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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제야 아프게 깨닫는 걸까

김영하의 오직두사람을 다시 읽고

by 김낙낙

최근 오디오북으로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을 쭉 들었다. 예전에도 읽었던 책인데 이번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러리라. 그냥 흘려듣던 대사가 지금의 내 마음과 맞물려 와 닿았고, 예전엔 놓쳤던 장면들이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한 문장 한 문장 듣다 보니 결국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고, 주인공들의 고난이 더 크고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늘 내 곤조, 스스로의 법칙과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다. 나름대로 해석해낸 사회의 구조가 있었고, 세상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만했고, 그것이 내 힘이라고 믿었다. 남들은 어리석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곤조가 순진하기까지 한 오만과 아집이었던 건 아닐까 싶다. 해맑고 낙천적이었던 어린 시절엔 세상을 몰라서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운이 좋아서 그 맑음을 오래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직 상처를 겪기 전이어서 가능했던 무지한 즐거움이었다. 이제는 많은 걸 알게 되었고,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처럼 삶의 어려움을 피할 수 없는 순간에 마주했다. 그래서 뼈아프다. 깨달음이 주는 통증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두려울 때도 있지만, 또 너무 늦기 전에 알아차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함께 든다.



나는 남들보다 더 알고 더 빨리 깨닫는다고 스스로 여겼지만, 정작 다들 아는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는 아이처럼 무지했다. 그 무지 때문에 더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다. 그렇다고 그때의 나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안쓰럽고, 이제야 스스로를 이해하는 느낌이다. 깨달아서 나아진 부분도 분명히 있다. 본질은 아무리 외면해도 결국은 추처럼 무게중심으로 되돌아온다. 예전의 해맑음은 그 시절을 버티게 해준 힘이었고, 지금의 아픔은 앞으로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거대한 구조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들은 있다. 나는 뭣도 모르며 살기 위해 디테일을 삶에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 같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관계를 집착하다시피 붙들었고, 나만의 작은 질서를 만들었다. 아침마다 모닝페이지를 쓰기도 했고, 집 안 구석구석에 아지트를 만들었다. 감정은 운동으로 풀려고 애썼고, 상담과 병원도 다녔다. 매일의 루틴을 세우려 했지만 자꾸 무너졌다. 그래도 다시 시도했다. 소중한 존재와의 관계, 나만의 언어, 달리기를 통해 정리되는 마음, 가끔 업무 결과물에서 느끼는 뿌듯함. 그것들이야말로 내가 버티는 힘이었다.



늦은 깨달음이지만 어쩌면 지금이 가장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 아예 모른 채 사는 것보단 낫다. 결국 제때 도착한 것이라 믿는다. 과거의 해맑음은 그 시절을 살게 한 힘이었고, 지금의 힘듦은 다음을 준비하는 힘이다. 어른이 되면 인생의 문제가 조금씩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수학이 앞부분을 놓치면 뒷부분이 더 어렵듯, 인생도 단계를 건너뛸 수는 없구나 싶다. 결국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소설은 이런 인생의 단계에서 공감과 위로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부분은 너무 아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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