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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Jan 07. 2017

응원한다, 힘내라

영화 '두더지'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이 질문을 고등학생 때 나 자신에게 던졌다면 지금의 내 모습과 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지금의 내 모습은 내 삶의 어느 부분이 원했던 사람일까. 어떤 순간에 깨달음을 얻어서 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인생의 어느 한순간을 집어낼 수가 없었다. 아주 작고 미묘한 변화들이었다. 막연하게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소한 호감이었고, 자잘 자잘한 문제들을 고치다 보니 꿈은 자연스럽게 구체적으로 변했다. 포기할 수 있는 것들과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정했고, 남은 것을 헤아려보니 지금의 내가 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구체적인 이상형을 그린다. 인생계획을 짜두고, 그에 맞는 최선의 본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의 나는 막연하게 계획만 세우는 사람이었다.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한 모습만 명확하게 머릿속에 박혀있었고, 그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모습에 대해서는 무감각했다. 계획대로였다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은 변했어야 한다. 계획대로였다면 내 생활은, 내 지식수준은, 내 취업 계획이나 연애사는 어쩌면 바뀌어도 한참은 바뀌어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인생은 계획과는 무관하게 흘러간다.


 스미다의 집 근처에는 대지진으로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살고 있다. 텐트와 천막을 치고 살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재해민인 본인들을 받아준 스미다에 대해서 고마워하고 알게 모르게 그를 도와준다. 하지만, 스미다의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집에 돈을 요구하면서 돈을 뜯으러 오고,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세간살이를 들고 도망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사채빚을 갚으라고 사채업자들은 그를 독촉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스미다는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방황한다.

 스미다는 끊임없이 폭력의 대상이 된다. 폭력은 외부에서 내부를 향하고, 스미다는 그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였다. 아버지의 빚이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들이나, 차자와의 스토킹, 구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스미다는 '하지 않은 일' 때문에 고통받는다. 폭력은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쳐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리 되물어도 답이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결정나버린 삶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봤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다. 악인이나 선인을 가릴 것 없이 결정 난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에 살아가는 일은 그 결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집으로 들이닥친 야쿠자들에 대고 스미다는 절규한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라고, 나는 이 정도로 주저앉지 않는다고, 내 미래는 내 것이라고, 훌륭한 어른이 될 거라고.


 '되고 싶다'는 말 안에는 '되지 않겠다'는 생각 또한 포함되어 있다. 애써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현실의 괴로움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괴로움의 근원은 '현실'이니까. 시간이 언제가 되었든 결국에는 외면했던 고개를 돌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소노 시온 감독은 땅바닥에 처박혀 진흙탕 속에서 나뒹굴지언정, 포기하지 말라고 힘내라고 이야기한다. 현실에 지지 말고, 삶의 모든 것을 잃어도 힘내라고, 더욱더 힘내라고 소리친다.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모든 것을 앗아간 재난과 폭력에 대해서 옆에 서있는 사람은 그저 힘내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힘내고, 적당히 피하고, 적당히 받아들이면서 쓰러지지 않을 만큼 힘내고 끝끝내 일어서는 삶을 원한다. 그것이 내 것이든, 당신의 것이든. 그러니 얼굴도 모르고 부끄럽게 적어낸 말이지만 힘냈으면 좋겠다. 값싼 응원이라 더없이 미안하고 미안하지만 쓰일 때만큼은 값비싸게 쓰였으면 싶다. 그러니 나는 응원한다. 내가 아는 누구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힘내라! 당신, 힘내라!'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두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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