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Q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nderer Sep 02. 2018

사지 말고 살아보세요.

다큐멘터리 '얀 겔의 위대한 실험'

 대학에 와서 배울 수 있었던 건 책보다는 책 밖의 경험들이었다.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이뤄가는가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생생한 경험들. 돌이켜보면 자취라는 형태의 거주 방식도 내게는 큰 배움이 되었다. 저층 구조의 원룸에서 생활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조금 더 민감하게 외부 환경에 반응한다는 사실이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하는 경험들에 있어서는 아파트 고층에 비해 훨씬 더 직접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감정이 더 풍부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빨래를 널고 밖을 쳐다보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인사도 건네고 말이다. 예전에 살던 집은 13층이었다. 13층의 창문으로 내다보면 저 아래에 걸어가는 사람들은 개미 같아 보인다. 그 위치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2층 창문으로 거리를 내다볼 때 느껴지는 감정은 달랐다. 멀리 있으면 분석하게 되고, 가까이 있으면 느끼게 된다.


 자취 생활은 행동하는 삶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마냥 게으르게 놔두면 주인을 따라간다는 걸 체험하며 배웠다. 전망을 구경하는 일 외에는 사실, 13층에서는 밖의 일상에 관심이 없다. 관심 갖기에 너무 높은 위치였다. 높은 탑에 갇힌 인간이 본인의 세계로 천착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했다. 윗집, 옆집, 아랫집 친구들과 놀면서 반짝하고 세계가 넓어졌던 적은 있었지만 그건 어린 시절의 넉살이었을 뿐이었다. 저층 원룸에서 살면서 나는 보다 나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내 방 수준을 벗어났다. 작아도 이 공간이 내 집이니까. 내 방과 내 집의 간극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가 존재했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문제였다.


 사는 마을이 아닌 사는 도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일은 어렵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의 행동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들이 명확해지면 그만큼 고민을 한다. 공간의 크기와는 별개로 내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느냐에 따라 고민의 범위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나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드는 범위까지가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기준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나의 도시'라는 말이 어색한 이유는 그만큼 도시가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개 시민의 위치에서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여지도 미미하고, 그만큼 사람들에 친숙한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현대의 도시는 자동차가 지배하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다. 도시는 주거 지구와 상업 지구, 집과 일터가 분리되어 있기에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대중교통 활용은 부수적인 수단이다. 차가 있는데 왜 걸어 다니겠는가. 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을 하겠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동차의 편리성은 몇 가지 기본 조건이 충족될 때에 가능한 결과다. 잘 닦인 도로와 넉넉한 주차공간 없이 자동차의 편리성이 보장받을 수 있을까? 자동차는 상당한 공간을 잡아먹는다. 우리는 이미 자동차 없는 도시를 상상하기 힘들지만, 상상해본다면 어떨까? 생각보다 더 불편할까 아니면 다른 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얀 겔은 인간 중심의 도시를 위해서 연구소를 만들고 끊임없이 연구를 진행했다. 근대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도시. 성냥갑 같은 아파트로 인간을 구석에 치워두고 자동차가 인간을 대신해 모두를 이어주는 형태 대신 대안을 생각한다. 인간적인 교류를 중심에 둔 도시의 방식을 고민했다. 그는 도시의 구조에 따라 사람들이 생활한다는 걸 느끼고는 꾸준히 이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1940년대부터 이어져 온 자동차 중심의 도시 방식에 맞서 그는 그만의 루트로 연구를 진행한다. 동료와 제자들과 함께 도시에서 사람이 어디에 머물고 어떻게 생활하는 지를 연구했다. 그의 결론은 간단했다. 도로가 늘어나면, 자동차도 늘어난다. 마찬가지로 시민을 위한 공간이 늘어나면 시민 활동도 늘어난다.


 이 다큐멘터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얀 겔은 이미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와 실제 사례 적용을 통해 그의 생각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더 많은 시간의 연구가 필요할 수도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는 다른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리의 삶에 적용 가능한 지는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상황과 환경, 여건이 다르기도 하다. 누구도 확답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우리는 시민으로서 생각해야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린아이들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 어렸을 때에는 우리가 살아갈 미래 도시에 대한 생각들을 표면적이나마 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내가 살아갈 미래 도시에 대한 그림을 참 많이 그리라고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무슨 생각으로 이 도시를 생각하고 사는가.


  좋은 결론을 얻어낸 저 도시들과 내가 사는 곳의 여건이 같을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사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시민들의 의견이 그들이 사는 도시를 만드는 데에 얼마나 반영이 되는가 하는 문제다. 내가 내 사는 도시를 '내 도시'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민의 손에 그만큼의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미약하게나마 사는 공간을 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갈 정도는 있어야 한다. 당장에 살 집부터 고민스럽긴 하지만 조금씩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정신적인 유산과 물리적인 유산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 부끄럽지 않을 공간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은 동일하다.


 도시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도시였다. 부모님이 살면서 도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환경 속에서 자라기는 했어도 그 말이 더 나은 공간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무슨 가치를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어떻게 사는 공간에 적용하느냐. 더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한두 명의 의사결정을 통해 정해지는 대답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 더 필요하다. 도시에 대해서는 마스터플랜을 짜고 결정해버릴 수 없는 일이니 더욱 튼튼한 기본을 갖추자는 말처럼 말이다. 돈 주고 살 도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살아갈 도시를 만드는 일에.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얀 겔의 위대한 실험'

매거진의 이전글 집단 '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