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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Aug 26. 2018

집단 '사고'

드라마 '라이프'

 드라마 라이프가 짚어내는 일상의 통찰은 간단하다. 고된 업무 강도 속에서 일반인이 얻기 어려운 정보를 가지고 있는 집단은 필연적으로 폐쇄적인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집단은 사고를 만들지 않으려고 사건을 은폐한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은 내부고발이 아닌 형태로는 알려질 수가 없다. 그 일을 감사하는 이들도 그 일의 생리를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과연 정당하게 사건과 사고를 판가름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감정은 보류한 채로? 라이프라는 드라마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이 이야기는 비단 병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폐쇄적인 집단이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질병들. 병원의 이야기가 그저 병원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 구조가 집단의 공통점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겪어보고, 당신도 겪어봤을 이야기들. 부조리한 환경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세부적인 내용들은 다를지언정 곪아 터지는 집단의 병폐는 공통된 내용이다. 엇나가는 개인은 집단에서 종종 한 사람의 문제로 치부되고 시스템은 천년만년 견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집단인 것인데, 집단의 룰이 다시금 그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집단의 기준은 신성시되지만, 개인의 기준은 일탈로 치부해버린다.


 구 사장의 등장은 드라마의 메시지를 생각해보면 필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의 오류. 자체적으로 부조리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외부인이 필요했다. 그들의 업무를 이해하고 다른 관점에서 집단의 연결고리를 깰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고, 구 사장은 그에 맞춰진 사람이었다.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가능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일상은 일상이니까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맞다. 몇몇 초인의 의지를 가진 이들이 본인을 투신해서 부조리한 환경을 바꾸겠다고 도전한다. 선한 의도. 고귀한 희생은 희생으로만 끝이 난다. 개혁은 시스템의 문제고 이는 단지 한 두 사람을 갈아 넣는다고 채워지는 그릇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해야 유지되는 사회라면 진작 무너져야 옳다고 생각한다.


 어떤 조직이든, 어떤 일을 하든 그렇다. 인원이 많이 모집되어 시스템의 결함이 티가 나지 않는 경우에 그 피해는 온전히 다음 세대의 인원들이 짊어진다. 어떤 집단이든 집단의 문제는 그곳의 개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본인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들고 있다는 것도 그들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이들이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과는 별개로 일 자체에 대해 돌아볼 시간이 있어야 문화가 바뀔 수 있다. 생각하기에 우리는 더 나은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만들어갈 수 있다. 집단 사고의 문제는 생각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나온다고 나는 전적으로 믿는다.


 조금 더 천천히 가고, 더 투명하게 관리하면서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수밖에는 없다. 경쟁의 목적이 승리가 아닌 생활에 놓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기기 위한 수단과 목적은 생활을 영유하기 위한 것과는 다르다. 드라마의 결말이 어떤 방향으로 날지는 모르지만 이만한 고민 덩어리를 이끌어낸 마당에 마냥 허투루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떤 답을 내든, 그 답은 그 답으로 가치롭다. 드라마라는 환상 속에서 우리는 현실의 힌트 정도는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진 출처: JTBC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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