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젊은 시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nderer Nov 19. 2016

고독의 시간

영화 '싱글맨'

 전화가 걸려온다. 나는 다시금 그가 죽던 그날 밤의 일들을 떠올린다.

 조지는 연인이었던 짐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악몽은 그치지 않았고 그가 없는 방에서 깨어나는 일은 고통일 뿐이다. 그의 세계는 달라졌다. 일상 속 대화는 시시해졌다. 별다를 것 없는 시시한 이야기들 속에서 그를 채웠던 것은 어떤 강렬한 향이나 색, 움직임이었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감각하게 해주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보는 것이든 맡는 것이든 강렬한 경험이었던 것들. 그는 불안했고 초조해하고 두려워한다. 텅 빈 마음속에 색은 비어있었다. 그는 이제 혼자가 되었다. 모든 색이 빠져버린 세상을 덧칠하는 것은 또 다른 사랑의 여지. 그것뿐이다.


 그렇다 해서 공허한 일상에 의미가 생겨나거나 살아갈 희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한 순간의 유희일뿐. 때문에 부단히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간단히 허무해졌다. 무너지려는 순간을 붙잡는 이유들은 또 다른 순간순간들이었다.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주었던 이유들. 조지는 그 이유를 잊지 못했다. 그가 머물던 곳에 있어보고 추억을 공유했던 순간을 붙잡으려 애썼다. 결국, 끊어져서 끝이 날 것이라는 누군가의 존재로 채워지는 삶의 의미는 결국 부재와 동시에 스스로 채워가야 하는 것으로 변한다.


이 영화의 사실 관계나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한 남자의 연인이 죽었고 그 남자는 그를 그리워한다. 때문에 색은 파도처럼 들이치고, 스며들고, 사라진다.


 고독의 시간이 찾아온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만나는 사람이 늘어나니 외로워질 일 또한 덩달아 많아진다. 무작정 하소연할 누군가를 찾거나 홀로 훌쩍이거나 그 생각들이 붙잡지 못하게끔 바삐 움직이거나. 해법은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나는 주로 끌어안고 삭히는 편이다.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굳이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들면서 생각을 바꿨다. 쉽게 잊으려 한다기보다는 애써 기억하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대하는 것이 서툴러서 그런 것도 있었다. 관계에 있어서 발생하는 실수들이 해결하기에 막막하다 싶으면 아예 등을 돌려버리곤 했다. 이제는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일도 관계를 닫아버리는 일도 조심스럽다.


 혼자 있는 일이 '고독'한 것은 아니다. 홀로 존재하는 홀가분함이 있을 수도 홀로 존재한다는 고통이 있을 수도 있다. '자립'과 '고립'. 이 미묘한 어감 차이에서 발생하는 고민의 결실은 오롯이 생각의 원천이 된다. 쓸쓸함은 한순간의 열병처럼 휘몰아치고 야금야금 나를 갉아먹다가 흔적을 남겨두고 떠난다. 감독은 나의 공간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생각을 채도 변화를 통해서 표현해낸다. 조지가 느꼈던 고독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싱글맨'

매거진의 이전글 버틴 게 아니라 흘러가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