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먹고 밥벌이 잘합니다.
우울증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딱히 질병명을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몇 년째 약을 먹고 있다. 부끄럽진 않았다. 친구, 지인에게 이야기하고 병원도 권했다. 내 블루를 얘기하자 주변에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많진 않지만,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정도였다.
선입견을 가진 사람도 있고, 회사는 밥줄이기 때문에 굳이 오픈하진 않는다. 부모님께도 걱정하실까 봐 말하지 않았다.
나는 자살충동도 없고, 태양같이 밝은 사람인데도 약을 먹는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감정 기복이 있긴 하지"라는 피드백을 준다.
생각이 많고 에너지도 없고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밥벌이하고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육아는 치명적이다. 아이를 낳은 후 수면장애를 얻었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도와줬고 기관도 활용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무릎이 나쁜 사람은 평생 조심해야 하듯이, 님은 신경이 약하게 태어난 거죠." 전문가가 단정 지어주니 시원했다. 물론 관리를 잘하면 고통 없이 살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다.
진짜 병원 올 사람들은 병원에 가지 않고, 오히려 환자를 만든다. 개인적으로 우울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푸는 타입이라 생각한다. 남에게 화를 내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30대 중반이 되면 누구나 어디 하나씩 아프다. 갑상선, 치질, 허리, 아토피, 자궁근종, 터널증후군 등. 신경이 아픈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40대가 되니 정기적으로 약을 먹는 친구들도 많아졌다.
고효율 사회에선 감정도 몸도 닳도록 일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아픔과 인생의 짐이 있다. 겉으론 즐겁게 살아가는 것 같아도 결국 다 그렇다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 아픔을 승화한 사람을 좋아한다. 짜증 나지만, 극복하면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성장을 거부하면 같은 문제에 계속 부딪히게 된다.
처음 신경정신과를 간 날, 진료를 받을 땐 울지 않았지만 계단을 내려오며 오래 울었다. 인생 망한 것 같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게 울 일은 아니었다. 귀찮고 병원도 다녀야 하고 약도 먹어야 하지만, 다리 부러져서 병원 간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의 나에게 이 비밀을 속삭여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