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나의 분실사
요새 부쩍 물건들을 잃어버린다.
체크카드 두 번, USB 한 번, 이어폰 한 번.
돈 주고 사는 물건들의 유대감이란 게 겨우 이 정도뿐이란 걸 느낀다. 관심과 걱정을 기울인다 한들 세상은 내 의지와 다르게 움직인다. 애정의 척도는 신경 쓰지 않는 세계의 무신경에 진저리가 난다. 일방적인 관계 속 어째서 왜 항상 피해는 나만 보고 사는 것 같은지. 너무 애정이 컸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예민한 탓일까? 그저 한 두 번의 불운이 아닌, 계획된 불행이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한다. 쑤시듯이 아프다기보다 빈자리가 문득문득 떠올라 아프다. 사실, 명징하게 아프다고 느끼진 않는다. 아프면 화라도 내겠지. 그런데 이 감정은 그러지 못해서 슬픔만을 만들어낸다. 공허하게 습관처럼 가던 손이 제 물건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게 될 때에 문득 슬퍼진다. 습관처럼 아끼던 것들이 내 손 끝에 머물지 못한다. 상실의 순간을 측정할 수 없으니 무턱대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감정은 그저 깊게 머문다. 응어리진 이 슬픔을 위로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화를 내는 일도 힘이 필요하다.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과는 별개로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 수준만큼의 힘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힘은 단지 근력에 대한 개념만은 아니다. 삶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낼 수 있는 능력도 일종의 힘이다. 나는 언제나 힘이 없었다. 당기고자 하는 일도 서투르고 밀어내고자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온데간데없이 버려졌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채로. 용자물 시리즈에 나왔던 로봇들. 내 그림 노트들. 100원, 200원짜리 캡슐에서 나왔던 잡동사니들. 그 모든 기억들은 내가 끌어안을 새도 없이 버려졌다. 너무 좋아했던 것들이 타의로 무심하게 버려지고 나면 기억하지 않으려 애를 쓰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커버린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번 일도 그렇게 기억하지 않으려 애를 쓰게 될 거 같다. 그 안에는 군대에서 썼던 노트들의 백업 파일들이 담겨있었다. 브런치에 올라갔던 글도 깔끔하게 다시 정리하고자 만들었던 파일도 있었다.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필요했던 이력서도 있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자잘한 계획들과 자료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슬프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써두고 보니 슬슬 화가 치민다. 나는 왜 병신같이 좋아하는 거 하나 지키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나. 그러고도 왜 겉으로 내색할 수 없는 인간이 되었나. 그런데도 왜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글을 남기고 마는가.
어느 시점이 되면 나의 세계가 조금 더 견고해질 거라 생각했다. 돈을 벌게 되면 그 시점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돈으로 가질 수 있는 것들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보다 간단했으니까. 힘 없이 분실당했던 유년기의 기억보다는 단단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해봤자 10만 원도 안 되는 돈이라 그렇게 잃어버린 걸까. 돌이켜보니 그 물건들이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해봤자 몇 달도 함께하지 않은 물건들에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걸까. 당기는 힘이 애정도, 돈도 아니면 도대체 무엇으로 길러야 하는 걸까.
엄마는 내게 기억하는 삶 대신 기록하는 삶을 주셨다. 유년기의 기억이 어려있는 물건들은 이미 온데간데 없어져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몇 안 되는 상장과 사진들로는 그 시절의 나를 찾아볼 수 없다. 그건 모범적인 학생으로 기억하고 싶었던 엄마의 욕심이지, 내가 생각하는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니니까. 이제 와서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기억해도 엄마는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이성적이지는 않아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나이 정도는 되니까 유년기의 내 모습은 그랬다는 생각을 한다. 기록을 향하는 삶은 기억할 수 없던 환경에서 만들어낸 자구책이지 않았을까.
상실감이 낯선 감정은 아니었는데 이번 일은 무척 타격이 크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글을 쓰려고 사전에 그 말을 쳐봤다. '분실'. 분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건 따위를 잃어버렸다는 말이라 한다. 너무 아픈 설명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어느 시간대에 그 물건은 훌훌 떠나버렸다. 더욱더 견고하게 성문을 닫아걸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내 안에서부터 무너지면 도저히 성벽을 세울 마음이 들질 않는다.
(사진은 영화 아비정전의 장면들이다. 글만 올리기가 심심하기도 하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에 이만한 영화가 있을까 싶기도 해서 사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