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 둘레 피는 꽃, 민들레

by 홍영식

몽골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영화 ‘남한산성(2017년)’을 본다. 김상헌의 칼에 할아버지를 잃은 소녀 나루가 나뭇가지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무엇을 그렸더냐?"
"꺽지라는 물고기이옵니다."
"꺽지는 언제 많이 잡히더냐?"
"송파강 얼음이 녹을 때 많이 잡히옵니다."
"송파강 얼음은 언제 녹더냐?"
"봄이 될 때... 민들레(dendelion)가 필 때이옵니다."


김상헌과 나루의 대화이다. 김훈의 원작 소설 ‘남한산성(2007년)’에서는 인조가 나루에게 하문하고는 미소를 짓는다.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던 인조.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삼배구고두례 보다 눈길을 끈 것은 민들레의 영어명, dendelion이었다. lion? 사자가 민들레와 무슨 관계가?
dendelion은 들쭉날쭉한 민들레 잎의 모양이 사자의 이빨처럼 들쭉날쭉하다는 뜻의 불어 dent-de-lion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아! 그런 뜻이었나?
반면에 우리말 민들레는 집 근처의 ‘담 둘레’나 ‘문 둘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볼 수 있는 민들레는 대부분 귀화식물인 서양민들레다. 이들은 타가수분뿐만 아니라, 자가수분도 가능해서 번식력이 매우 강하다. 반면에 토종민들레는 같은 토종민들레와 타가수분에 의해서만 씨앗을 맺는 일편단심 민들레다.
형태학적으로 서양민들레는 꽃을 받치는 총포가 뒤집어져 아래로 향하는 반면에 토종민들레는 총포가 위로 향해 꽃을 감싸고 있다.

우리 둘레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민들레가 봄바람을 더욱 설레게 만든 것은 1985년 강변가요제에서 발표한 가요 ‘민들레 홀씨 되어’였다.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있네
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가슴을 애이며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
...(중략)...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여기서 홀씨(포자)란 버섯이나 양치류 등과 같은 홀씨식물들이 무성생식을 하기 위한 생식세포다. 따라서 종자식물인 민들레는 갓털 깃을 가진 ‘씨앗’이지만, ‘후~’하고 불면 씨앗들이 하나하나씩 낱개로 떨어져 날리는 모습에서 ‘홀씨’라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가수 박미경은 2010년에 민들레 홀씨가 잘못된 용어였음을 인정하고 사과를 표했다. 어쨌거나 노래 가사뿐이니 큰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노래가 ‘민들레 홀씨 되어’가 히트한 뒤 그녀는 “민들레는 홀씨가 아닌 포자로 번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고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포자는 홀씨의 한자어로 같은 뜻이기 때문에 “홀씨가 아닌 씨앗으로 번식한다.”가 정확한 표현인 것이다.

해를 쫓는 해바라기,
일편단심 민들레,
송파강가에서 민들레 꽃 피기를 기다리는 나루처럼,
내 마음은 민들레 갓털에 매달린 씨앗이 되어 강바람 타고 ‘풀과 꽃, 그리고 나무’를 찾아 그리움의 숲을 훨훨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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