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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14. 2020

[DAY105(2)] 예술인들의 도시, 베를린

지수 일상 in Berlin


혼자 여행하는 것 중 가장 큰 묘미는 내 마음대로 스케줄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 친구나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재미도 물론 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나 혼자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의 상황과 감정을 되도록이면 많이 기억하고 사진으로 담아오는 것. 훗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회상하면 꽤나 다시 시작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아 맞아 나 여기도 혼자 힘으로 갔다 왔는데 말이지?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갑작스럽게'라는 말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나의 여행이 꽤나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하 근데 너무 덥다. 버스에서 내려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있는 길을 걸어가는데 그로 인해 생긴 그늘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KONIG GALERIE. 이곳을 가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첫 번째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무료 전시라는 것. 무료가 스물 초반의 여행자에게 주는 매력은 꽤나 크다. 두 번째로는 무료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퀄리티가 꽤 좋다는 것. 구글 맵의 평점을 무조건적으로 믿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 세계 사람들이 유일하게 모여서 평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의 힘은 어느 정도 귀를 기울이는 편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의 내 오후를 할애할 곳으로 당첨!



전시공간 1층으로 들어가니 프런트 데스크와 마주 보는 곳에 벽면 전체를 채우는 큰 책장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수 많은 디자인 관련 도서가 꽂혀있었다. 예술에는 재능이 없을뿐더러 스스로 예술하는 사람들에 대해 존경을 평소에 갖고 있던 사람인지라 이렇게 어떤 한 분야에 대해 전문가, 전문 서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기분이 좋아졌다. 열정이 있는 공간, 사람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 마음에 드는 표지를 가진 책 한 권을 들어 촤라락 넘겨보았다. 그중 Fight for you write, 파란 글씨로 적혀있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이런 사소한 직선에 감동받는 스타일인 나, 네모네모가 마음에 든다.



?? 2층으로 올라가니 드디어 전시공간이 등장했는데 꽤나 규모가 컸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나를 포함해서 약 2-3명 정도? PICASSO NOT PICASSO NOT PICASSO라는 글이 빨갛게 쓰여 있어서 눈길이 갔던 작품. 웃기게도 이 작품을 보자마자 피카소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가는 이걸 노린 건가?



작품 하나하나가 나의 시선을 못 떼게 만들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일까. 스스로 해석을 해보고자 작가가 의도한 의미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눈을 계속해서 굴렸다. 단순히 귀엽지만은 않은 현대미술의 복잡함과 해석의 어려움. 오히려 과거의 회화가 더욱 직관적으로 관객에게 설명해주는 친절함을 가진 것 같다. 현대회화는 나에게 조금 불친절한 느낌?

 


이 작품을 보자마자 '소나무'가 생각이 났다. 나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취향이 꽤 뚜렷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쉽게 이야기하면 치마보다는 바지, 스키니 진보다는 슬랙스, 골드보다는 실버, 일반 우유보다는 아몬드 우유, 4년째 나의 아침은 뮤즐리와 냉동 블루베리를 곁들인 요거트 등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취향이 매우 많다. 그래서일까. 나와 함께 있지 않아도 친구들은 길을 가다가, 카페에 들러서 등등 어떤 상황에서 내 취향인 것을 만나면 내가 문득 떠오른다고 한다. '문득' 떠오른다는 말에 뭉클해지다가도 내가 하나에만 꽂혀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것뿐이지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흰 우유도 꽤 좋아한다.



덥다 더워. 왜 이 나라에는 에어컨이 없는 걸까? 전시를 더 보다가는 더워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건물 밖으로 나와 잠시 앉아 쉬었다. 의자가 초록 초록한 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건물로 들어가 전시를 마저 보고 난 후 나는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베를린의 메트로, 이렇게까지 힙할 일인가 싶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도중 저기 꼭대기에 한 동상? 예술 작품? 이 눈에 들어왔다.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공간 한 군데도 아트로 가득한 이 도시. 정말 예술가들이 사랑할만한 도시인 것 같다. 예술에 무지한 나도 이곳에서 몇 년 살면 꽤 아티스틱해질 것 같다.



어제 희영이와 하루 끄트머리에 국회의사당에 들렀다. 그리고는 야경이 끝내주게 멋지다는 스팟을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 오늘 예약도 했다. 하지만 왠 날벼락인 걸까. 희영이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 국회의사당으로 메트로를 타고 가던 나는 미친듯한 비(사실 뇌우라고 읽어야 할 것 같다)를 만났다. 지하철 역사에서 지상으로 올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비가 퍼붓고 천둥 번개까지 쳤다. 설상가상으로 희영이와는 연락조차 잘 안 되었다. 데이터가 부족한 나를 탓해야지. 결국 희영이와 나는 만나지도 못하고 헤어져야 했고 물론 야경은 꿈도 못 꿨다. 터덜터덜 숙소로 복귀했는데 기가 막힌 거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날씨가 개어버린 것이다. 다시 국회의사당으로 향할까 고민도 했지만 예약한 시간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들어갈 기회조차 없었다.



짧은 시간에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아끼고 아껴둔 컵라면 하나를 꺼내 몸을 녹였다. 더운 날이었는데 소나기가 내려서 그런지 꽤나 쌀쌀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소소한 저녁에 조금 서러웠던 마음을 달래었다. 라면에 김치는 어딜 가나 최고의 조합인 것 같다. 그나저나 8시인데도 유럽의 저녁은 아직 해가 짱짱하다. 살짝 억울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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