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4개월 동안 잘 살았어, 잘 있어! 거의 새벽 6시라 트램,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기엔 무리가 있어서 우버를 불렀다. 사실 짐이 너무 많아서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근데 아침에 공항 가는 사람이 많은지 의문이 되지만 수요가 많아서 공항까지 133쿠나정도 들었다.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23kg까지 무료인 저가 항공사는 초과된 무게에 대해 아주 꼼꼼히, 약간의 봐주는 것도 없이 무게를 쟀고 무려 8만 원이나 추가 결제를 안내했다. 손 떨리는 금액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기에 순순히 웃으며 체크인했다. 비싼 값을 치른 후 먹는 소소한 아침. 내 사랑 뮤즐리로 잠시나마 아픈 속을 달래 본다.

 


일찍 와서 그런지 여유롭게 보딩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도 드는 생각은? 유럽인들이 주 고객인 항공사는 다리도 길면서 왜 이렇게 좌석 간 간격을 짧게 만들었나 모르겠다. 동양인인 나도 딱 맞아서 기역자로 다리를 세울 수 없는데. 답답하지만 저렴한 걸 감사하며 자리에 앉았고 곧이어 이륙을 시작했다. 4개월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뜨는 자그레브. 내가 또 언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쉽다가도 시원한 이 기분, 또 보자?



약 2시간을 날아와 도착한 이곳, 베를린!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도시라 이륙 전부터 심장이 콩닥콩닥 떨리면서 설렘으로 온몸이 찌릿했다. 도착한 공항은 매우 매우 작아서 나가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짐이 많은 터라 곧장 우버를 타고 숙소로 향했는데 이번에는 한인 민박으로 잡았다. 프라하에서 경험한 한인민박의 정, 잊을 수 없어 또다시 찾아온 셈이다. 체크인 후 짐을 간단하게 풀고 나니 민박집 사장님께서 아침 식사를 하라고 불러주셨다. 사실 베를린에 도착해도 이른 시각이라 다른 여행객들이 마침 조식을 먹을 때였던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사장님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후 조식을 간단하게 먹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후 나선 베를린에서의 첫걸음, 날씨가 화창하니 여행자의 마음에 괜히 나를 반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바로 앞에는 넘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지하철 역이 있었는데 그 이름하야 Berliner Strabe. 괜히 베를린에 도착한 티가 팍팍 나는 역 이름이라 느낌이 좋았다. 독일 지하철은 처음이었는데 여기에서도 독일만의 감성, 철학이 느껴졌다. 불필요한 데에 돈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절약정신? 플랫폼으로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랑노랑 한 메트로가 도착했다. 에어컨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걸까, 꽤 높은 온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없이 창문을 열고 달리는 이곳 지하철은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에도 익숙한 듯 칙칙폭폭 움직였다. 곧이어 나는 북유럽이 떠오르는 쨍한 표지판이 걸린 Osloer Strabe에 도착했다.



왜 이곳까지 왔냐면? 매주 일요일마다 플리마켓이 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안 와볼 수 있겠는가. 마침 베를린에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기도 해서 동행들과 함께 마우어 플리마켓에 도착했다. Fleamarket Mauerpark. 입구부터 초록 초록한 식물들을 팔고 있어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언뜻 봐도 꽤 큰 규모의 플리마켓 같았다. 플리마켓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곧이어 순간적으로 프랑스 방브 시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장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수많은 중고 엽서와 빈티지 필름과 같은 빈티지 천국, 딱 내 스타일이다(엉엉) 세컨드 핸드 옷들도 많았지만 이곳에서는 별로 안 끌려서 눈으로 몇 개 보기만 하고 곧장 패스했다. 플리마켓이라 그런지 오래된 상품들부터 꽤 최근에 출간된 책도 매대에 놓여 있었다. 한국 책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어서 괜히 반가웠다.  

