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고 있어.
요즘의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버텨온 사람에 가깝다. 아침마다 쓰는 모닝페이지를 다시 읽어보면 그게 꽤 분명하다. 힘들다고 적어놓고도 멈추지 않는다.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계산하고, 정리하고, 다음을 준비한다. 이건 포기가 아니라 과부하다. 엔진은 아직 돌아가는데 냉각수가 바닥난 상태. 근데 나는 계속 액셀을 밟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우리가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말들은 늘 그럴듯하다. "이 정도는 해야지." "그래도 나는 해내는 사람이잖아." "조금만 더 하면 괜찮아질 거야." 얼핏 들으면 자기계발 책 문장 같지만, 실제로는 나를 쉬지 못하게 만드는 내부 규칙에 가깝다. 이 규칙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제는 그 규칙이 나를 보호하기보다는 계속 쥐어짜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좀비처럼 굴러가는 상태랄까. 살아는 있는데 생기는 없는.
지금 필요한 건 더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압력을 낮추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근육을 더 키우기보다 스트레칭을 해야 할 타이밍이다. 계속 힘주고 있으면, 결국 쥐가 난다. 인생에도 쥐가 난다. 그거 진짜 아프다.
하루를 다 끝낸 뒤에 "그래도 이만큼 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방식은 이미 에너지를 다 쓰고 난 뒤의 사후 처리에 가깝다. 대신 하루를 시작할 때 선을 먼저 긋는 게 필요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성공이라고 정해두는 것. 이 기준은 낮아야 한다. 생각보다 훨씬 낮아야 한다. 그래야 그 선을 넘지 않아도 실패자가 되지 않는다. 기준이 없으면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추가 미션을 던진다. 원래 계획에 없던 서브 퀘스트, 사이드 퀘스트, 숨겨진 퀘스트까지 혼자 다 만든다. 그리고 왜 이렇게 힘드냐고 묻는다. 퀘스트 디자이너가 바로 나인데 말이다.
회복을 보상으로 쓰는 습관도 슬슬 바꿔야 한다. 달리기, 글쓰기, 조용한 시간, 좋아하는 음악 같은 것들을 "오늘 잘 버텼으니까 허락되는 것"으로 두는 순간, 나는 또 하루를 견뎌야만 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사실은 그 반대다. 버티지 않기 위해 먼저 들어가야 하는 것들이다. 쉬고 나서 일해도 된다. 아니, 쉬고 나서 일하는 편이 훨씬 덜 삐걱거린다. 충전 안 한 휴대폰으로 하루 종일 버티겠다는 건, 폰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배터리 1%로 화상회의 들어가는 건 나한테도 잔인하다.
"이 정도는 더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보통 이를 악물고 한 발 더 나간다. 그런데 이 문장은 의욕의 신호가 아니라 과부하 알림에 가깝다. 계기판에 불 들어왔는데도 라디오 볼륨만 올리는 꼴이다. 이 생각이 나오면 하나를 더 하기보다 하나를 줄이는 쪽으로 바로 행동을 바꿔야 한다. 생각을 고치려 애쓰기보다, 할 일을 하나 미루는 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다. 정신력은 늘 과대평가되고, 물리적인 한계는 늘 무시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로봇이 아니다.
우리는 자주 스스로에게 설명한다. 오늘은 이만큼 했으니까 쉬어도 된다고. 이제는 설명 없는 날도 필요하다.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쉬는 날. 증명할 게 없는 날. 아무 성과 발표 없이 퇴근하는 날. 이런 날은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 일정표에 직접 넣지 않으면 끝까지 오지 않는다. 휴식도 예약제다. 인생은 생각보다 바쁘다.
지금의 나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해왔고, 충분히 버텼고, 충분히 잘 살아왔다. 앞으로의 기준은 이 정도면 좋겠다. "오늘도 밀어붙였다"가 아니라, "오늘은 덜 몰아세웠다." 이 기준으로 하루를 판단해도 삶은 의외로 잘 굴러간다. 그리고 그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적으로 두지 않아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좋다. 싸울 일이 줄어든다. 나랑 나 사이의 내전이 종전된다. 평화협정 체결. 휴전선 철거. 이제 같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