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가나 공원의 화단에 심긴 꽃.
사람 얼굴을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세 가지의 꽃 색깔이 마치 생각에 잠긴 사람의 얼굴과 비슷해서 ‘생각’이라는 불어의 팡세(Pensées)에서 유래한 팬지(pansy)다.
팬지는 제비꽃을 개량한 한해살이풀로 우리말로는 삼색제비꽃이다.
삼색제비꽃의 꽃잎들 중 앞쪽 3개는 화려한 반면에 뒤쪽 2개는 단순하다. 독일에서는 이들 3개를 사치스러운 계모와 그녀의 두 딸, 그리고 뒤쪽 2개를 구박받는 두 딸로 여겨 삼색제비꽃을 ‘작은 계모’라고도 부른다.
삼색제비꽃과 팬지, 파스칼(1623~1662)과 그의 수상록 ‘팡세’.
수학 천재였던 파스칼은 최초의 계산기, 파스칼라인을 발명했고 기하학과 확률론의 기초를 다졌다. 또한 압력에 관한 ‘파스칼의 원리’를 체계화한 공로로 압력의 단위는 파스칼(Pa)을 사용한다.
그는 마차 사고를 계기로 철학(사람)과 신학을 연구하면서 쓴 ‘팡세’에서 ‘무한한 우주에서 나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사고(思考)로 우주를 품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의인(義人)과 또 하나는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죄인(罪人)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진공의 존재에 대해 파스칼과 논쟁했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서 근대철학을 연 천재, 데카르트(1596~1650)도 ‘방법서설’에서 그랬다.
“Je pense, donc je suis.”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가 도입한 직교 좌표계에 의해 대수적 함수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미적분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직교 좌표계를 그의 이름을 따서 ‘Cartesian coordinate’라 부르는 이유다.
근대 조각의 아버지인 로댕의 청동 조각상인 ‘지옥의 문’에 있는 조각도 ‘생각하는 사람’, Le Penseur(르 팡세에르)다. 욕심으로 인해 지옥으로 떨어진 군상들을 바라보며 고민하는 ‘단테’를 묘사한 것이다.
프랑스는 팡세의 나라다.
2년여 동안 프랑스 보르도 제1대학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었다. 짧은 불어 실력으로 그들의 대화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들은 모닝 티타임, 점심 후 티타임, 퇴근 전 티타임을 즐긴다.
프랑스는 ‘팡세’한 것을 ‘토킹’하기를 좋아하는 나라였던 것이다.
봄이 되면 빈터 곳곳에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에 피는 꽃이라는 제비꽃이 앞을 다투어 꽃을 피운다.
제비꽃은 꽃이 필 무렵 오랑캐가 자주 쳐들어와서 오랑캐꽃, 키가 작아 앉아있는 것 같아서 앉은뱅이꽃, 병아리처럼 귀여워서 병아리꽃으로 불린다.
다른 제비꽃은 북미 원산으로 해방 이후 전국에 널리 퍼진 미국제비꽃으로 불리는 종지나물이다.
클로버가 잔디밭을 점령하듯, 씨와 포기나누기로 순식간에 번식하는 화단의 종결자 미국제비꽃은 미국오랑캐꽃으로도 불리며 새순은 먹을 수 있다.
삼색제비꽃(팬지), 제비꽃, 미국제비꽃.
프랑스에서 2년 동안 같이 있었던, 팡세하고 토킹을 좋아했던 그들, 그리고 같이 연구했던 한국인 친구들을 팡세하게 만드는 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