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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Aug 14. 2018

미래에서 온 구전 설화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한 편의 영화가 담아내는 이야기는 단지 스토리와 그림 이상의 감각을 말하기도 한다. 막연한 분위기와 느낌으로 설득하는 영화는 때로는 하나의 신화에 대한 구전 설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자극이 아니어도 그런 영화들은 상징의 힘으로 뭉근하다. 동굴에 그려진 벽화처럼 넋을 잃고 그림을 쳐다보다 문득 오묘한 감정이 스민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강렬한 감각에 대한 이끌림이다. 아주 가끔 그런 일을 해내고 마는 영화들이 생긴다. 감각의 지평선을 넓히는 일을 하는 영화들. 오감의 영역으로 국한되지 않고 느낌이나 분위기에서 오는 전혀 다른 생경한 감각을 일러주는 영화. 이 영화도 그중 하나다.

 

 그 모든 감각의 기억은 다 이 영화의 소산이다. 바스락거리는 모래의 질감을 그대로 빼다 박은 이미지들은 애써 전하지 않아도 온전히 감각된다. 매드 맥스라는 영화 안에서 갈증은 단지 보이는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영화에서는 신념의 체계가 갈증이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된다. 모든 자원이 희소한 세계 속에서 더 큰 갈증의 표현은 아무런 흠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렬한 생존의 의지로 기억된다. 부서져라 깨문 이빨처럼 그 의지는 확고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갈망해야만 했다. 갈증과 갈망은 그 자체로 삶의 원동력이 된다. 더 큰 믿음에 대한 갈망,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은 이끌린 대로 행동했다.


 갈증이라는 테마 말고도 생각해볼 만한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생존에 대한 통찰도 읽어볼 수 있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확실하게 표현하는 내용은 척박한 환경 조건이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삶이 아니라, 살아남는 일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존에 대한 테마를 다루는 수많은 영화와 게임들이 택하는 표현 방식은 직접적인 묘사다. 주인공의 행동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생존의 기술을 알려주는 형태로 그 삶이 얼마나 고된지를 표현한다. 극이 진행되며 개인의 생존은 친구, 가족, 공동체로 이어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된다. 생존이라는 일차적인 목표와 '공존'이라는 목적 사이에 숨어있는 고뇌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척박한 생존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택하게 되는 사회 체제. 목적의식이 거세된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수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워보이들의 모습을 통해 어떤 생각에서 이런 사상들이 퍼지게 되었는지를 상상해보자. 광대한 모래사막의 땅 위에서 낙오는 죽음이었다. 낙오자의 존재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동차를 비롯한 운송 수단들은 그 자체로 믿음의 대상이 된다. 발할라에 대한 개념을 워보이들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전사들의 천국'인 발할라는 전장에서 죽은 전사들이 얻어낼 수 있는 성취로 여겨졌다. 생존을 위한 투쟁을 지속하는 과정 중에 모든 이들이 전사로 길러지는 입장에서 이보다 더 효율적인 신념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척박한 생존의 땅 위에서 분노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생존의 보고다. 포용할 수 없는 환경과 사회가 개인을 억압하는 상황 속에서 분노는 결과 아닌 과정으로 남아야 한다. 효율이라는 환상 속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인류는 모든 자원이 희소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지 못했다. 변화는 남아있는 자원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아닌, 그를 나누려는 자들의 손에 들려 있다. 더 많은 욕망을 욕망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이 되었어도, 사람들은 제 위치에 맞게 생각하고 움직인다. 나라라 부를 수 없는 지경의 부락 수준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지내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생존법을 면하지 못한다. 과거의 기억을 가진 임모탄 조는 본인의 입맛에 맞춰 사람들을 세뇌하고 신념의 코드를 불어넣는다.


 이전 시대에 대한 기억 없이 기물들만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수단이 숭배의 대상이 되는 모습은 지극히 논리적인 결론이다. 글과 기록 없이 우리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임모탄 조의 모습이 우상화되는 것은 그가 이전 시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기록하지 못한 역사는 변화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마지막 순간에 맥스는 다시금 길을 떠난다. 오래전 숭고한 여행자의 위치가 문득 떠오른다.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한 세계와 다른 세계를 잇는 이들은 풍요의 시대에는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구전되는 기억과 기억으로 기록이라는 더 두터운 구조를 만드는 이들. 그 모습을 보면서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가 다시금 마음에 가 닿는다.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사진출처: 다음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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