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일상 in Berlin
의도하지 않게 득템을 해서 그런가 (아이) 쇼핑에 속도가 붙었다. 코스를 지나 한 유튜버가 꼭 가보라고 했던 빈티지 샵을 가보고 싶었는데 같은 골목에 위치해 고민하지 않고 곧장 들어갔다. Made in Berlin. 빈티지 러버인 나는 들어가자마자 놀랐는 게 일단 규모가 그동안 가 봤던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스웨터, 티셔츠, 외투와 같은 큰 카테고리로만 구분했던 일반 빈티지샵과 다르게 패턴별, 색깔별 등과 같은 정말 패션에 진심인 사람이 구분해놓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스카프가 정말 정말 많았는데 발길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차마 내가 범접할 수 있는 패션의 범위를 벗어난 것 같은 종류도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옷들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내가 입기에는 숭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일까 함부로 입어볼 수조차 없었다. 나에게는 브루클린에 위치한 Bacon's Closet이 제일 나의 취향에 맞았던 것 같다. 그곳에서 아르마니 블레이저 자켓을 59불에 건진 걸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질 정도기 때문이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유리벽 너머로 꽤 감성적인 느낌을 콘셉트로 삼은 샵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한 30초 정도 유리벽에 눈을 떼지 못하다가 그냥 지나가면 분명 자기 전에 후회할 것 같아 숨도 안 쉬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나의 취향 투성이인 옷과 액세서리, 가방과 인테리어 소품 등이 진열되어 있었고 구석 쪽에는 커다란 판이 세워져 있었다. 좋아하는 스타일을 선택하라는 질문에 맞춰 수 십 개의 사진을 정말 쓸데없지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중 흰 블라우스에 검정 팬츠를 입고 있는 한 여성분의 옷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반칙이지만 스티커 두 개를 붙이고 나왔다. 선택적 근검절약이 몸에 밴 여행자로서 이 곳의 옷은 꽤 비쌌기 때문에 구매할 수 없는 마음을 스티커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매장의 규모도 커서 놀랐지만 매장의 분위기를 판가름하는 인테리어가 매우 마음에 들어 공간을 기억하고자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그러다가 마주친 거울을 보고 내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말이다. 여기에서 제일 어색한 사람이 바로 '나'인 느낌?
이곳의 패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표본. 이러니 내가 빈티지 샵에 가서 살게 있었겠는가? 그나저나 이렇게 홍보를 하는 시슬리, 꽤 멋진데?
길가다가 우연히 만난 한 토이 샵. 오랫동안 알던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것도 좋겠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동행인을 알아가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이다. 희영이는 만난 지 오늘로 딱 이틀째에 이곳을 방문하면서 또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에는 이런 아기자기한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오히려 선이 굵직굵직하고 깔끔한(?) 걸 좋아한다. 하여튼 희영이는 아기자기한 인형을 좋아하는지 이곳에 들어가자는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먼저 하더니 들어가서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이곳에 있는 인형 하나하나를 집중에서 구경했다. 가게 주인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가격이 비싸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근데 보다 보니 나 조차도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구경할 정도로 꽤 매력이 있었다. 이래서 귀여워하는 건가? 인센트도 매장에서 팔아서 나와 희영이는 하나씩 사려다가 괜히 짐만 늘어나고 한국에 가서는 쓸모도 없는 것 같아 아쉽지만 패스했다.
Do you read me? 디자인 서적이 참 많았던 이곳. 사실 이곳은 내가 꼭 와보고 싶어서 전날에도 혼자 답사를 다녀왔던 곳이다. 하지만 어제는 휴무였는지 가게가 열지 않았는데 오늘은 다행히 열어 책도 구경하고 내가 사고 싶었던 에코백을 구매하려고 한다. 김일성? 사실 북한 지도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고 알고 있는 것도 없는 사람이라 다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해왔다. 누가 누군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본, 아니 베를린에서 본 책 중 이게 제일 눈에 잘 띄었다. 이것만 기억에 남으면 어쩌지? Patti Smith.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책.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지만 표지에 있던 한 여자의 실루엣이 나의 눈을 끌어당겨 덕분에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좋았다. 나는 사실 에코백을 굉장히 좋아한다. 꾸미는 데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게 많은 나로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마다 그곳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에코백 하나씩을 구매해온다. 이번에도 같은 이유이기도 했지만 저렴하기도 하고 디자인이 예뻐 매장 직원에게 기꺼이 유로를 내어줄 수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날이 너무나도 더워서 둘 다 조금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Do you read me? 매장을 나오자마자 건너편에 Eil Berlin이라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 고민하지도 않고 곧장 이곳으로 향했다. 너도 더웠구나? 한스쿱할까 두 스쿱할까 고민했는데 역시 고민할 시간을 아껴 한 입이라도 더 먹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에 곧바로 두 스쿱을 했다. 맛은 라즈베리와 피스타치오. 먹는 것에 있어 모험을 잘하지 않는 나 답게 익숙한 맛으로다가 골라 콘으로 받았다. 달고 맛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5분도 안 되어서 빨리 녹았고 그 속도를 맞추고나 나 또한 재빠르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국회의사당 꼭대기로 올라가면 공짜로 야경을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어디에선가 듣게 되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희영이랑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국회의사당까지 걸어와 줄을 서 기다렸다. 하지만 당일은 이미 솔드아웃이 된 터라 다음날 노을이 질 때쯤 방문할 수 있게끔 예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희영이가 중앙역에 잠시 볼 일이 있다고 해서 나는 근처 공원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습하진 않았지만 온도가 높았던 탓에 땀이 많이 났다. 하지만 솔솔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땀은 식었고 앉아서 쉬고 있으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여행에서 찾는 조금의 여유인 것 같다.
오늘도 들른 브란덴 부르크 문. 앞에서 사진 한번 찍으려고 하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실패했다. 여러분, 잠깐 옆으로 가 주면 안 될까요. 이 사진에서 누가 주인공이지?
더위에 지친 우리는 음식점을 멀리서 찾을 생각도 못했다. 감성 맛집이고 뭐고 일단은 얼른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어플은 바로 구글 맵!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깝지만 별점이 높은 곳. 제일 만만한 곳은 바로 쇼핑몰인가 보다. 하지만 우리는 맛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쇼핑몰로 곧장 향했다. 힘들 때는 아시아 음식이 가장 맛있지? 저렴하지만 너무나도 맛있었다. 베를린 몰 따봉.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배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릴 적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이 되면 낮부터 저녁밥을 먹기 전까지 놀이터에서 놀았다. (사실 나는 '놀토'라고 하는 게 있던 시절에 살았는 사람이다. 살짝 고인물인가? 하여튼) 엄마가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놀이터에서 집으로 가는 길, 이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괜히 센치해지는 느낌? 너무 좋다. 그냥 가만히 저물어가는 해를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괜히 눈물짓게 만드는 느런 힘이 있는 것 같다. 근데 싫은 게 아니라 너무나도 좋다. 감성에 젖어 있었는데 지하철역으로 내려와 와장창 그 감정이 깨졌다. 이 날은 무슨 날이었는지 베를린 친구들이 모두 미쳐있었다. 술병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건 이제 익숙해졌는데 플랫폼에서 고성방가를 하고 뛰어다니는 술주정까지... 술은 집에서 마셔줄래 친구들아? 지쳐서 그런지 눈이 풀려서 집에 도착한 나는 오늘도 씻고 자기 바빴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