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9.04
집을 나서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길을 떠날 때 두려운 것은 없다. 다만, 돌아올 때 걸어올 거리가 두려워질 뿐이다.'
하도 집에서 나가질 않는 것 같아서 오늘은 한번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나는 어디까지 가야 돌아오게 될까.
가뿐하게 집을 나섰다. 노래도 들으면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집 근처에 있던 유적지였다. 예전에 소풍을 왔었던 기억에 다시 한번 찾아가 본 그곳은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곳에 있었다.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공간에 와서 놀라웠던 것은 사람들이 산책을 이곳에서 즐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때쯤 핸드폰 어플로 나침반을 켜봤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동쪽이었다. 그대로 길을 나섰다. 이런 식의 고독이 마음에 든다. 이 산책에는 목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좋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는 제초제를 쓰면 안 되냐고 말하면서 분노에 찬 눈길로 잡초들을 바라봤는데 이제 이 풀을 감정의 동요 없이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게 다 제대 덕분이에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러니까 근 8년 만에 아파트 롤러장을 사용하는 아이를 봤다. 어디서 주웠는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유유히 롤러장 안을 항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아마도 많이 놀고 난 후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저 비효율적인 막대기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에 그 애가 혼자 있었다면, 나는 안타까워하면서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허락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걸음 더 가보니 근처에 다른 애도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영화 '스탠 바이 미'18.06
아이들은 어른들 모르게 자란다. 그리고 아이들의 그림자는 키보다도 더 길게 자란다. 이를 알아챌 수 있는 어른들은 많지 않다. 부모님은 고사하고, 어떤 어른도 아이들의 그림자에 관심 갖지 않는다. 아이들만 서로의 그림자를 눈치챈다. 얼마나 그 아이의 그림자가 어제와 달라졌는지, 친구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어른들은 아이들이 언제나 까불거린다 생각한다. 저 삶을 겪어보고 자랐음에도 그 순간들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규칙 없는 놀이는 없다. 혼자 장난감을 들고 놀아도 아이는 제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시나리오를 몇 편씩 만들어 놀이에 적용한다. 아이는 홀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재미란 건 그저 부수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규칙을 부수고, 규칙을 확장하면서 아이는 놀이한다. 모든 재미가 그곳에 있다. 무슨 역할을 나누어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아이들은 그저 세계를 만드는 일 자체를 즐긴다.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세계 속에는 언제나 친구들의 몫이 남아 있다. 어른들은 그렇게 못한다. 아이의 입장은 참으로 묘하다. 어른의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마냥 따르지는 않는다.
두 글에 3년이라는 간극을 뛰어넘어 무언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 후의 홀가분함은 사실, 어찌할 수 없는 복학생의 고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호기롭게 여유 부렸던 시간은 증명해야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쉬고 싶어 쉬는 걸 두고서 사람들은 휴식에도 이유를 대라고 한다. 하긴, 애초에 방학에도 학업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인생의 순간순간에 존재하는 공백 같은 휴식을 견뎌내질 못한다. 뭐라도 하라는 질문에 휴식이라도 한다는 대답은 썩 좋지 않게 느껴진다.
키보다도 더 크게 자란 그림자가 어느새 나를 내려본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스탠 바이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