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nderer Oct 08. 2016

성장통

영화 '언 애듀케이션'

 1961년 영국에도 스펙을 만들어 명문 대학에 진학하려는 소녀가 있었다. 옥스포드라는 목표만 가지고 있던 이 소녀는 그저 공부만 하는 범생이 스타일의 학생도 아니었고, 목표만 높게 잡고 있던 부류의 학생도 아니었다. 알 만큼 알고 그만큼 속하지 못한 세상을 동경하는 학생이었다. 어떤 일을 '안다'라고 스스로 생각되는 수준이 되면 바라보는 세상이 시시해진다. 우등생으로 대접받던 제니에게 일상은 그런 의미였다. 학교 공부, 익숙한 환경, 평범한 일상 속에서 좋아하는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데이비드를 보게 된 순간은 달랐다. 본인이 좋아하던 첼로 이야기로 처음 말문을 열었던 남자. 흔하게 볼 수 없던 적갈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던 그 남자.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고,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에 대해 긍정하고 기꺼이 이야기했던 남자. 옥스포드라는 벽에 막혀 원하는 일들을 억누르면서 지내던 제니에게 데이비드의 태도나 행동들은 동경하던 '세계'의 것을 닮아있었다. 스스럼없이 클래식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담배를 피우겠냐고 물어봐주었던 사람은 그 밖에 없었다. 제니는 그의 반응에 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본인의 욕망을 긍정해준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데이비드를 보면서 '낯선 사람'이라는 의구심이 들지는 않았다. 아주 잠깐, 첼로와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의 교감이면 충분했다(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취향에 대한 이야기 몇 마디면 충분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일에 대해 '나도 그거 좋아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돈도 많고, 세련된 '어른 사람'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감정 공유였다. 같은 세계에 속하지 않은, 다른 세계에서 스스로를 이해해줄 사람을 찾은 일이니 말이다. 완고한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도 가뿐하게 해내는 데이비드의 모습에서 제니는 다른 형태의 어른을 본다. 궁상맞고 투박한 형태의 모습을 가진 어른이 아닌 세련되고 본인의 욕망을 긍정해주는 동경하던 세계에 속해있는 어른을


 제니의 취향은 명확했다. 담배, 샹송, 프랑스어, 미술품 경매처럼 그녀는 주변에 있는 것들과 거리를 둔 음악과 장소, 언어를 동경하고 이상향으로 그리며 꿈꿨다. 그녀는 오로지 대학만 가게 된다면 본인 마음대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란 꿈을 가진 소녀였다. 공부만 바라보는 철부지 소녀에게 일상과 다른 경험, 새로운 인물들과의 관계, 신기한 경험들은 그저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다른 무엇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데이비드에게는 돈이 있었고 함께 놀러 갈 여유가 있었고, 세련된 매너와 화술이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공부를 하라고 말하지도 공부를 잘해야 된다는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제니의 말처럼 17살의 소녀가 그런 유혹을 거절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녀는 콘서트를 즐겼고 그곳의 순간들을 마음속 깊숙이 간직했다. 검댕을 지우기 위해서 냄비를 박박 닦던 엄마의 모습과 돈 낼 걱정 없으니 아름다운 인생이라 말하는 아빠의 모습 속에서 찾을 수 없던 낭만과 환상이 그 안에는 있었다. 제니는 미련 없이 발을 돌렸다. 데이비드는 적어도 그녀를 꼬드겨서 물건을 강매하려는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으니까.


 성장통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터져 나온다. 정확한 원인 없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제니에게 닥친 성장통도 그랬다. 그저 키다리 아저씨로만 데이비드가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상상은 어떤 의미였을까. 점차 드러나는 아주 사소한 거짓말들과, 사소한 요구들과, 이를 알아가는 순간들. 낭만이 소비되는 방식을 눈치채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을 눈치채게 되는 순간에 소녀는 시시한 어른의 세계에 들어선다.


 시시한 어른들의 세계. 다른 이름으로는 책임이었고, 다른 이름으로는 의무였다. 제니는 시시하고 궁상맞은 그 세계에 냉소를 지었지만 세계를 지키기 위한 일이 그런 일이었음은 미처 몰랐었다. 사회를 알면 알수록 그것을 덜 알았던 시절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다 동일한 것 같다. '현실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깨닫는 일이 아닐까. 내가 무엇을 지불하면 무엇을 얻는지를 체득하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이름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스럼없이 계산하지 않고 즐겼던 과거 생활과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삶은 매 순간을 잘라내어 따져보고 있었다. 어른들은 어쩌면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모든 일을 계산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에 스스로가 시시해진 어른이라 느끼는게 아닐까? 이렇듯 '산다'는 아픔은 생각을 더 깊게 만든다. 대학에 가게 된 제니가 여느 대학생들처럼 행동하면서도 달랐던 이유는 그런 경험들 때문이리라. '배울만 한 인생'이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 배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언 애듀케이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