 


독일에 왔으면 꼭 먹어줘야 한다는 커리 부어스트.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첫 음식(조식은 제외)으로 소시지를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런데 동행으로 만난 언니 한 명이 스타벅스의 한 매장에서 부점장이었다.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봐야 할 것 같다. 수많은 직장인 중 스타벅스 부점장을 독일 베를린에서 만나다니? 심지어 이 언니는 내 동행의 동행이라 마음만 먹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참 신기한 인연이다. 하여튼 언니의 빅픽쳐로 우연히 들른 마우어 파크에 피크닉 매트를 갖고 와 무릉도원을 맛볼 수 있었다. 정말 베를린까지 와서 피크닉 할 생각이 1도 없었는데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정말.



플리마켓 바로 옆에서는 독일 젊은이뿐만 아니라 베를린으로 여행 온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섞여 햇살을 즐겼다. 그런데 이곳에 있던 친구들 정말 이 세상 힙이 아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웃통을 벗어 제끼는 일은 정말 일도 아닐 정도였다. 잠이 솔솔 오늘 오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베를린만의 자유로움에 점점 녹아들어 가는 것 같다.



피크닉 매트에 누워있다 보니 정말 잠이 들어버릴 뻔했다. 그러다가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하면 정말 아쉬울 것 같아 슬슬 정리하고 새로 만난 동행 언니, 오빠 그리고 나까지 총 세 명이서 길을 나섰다. (사실 다른 스타벅스 부점장 언니와 다른 분과는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했으나... 아무도 만나자는 연락을 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우리가 간 곳은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 Gate)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도 참 많았는데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시간이라 그런지 햇빛도 장난 없었다. 선글라스를 안 쓰면 정말 실명하기 딱 좋을 날씨였다. 한국에서도 선글라스를 자연스럽게 쓰고 다녔으면 좋겠다. 내가 살던 대구는 여름에 온도, 습도 모두 장난 아닌 곳인데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날이면 길거리에 걸어 다니다가 딱 실명될 거 같은 날이 종종 있다. 누가 좀 먼저 쓰고 다녀주면 따라서 쓰고 싶은 마음이다. 유행이 되게 해 주세요?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제2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이 공간.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해있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큰 규모여서 신기했고 절로 엄숙해졌다.



이날, 너무너무 더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더위를 제대로 먹어버릴 것만 같아서 근처에 위치한 공원으로 가 쉬기로 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발견한 한 물길(수로), 정말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물을 보자마자 빠져들고 싶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휴 살려주세요.



루스트 정원. 뮤지엄 앞 계단에 앉아 솔솔 부는 바람을 맞이하는 기분은 정말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기분일 것이다. 땀이 식으면서 시원해지는 이 느낌, 많이 지쳤지만 잠시 누려보는 여유에 찌푸려졌던 표정 또한 편안한 얼굴로 펴졌다. 그리고 계단에 철퍼덕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독일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 또한 스쳐갔다. 동행들과 몽키 바라고 하는 루프탑 바를 저녁에 가기로 했지만(스타벅스 부점장 언니와 다른 동행 한 분) 다들 더위에 지쳐서 그런지 오늘은 이만 일찍 헤어지는 걸로 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다들 각자 갈길 가는 것 보고 이게 유랑 동행의 묘미지 라는 생각도 들어 조금 웃기기도 했다.



숙소 엘리베이터 거울을 문득 보니 더위에 KO 당한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불쌍하면서도 찌들어서 웃기기도 했다. (죽을 맛이었다)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했는데 더위를 먹어서 그런지 입맛이 별로 없어 집 오는 길에 Dean&David라는 가게에 들러 샐러드를 포장해 왔다. 땀이 너무 나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했다. 깔끔하게 씻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들어 샐러드를 한 입 먹었는데 입맛이 없다는 말은 싹 들어갈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어디 가서 입맛 없다는 소리는 하면 안 되겠다. 생각지도 못한 더위에 풀이 죽은 베를린에서의 첫날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알차게 돌아다닌 것 같아 뿌듯했다. 내일도 기대하며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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