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감나무

메모 털이

by wanderer

18.3.9

정속으로 가도 느리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구가 너무 빠르게 돌아가서 그런 걸까?

버스에 보면 한 자리씩 남은 곳에 가서 앉으면 왜 굳이 여기 앉을까 하는 걱정에 못 앉은 적이 있다.

(사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서 한 자리 남은 곳에는 못 앉는다. 괜히 불안하다.)


18.3.11

아이는 엄마 아빠 모르게 이것저것 주워 먹는다.


18.3.16

물은 무색이지만, 가끔 병에 가려져 그림자가 진다.


18.3.19

삶을 향하는 의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의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기에 살아가지 않던가?


18.3.20

작가는 단어를 또는 문장을 혹은 느낌을 길어 올려야 한다.

기억의 방식은 다양하기에 기억을 기억하는 일은 그에 맞춰 쓰여야 한다.


18.3.21

우리의 일상은 무척이나 불투명해서 말없이 이해하기를 바라는데

말없이는 기초적인 눈치를 벗어나질 못한다.


18.4.1

꿈을 이루기 힘든 사회는 되었어도 꿈을 물어보기 힘든 사이는 되지 말자 우리.


18.4.4

취향은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


18.4.6

치일뻔한 사람을 보고서 한참을 놀랐던 사람들은 어느새 쥐 죽은 듯 눈을 깔고 저마다의 핸드폰을 쳐다본다.


18.4.12

앞에 앉은 이가 차를 부어 내 팔에 차의 향이 배었다.


18.4.26

생명의 의지로 약동하는 순간들, 봄의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버겁다.

나는 그 모든 생의 의지를 받아낼 정도로 무관심하지 않다.

-꽃가루 알레르기-


18.4.27

국립현대무용단의 'SWING' 무대를 보고 왔다.

1. 기계처럼 딱 맞춘 군무가 아닌 순서의 자유로움은 춤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시간 제약에 맞춰 정확하게 본인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느낌보다는 철저한 계산 안에서 재량을 주는 느낌이다.

2. 흉내내기에는 원초적인 즐거움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한껏 따라 하고 있었다.

3. 몸이 이끌면 팔이 따른다.


18.5.2

조리개는 빛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빛을 조절해서 어둠을 표현한다.

너는 어느 정도로 어둠에 예민해질 수 있니?


18.5.10

어떻게 더 슬픈 상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슨 영상을 보고 거기에 상상을 덧붙였다.

생활고로 아이와 동반 자살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차 안에서 아이가 막 소리 지를 거 같지가 않았다. 그냥 눈 감은 엄마를 쳐다보고 꼭 끌어안고 다시 눈을 감을 것만 같았다.

여기서 생각을 멈췄다.


18.5.13

분명히 봤다. 티셔츠에 '달콤한 삼겹살'이라고 써져 있었다.


18.5.16

짙게 깔린 구름 속에서 우리는 그 깊이를 채 가늠할 수가 없다.


18.5.28

아빠가 담배 두대 태울 동안에 즐길 수 있는 곡

(자다 일어나서 갑자기 떠오른 문구인데 왜 떠올랐는지 도통 모르겠다. 금연하신 지 오래되었는데)


18.6.7

자기계발 글이 판을 친다. 계발이라는 말 대신에 전략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절찬리에 판매된다.


18.6.9

어차피 말의 무게는 그 사람의 타이틀에 따라 달라지니까 결국 우리는 어떤 타이틀을 따고 그 안에서 무슨 말을 해야 될지나 고민하면서 살게 된다. 같은 주제의 더 깊은 철학을 담는다 한들 그 사람의 조건과 환경을 통하지 않고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18.6.10

병을 고치는 일은 정확한 진단에 근거한다.


18.6.13

아직도 제 상처가 문드러진 상흔을 보고 또 보고 있다.


같은 세월을 살아와도 삶의 고도가 다르거나, 삶의 밀도가 다르다.


18.6.16

분명하게 버스의 에어컨에서는 포도향이 났다. 아니면 코에 곰팡이가 핀 걸까?


18.6.27

서점 에세이 코너에 갔다. 에세이 책 표지는 감성적이다. 생각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 같다.

유독 비슷한 글이 팽배해서 꽉 들어차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8.6.29

마네킹 두상이 전부 작고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18.7.21

이름을 지어 부르면서도 그 이름이 어떻게 왔는지 모르는 상황의 아이러니


18.8.1

여름이면 불을 쓰는 요리가 무척 꺼려진다. 여름에 시원한 요리로 무더위를 잊는 일도 가능하지만, 그와 반대로 각오를 하고 더운 요리를 할 마음을 먹을 수도 있는 법이다. 어차피 더운 여름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면 어떤 음식을 하느냐 하는 것도 실상은 눈속임일 뿐이니까. 각오를 한 음식은 그래서 여름에 어울린다. 벼르고 벼른 음식을 꺼내는 일. 타협 없이 더 큰 불과 열기 속의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 이것이 여름의 요리다.

(이러고서 해먹은 요리는 실패했다)


18.8.6

근거 없는 편견은 없다.

빈약한 것이더라도 근거가 있기에 그를 바탕에 두고 사람은 사고한다. 그래서 편견이 어렵다.


18.8.8

아이들에게는 놀이터라는 공간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나누지 않고 자유롭게 놀이한다. 어른들은 그만큼 친구를 만드는 게 어렵다.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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