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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Feb 18. 2018

촌스럽지 않게 이별하기

영화 '엔딩 노트'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셨습니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던 아버지는 건강검진에서 말기암 판정을 받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버지는 본인이 늘 하셨던 대로 본인의 계획을 세웁니다. 일명, '엔딩 노트'인 셈이죠. 차근차근, 죽기 전 계획을 담아 이것저것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이해가 가는가? TV나 영화를 통해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행동이 마냥 편하거나 자연스럽다고 느끼지 못했다. 스나다 도모아키씨는 암 선고를 받았다. 본인의 죽음을 대비해서 그는 엔딩 노트를 작성한다. 본인을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남기는 버킷 리스트였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의 반응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과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본인의 끝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질문들을 만들어낸다. 그 질문들은 아직 멀리 있다는 생각에 온전히 그 무게를 느낄 수 없었던 이야기들. 하지만, 꼭 한 번은 마주해야만 하는 물음들이었다.


Q1. 내가 죽을 수 있을까?

 한 번도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다. 유언장을 써본 적은 있어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참 놀랍기만 하다. 죽는 것도 마냥 죽게 되는 일이 아니라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본인 장례식에 부를 사람들을 생각해본다는 것이나 장례식 식장을 어떻게 각오 없이 무덤덤하게 해낼 수 있을까. 꼼꼼하게 본인의 삶을 정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였다면 울적해하면서 홀로 방에 틀어박혀 있을 것만 같은데, 그는 움직였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정을 대타로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렸다.


Q2. 잘, 죽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더 어려웠다. 그러니까, 좋은 생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돌아볼 여유가 생길 정도로 쌓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평소에 이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그 생각 없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다. 죽음이 궁극적으로는 쌓아왔던 것을 비워가는 과정이라 본다면 아직은 가진 게 없으니 버릴 수도 없다.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쌓아가며 살아간다. 사는 일은 한 치도 가벼워지지 못한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음에 짊어지고 가는 짐들도 그렇다. 스나다 도모아키씨는 어떻게 그렇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본인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Q3. 다르게 볼 수 있을까?

 다른 사람 입장만 생각하다 하지 못한 말만 한 무더기다. 죽음이 삶의 방식과는 다른 길로 걸어봐야 하는 길이라면 그때의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있기를 더 바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암만 해봐도 죽음 앞에 겸허해지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비로소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삶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본인이 직접 본인의 장례에 오는 사람들을 고르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장례식 회의를 죽는 본인과 함께 나눈다는 사실이. 본인의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말한다는 사실이. 병이 많이 악화되어 제대로 발음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담담하게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맛집의 비법을 캐묻는 것 마냥 듣고 들어도 내 것으로 체득되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끝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일까? 엔딩을 맞이한 스나다 도모아키씨의 목소리로 미흡하게나마 해답의 실마리를 들어볼 수 있었다.


A. 세일즈맨은 물러날 시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거칠게 살아온 일생인 탓에 이런저런 고난과 역경이 많았습니다. 부주의로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일은 은퇴를 했고, 이제라도 계획에 맞는 생활을 조금 해볼까 합니다. 이런 느낌의 이야기였다. ‘이제 슬슬 실례하겠습니다. 세일즈맨은 물러날 시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거든요.’라고 맺는 끝인사는 차분했다. 세일즈맨의 계획은 철저했다. 본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암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대책 없는 낙관이나, 마찬가지로 대책 없는 비관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본인 상태를 제대로 확실하게,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하고 잘 ‘단도리’ 지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을 터다.

 본인을 닮아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아들에게 인수인계를, 아내에게는 사랑한다는 인사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당부를 남긴다. 아무리 꼼꼼하게 준비 한다한들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삶에서 온전히 자신만이 해낼 수 있고 결정지을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본인의 죽음과 관련한 일뿐이었다. 물론, 장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는 일이 되겠지만 그 전의 과정들은 그가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세일즈맨의 마무리는 이런 것이었다. 모쪼록 실례가 많았습니다. 마무리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물러난다는 사실보다, 시기를 직감하는 순간이 아프다. 언제든 그랬다. 어려서든, 크고 나서든, 매 순간 매 상황에 이별을 인내해야 하는 때가 오면 미련은 덕지덕지 제 살을 불려버린다. 어제든, 오늘이든, 앞으로 있을 어느 날들이든. 내게 한 세상이 왔다 가는 일은 너무나도 크고 견디기 어렵다. 크고 작은 이별을 견디며, 생채기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 세계가 덜 아프게 느껴질까? 무딘 감상으로 한 세상을 떠나보내는 일이 언제쯤 무덤덤해질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엔딩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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