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예약을 하는 버릇이 잘 안 들다 보니, 어김없이 이번에도 애먼 시간 희생해가며 올라오게 되었다. 행사가 7시인데 3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탄다는 건 그런 의미다.5시면 도착하는 곳에서 굳이 시간이 많이 남았다며 천천히 가는 노선을 체험하는 일이다. 당신의 게으름을 시간으로 갚으라는 교훈을 몸으로 배운다. 그래도 크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시시포스가 돌을 굴리는 게 익숙하듯이 익숙한 문제가 발생할 때의 고통은 익숙하다는 감정이 전부다. 서울행 '버스'.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하며 내려오는 기차를 예약했다.
배움의 길은 언제나 가볍다. 내가 가벼워야 그만큼 많이 들고 갈 수 있다. 눈에 담고, 손으로 새기고, 발로 느끼면서 온전히 그 환경과 상황을 감각해야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신기한 건 배운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이 또 타지라면 오히려 더 신이 난다는 점이다. 혼자서 여행 가서 쉬는 것보다 마음이 더 편하다. 기이한 일이다. 일을 해보니 나는 적당히 쉬는 듯 일하고, 일하는 듯 쉬는 게 마음이 편했다. 성격이 그런 강박 없이는 일상에 긴장이 생기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다시금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고 애를 쓰는 이유도 그런 지점이었다. 긴장하지 않고, 흘러가듯 내버려 둔 일상에는 불필요한 지방 덩어리만 생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을 꽤 타이트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의 글자는 뼈대 없이 쌓인 더미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다시금 뼈를 만들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오늘의 상경길은 아는 동네 북 토크 때문이었다. 연남장은 예전에 와디즈로 투자를 해보고 나서 처음이었다.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서 2층에 앉아서 조용하게 공간을 봤다. 저녁 6시를 넘겼지만, 여전히 환한 바깥세상과는 다르게 연남장은 어두웠다. 가을이나 겨울에 한번 더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공간이었다. 공간의 전반적인 색깔이나 분위기와는 다르게 스크린으로는 큼지막한 파라솔이 큼직하게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강원도에 가본 적은 손에 꼽고, 지금 사는 것도 아니지만 홀리듯 북 토크에 참여했다. 어찌 되었건 지역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대규모 광산과 공장 단지를 기반으로 하는 '일'의 도시였던 곳의 현재는 달랐다. 서핑과 커피, 수제 맥주. 멋지게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동네였다. 한 겨울에 어른 키만큼 눈이 쌓이는 곳이라는 이미지에서 완전히 바뀐 것이다. 군생활이 떠올라야 하고, 제설작업이 떠올라야 하는데 해외 휴양지 같은 이미지가 남아있었다. 그것도 한 여름의 해가 쨍쨍한. 강원도의 이미지가 문화의 유입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문화의 변천사와 그 이유에 대해서 찾아가는 과정이 재밌었다. 고속도로의 개통, 1일 생활권이라는 가능성이 만들어낸 변화는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다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서핑이 커피와 연결되고, 수제 맥주와 연결되면서 지역은 의외성을 만들어냈다.
이런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1. 서핑, 커피, 수제 맥주. 세 가지 개별적인 아이템으로만 보면 이해되지 않는 맥락일 수도 있지만, 저 세 가지 키워드에는 강원도의 현재를 담아내는 흐름이 있다. 시작점은 교통 접근성의 향상이었다. 강원도와 서울을 잇는 고속도로의 개통.
2. 강원도. 세로로 길쭉한 이 동네가 과연 동해안을 제외하면 별도의 공통점이 있을까 하는 발상의 지점. 동향이지만, 물리적으로 너무 먼 '같은 지역' 사람들이라는 점도 생각해볼 여지를 많이 남겼다. 지역의 특성을 읽어내는 방향에 대해서 시선을 어떻게 둘 것이냐 하는 지점에서 이렇게 물리적으로 이해해볼 생각을 해보질 못했으니까.
3. 개인적인 생각인데, '장인'의 존재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도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쓸신잡'에서 지나가듯이 봤던 지식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4. 취향의 이식이라는 표현도 참 재밌었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 곳이었으면 좋겠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5. 살지 않는 동네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과, 살고 있는 동네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조화. 그 선을 맞춰 더 깊은 내용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 배움엔 끝이 없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