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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Jul 19. 2018

정의라는 기준

영화 '다크 나이트'

J

 조커

 조커는 자신이 정상이라 생각한다. 고담 같은 동네는 악당이 곧 법이었고, 부정부패가 일상이었던 장소였다. 마피아는 각 기관에 뿌리 깊게 손을 뻗치고 있었고 개혁은 요원한 일이었다. 배트맨과 하비 덴트라는 변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들은 설득할 수 없는 상대다. 물불 가리지 않고 본인들의 일을 했다. 확고한 사명감 속에서 어떤 타협도 통하지 않는 걸 아는 사람들은 적당히 그들을 피했다. 애써 분란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들의 등장이 조커의 흥미를 이끌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시민들을 믿고 행동할까? 어디까지 본인의 사명감을 지킬 수 있을까? 죽을 만큼 고난을 겪고 나면 그들도 달라질까? 질문이 생겼으니 답을 내러 그는 행동한다.


 조커는 배트맨과 많이 닮아 있다. 둘은 철저한 정보조사를 통해 사건에 접근한다. 상징을 사용하고, 공포를 준다. 마술처럼 눈속임과 화려한 위장 속에서 진의가 향하는 곳은 예상치 못한 부분이다. 둘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본인이 하는 일에 사명감을 갖고 있다. 다만, 상황에 따라 바뀌는 조커의 정체성에 비해서 배트맨은 견고하다. 조커는 본인의 기원에 대해 큰 의의를 두지 않지만, 배트맨은 다르다. 그에겐 정체의 기원이 그를 이루는 모든 것이다. 사람들은 조커가 왜 분장을 하고 이런 짓거리를 하는지 잘 모른다. 알프레드의 말처럼 누군가는 그저 세상이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기도 한다.


 기원이 불명확한 악당을 상대해야 한다. 상대의 정체를 알아야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데 단서가 없었다. 범죄 동기를 파악할 수 없으니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다. 논리와 추리로 일을 해결하는 상대를 모든 가능성과 절대적인 혼돈 속으로 초대한다. 탐정은 궁지에 몰린다. 의도와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상대를 두고 배트맨은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수단을 가릴 여유조차 없어진 그에게 조커는 존재 자체로 정체성의 위협이다. 올바른 수단을 택할 여유가 없다면 그와 조커가 다를 이유는 무엇인가.

Dark Knight

 어둠의 기사

 악당은 모든 수단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의 실패를 겪지 않지만, 영웅은 아니다. 그들에게 수단은 그들의 목적의식이다.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행하는가 고민해야 그나마의 정당성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영웅이라는 존재에 인간의 기준을 초월한 초인의 의지를 요구한다. 영웅의 의지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래야 그의 의지와 목적이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는 정의가 살아있다는 말은 해줄 수 없지만 악행에 처벌이 따른다는 말은 해줄 수 있다. 그는 정의의 상징이 아닌 공포의 상징이 되려 한다. 올바른 일을 한다고 믿으면서도 몇 번씩 고민하던 문제다. 영웅은 어떤 도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되는가?


 수단에 묶인 그는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로 포장하지 않는다. 차라리 공포의 상징이 되는 편이 나았다. 특정한 이들, 범죄자들에게만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실체가 존재하는 전설과 미신의 주인공으로 각인되길 바랐다. 나쁜 일을 하면 배트맨이 잡아간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도면 되었다. 배트맨 모습을 한 경찰들의 등장은 그런 면에서 보면 그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결과였다. 만약 그들이 잡히게 된다면 상징은 상징으로의 힘을 잃어버린다. 실재하지만 실체를 잡을 수 없어야 공포의 상징은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이라는 상징의 가장 큰 적은 조커다. 그는 공포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니까.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종류의 광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고 개인의 만족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저마다 한 줌의 광기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 누구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고 그들도 그들의 삶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배트맨과 조커는 많은 부분이 닮아있지만 의도만은 분명하게 다르기에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영웅은 그 모든 걸 감내하고, 다시 살아간다.


 두 얼굴

 하비 덴트의 기준은 견고했다. 사회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스템이다. 물론, 단지 시스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배트맨과 조커의 등장은 우연의 일치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은 떼어두고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민일 테니까. 그는 노력과 실력으로 본인의 위치를 만들어냈다. 불타는 사명감 정도는 아니더라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도덕심과 정의감을 가지고 있다. 사회를 이루는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역할에 대해서 그는 본인의 일을 충실히 해내는 사람이었다. 조커의 입장에서 구미가 당길만 하다. 그를 바꿀 수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게 될 테니까.


 존경과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 그 위치에서 무너질 수 있는 확률. 무너지고 나서 사람들이 겪게 될 파장의 크기. 조커는 충분히 계산했고, 계산처럼 보이지 않는 결정들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뤘다. 충분히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 만한 상황이었다. 미쳐있고 누구보다 비이성적인 사람이라 보였던 조커는 오히려 철저한 계산과 판단만 내렸다. 내면의 광기를 질서와 규칙 속에 통제하고 있던 하비 덴트는 모든 것을 잃고 타락한다. 헌신과 봉사로 본인의 역할을 다했지만 돌아온 것은 비극적인 일들 뿐이었다.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무작위의 확률로 사람들을 심판한다.


 큰 힘에는 그를 견제하는 큰 힘이 따른다. 정의라는 기준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만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단지 강자를 영웅이라 부르지 않고, 통쾌한 폭력만을 정의라 부르지 않는다. 정의를 지키는 일은 무척이나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정의가 무엇인지 묻기 위해서는.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다크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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