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좀 열심히 하고 살걸
16.9.3
우리는 좋아하고자 하는 일에도 좋아요를 누른다.
16.9.21
야간열차의 공기 안에는 침묵이 담겨있다. 기관사의 배려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간간이 들리는 안내 방송 뒤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사람들이 놓여있다.
아직은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지만, 끌려가는 일은 누가 끌고 가든 피곤한 법이다.
신중하게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과, 액정 화면 속 드라마의 배우들이 열연한다.
그 너머로 커플이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본다.
16.9.26
시작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당신만의 것이랴
삶에 내뱉어진 생의 자유는 아이와는 다른 종류의 불안이라
몰라서 두려운 것이 아니다
자신하지 못할 노력
확신하지 못할 목표
살아왔던 삶이 살아가는 삶으로 바뀌는 순간 속
스무 해의 노력이 신기루처럼 증발할까
오직 그것만이 두려울 뿐이다
16.9.28
평택역에서는 백화점에서 날 법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 화장실은 정말로 독특하게도 영화관에서 풍길법한 달큼한 캐러멜 향이 남아 있었다.
16.10.17
간 밤에 내렸던 비가 살랑 부는 바람을 맞아 기분 좋게 말라가고 있다.
공기는 이보다 청량할 수 없고 내려앉은 먼지 위로 물체는 완연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씻긴 이후에 햇빛에 따라 말라감을 느낀다.
이제 단풍은 저마다의 옷을 찾아 입는다. 고유한 색깔을 담은 자신의 옷을 찾아 입을 때가 왔다.
16.11.10
누군가의 나이를 넘어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해가 가고 때가 변하며
나는 나이를 먹었다
스물다섯 해 삶의 궤적은
떳떳할 수 있는 자신감인가
그저 흐름에 순응한 나잇살인가
증명하기 위해서 길을 나선다
시대의 아픔에 필요한 것은
마취제인가 각성제인가
16.11.28
동네 주변에 검은색 털을 가진 푸들이 살고 있다. 등교할 때마다 얼굴을 비추는 그 친구는
빨간색과 노란색이 적절하게 배합된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다닌다.
그 모습을 보고서 왜 '해병대 출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가끔 주인아저씨가 군복을 입고 다니시는 것을 보면, 그 친구 아마도 자원입대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16.12.7
오늘 첫눈이 왔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올해 초에 왔던 눈이 있겠지만은, 첫눈이라는 의미는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지났구나'하는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눈의 계절'이 돌아왔다. 누진세와 싸우면서 보냈던 지난여름의 열기를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아마 아침밥을 사러 편의점에 가는 길이 미끄럽지 않았다면, 눈이 왔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소소한 모양새였다. 물론, 비몽사몽 간에 두 번이나 넘어질 뻔해서 그 모양새와는 상관없이
눈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푹신푹신한 느낌은 슬슬 해가 떠오르면 축축하게 변하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첫눈인데. 펑펑 내려서 꽝꽝 얼어버리지 않아 다행이다. 그렇다면 진작에 넘어졌겠지.
나는 군필자들이 동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눈'에 대한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
남쪽 지역에서 군생활을 하다 보니, 눈을 치워볼 기회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손이 시릴 정도로 눈에 파묻고 장난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이 과연 깨끗할까', '신발이 젖어서 짜증 난다' 같은 생각만 하게 되는 것 같다.
너무 많이 봐왔고,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기에 그저 신기한 현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젠 순간순간을 온몸을 바쳐 느끼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