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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Sep 23. 2018

아, 이번에도 실패했다!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

 이 이야기는 실패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의 침공은 이번에도 실패했다. 전형적이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으니까. 물론, 이번 침공은 전 국민들이 반발하는 전쟁도 아니고 극소수로 진행되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실패했다. 실패의 가능이 더 높았던 침공이지만 과정을 돌아볼 필요는 있다. 일단 책임자부터 찾아보자. 누가 주동자인가 하고 살펴보니 군인이 아니다. 이번 침공은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클 무어가 벌인 일이었다. 마이클 무어는 세계 각국에 쳐들어가 그 나라의 장점들을 가져오는 일을 기획했다. 이탈리아의 근로 복지 제도, 핀란드와 슬로베니아의 교육 제도, 프랑스의 급식 환경들을 가져오고 미국의 깃발을 그 땅 위에 박았다.


 저 나라들에 깃발이 꽂혀도 침공이 실패한 이유는 확실하다. 각 나라의 단편적인 장점을 이어 붙인다 해서 미국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단지 몇 가지 특징들을 베낀다고 개선할 수 있었다면 진작 공무원들은 근무 태만으로 해고되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이 침공은 승리를 보장한 공격은 아니었던 셈이다. 실패가 보이는 작전이었어도 시도한 이유는 간단하다. 실패해도 얻어가는 점이 분명한 작전이었다. 이번은 미국이 총으로 협박해서 벌인 전쟁도 아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을 다른 나라에 파견해서 정중하게 질문을 던졌다. 침공을 당한 나라들은 기꺼이 그 나라의 장점을 빼앗기면서도 웃으며 마이클 무어 감독을 배웅했다.


 나는 마이클 무어식의 작품이 빚어내는 맛을 알고 있다. 그의 굳센 신념은 확실하게 호불호를 가른다. 지지자와 적을 나눈다. 그는 뜨겁게 펄펄 끓어오르는 주제를 들고 와 카메라 앞에 소환한다. 거침없는 행동에는 분명한 지적이 존재하고 호응이든 욕설이든 목소리는 모인다. 구분할 수 없는 함성 소리는 뜨겁게 타오르고 빠르게 식는다. 그런 그가 이런 미적지근한 영상을 만들었다. 구미가 당길만한 음모론식의 내용 풀이 대신 본인의 행적들에 대한 타협점을 제시하는 형태다. 이유가 뭘까. 그는 여전히 본인이 믿는 대로 행동한다. 숨기지 않고 이야기의 장으로 사람들을 소환하는 건 여전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성찰하는 다큐멘터리다. 전작들의 주제는 굵직굵직했고 명확했다. 총기규제, 의료민영화처럼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의견이 나뉘는 내용들이었다.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는 그가 다른 형태의 변화를 꿈꾼다. '볼링 포 콜럼바인'이 나온 지 16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사건 사고가 빗발치고 있다. 필요한 이야기를 했고 행동했으나 변한 건 없고 오히려 더 많은 사상자들이 나왔다. 그런 맥락으로 나름의 추측을 해보자면 이렇다. 어쩌면 그는 본인의 방식에서 한계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주장만으로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해왔던 행동들이 변화에 얼마만큼 기여했을지를 생각해보니 잘 모르겠다. 어떻게, 무엇을 바꿔야 할까?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성찰 후에 본인의 방식으로 내놓은 대답이 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상상은 완전한 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적어도 방향을 잡아줄 단서가 있어야 상상도 의미가 생긴다. 추상적으로만 이해하는 이상적인 사회상은 유토피아다. 그런 건 없다. 모든 국가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장점에 대해서 생각이라도 해보자. 목표치라도 잡아보고 변화를 만들어보자고 마이클 무어는 말한다. 저 나라들은 나름의 철학을 갖고 그들의 사회 속에서 통용될 규칙들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래도 된다고 말한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산다. 단순한 진리를, 제도와 규칙을 떠받드는 삶이 아니라 삶을 위한 제도와 규칙을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영상 후반에 나온다. 54년생 마이클 무어가 생각했던 변화의 기점은 그 순간이다. 장벽이 무너지고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다. 변화가 생겼다. 정답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답을 구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정답에 휘말려 해답을 구하는 일조차 피하고 있다. 그는 답을 구하며 실패하고 시도하고, 또 실패하고 다른 방향으로도 가보고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단순한 일이라 말한다. 장벽에 정을 들이밀고, 망치로 내려쳤더니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은 오보로 무너졌다.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는 하나 둘 집 밖으로 나왔고 벽을 부쉈다. 기자에게 오보는 실패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오보를 무엇이라 기억할까. 적어도 30년 단절의 장벽이 무너지던 순간을 실패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쩍 많은 생각이 드는 다큐멘터리였다. 나도 말하기보다는 행동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하고 싶은 말에 몰두해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형태로 만들고 싶지 않다.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영상은 만들고 싶지 않다. 단지 주장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보고 싶다. 그게 이 일을 하는 이유고 가야 하는 목적지다. 가볍게 다가가기 위해 더 깊게 생각해야 하고, 멀리 가기 위해서 더 넓게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스스로 그 기준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면 이 영화처럼 기분 좋게 '아, 이번에도 실패했다!'하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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