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머무는 곳

난생처음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봤다

by wanderer

2017년 여름,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시에서 공동체사업 예산을 받아서 공동체에 대한 아카이브 기록을 남기는 일을 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제가 대학 생활을 온전히 바쳤던 조치원에 대한 이야기이고, 세종시라는 낯선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깁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이 새로운 지역에 같이 모이게 된 지 6년. 제가 이곳에 온지는 이제 7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지나쳐간 이들을 보면서 이유 모를 헛헛함을 느꼈습니다. 단지 사람들 때문에 생겼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7년이라는 시간이 추억을 만들기에 짧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이곳은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이전의 조치원은 훨씬 더 야성적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곳은 무척이나 뜨겁고, 무척이나 차갑습니다. 평생을 '중간제일주의'로 살아왔던 저에겐 지극히 꺼려지는 곳이었습니다. (고향이었던 대전은 확실히 그런 부분에서는 저에겐 찰떡같은 동네였어요)


조치원은 사실, 대전에서 얼마 걸리지 않는 곳이라서 타향살이라는 느낌이 크게 들지는 않았습니다. 해봤자 대전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라서 고향을 떠났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거든요. 시내가 읍내로 바뀐다는 점이나 학교를 조금만 벗어나도 논밭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는 것만 빼고는 말이죠. 군대에 갔다 와보니 이곳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익숙했던 주택들이 원룸으로 변해서 6년 전과 전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익숙했던 식당의 위치가 바뀌는 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 졸업한다며 떠난 공간을 직시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에겐 조치원이 고향과 타향의 중간 그 어딘가로 남아있습니다.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했던 시간들로 말이죠.

조치원1

고민과 생각들이 깊어지던 때에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역할을 분담하고, 전화를 하고 예산을 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6개월 동안 세종의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촬영하고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마다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본 이곳은 이랬습니다.


다양한 색깔을 가져 다채로운, 그렇기에 오히려 외롭기도 한 곳


'고향'이라는 말이 주는 안락함에 비해서 세종시는 무척 연약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지역, 지역과 지역의 모든 연결고리가 그랬습니다. 학기 초의 분위기처럼 곳곳에 서투른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다른 공간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든 형태가 아니라 계획을 통해 만들어진 도시다 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너무도 다른 기준을 갖고 있었습니다. 같은 지역에 산다고 해서 함께 산다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은 그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사람들은 어울려야만 했습니다. 앞으로의 삶을 고민해야 했으니까요.
영상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학생의 시선이 아닌 주민의 시선으로 지역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나의 환경과 신분에 따라서 동일한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 그 일이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그랬던 것처럼 본인의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로 이곳을 받아들이니까요.

조치원2

촬영을 진행하면서 기억은 기록하는 자들의 것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록되지 않았던 생각과 감상들은 마치 그것들이 애초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양 흩어졌습니다. 도시가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곳이라면 이곳, 기억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지극히 자명합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겠죠. 답을 알면서도 고민이 되었던 부분은 답이 아니라 풀이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어요. 일단은 발품을 팔았습니다. 봄의 초입부터 여름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다녔습니다


입체적으로 이곳을 읽어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방향이 잡혔습니다. 이야기들 속에서 맥락을 잡는 것보다,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에 집중해보는 편이 더 나았습니다. 충분히 다양한 공동체를 촬영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중에서도 빈 부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분명 협업을 하는 식으로 더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공동체들이 있었지만 정보와 기회의 부족으로 이들은 연결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역 간의 격차도 있었습니다. 주민 간의 교류가 활발한 곳은 몇 번씩 같은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길 정도로 다양한 모임들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공동체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같은 데시벨로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환경에 따라 더욱 크고 작아집니다. 보통은 힘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수록 그 집단의 목소리가 커지기 마련입니다. 애초에 수가 적다면, 관심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집단이라면 목소리는 작아집니다. 듣는 입장에서는 모든 환경과 상황을 고민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고민을 지속해야 합니다. 카메라 뒤로 가만히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을 무척 많이 하게 됩니다. 말을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넘어 그에 담긴 의미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저는 개인의 고민을 넘어서 나의 위치와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무척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사는 곳을 바꾸는 이들은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니까요. 사는 공간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당장 나 하나, 우리 가족을 신경 쓰기도 바쁜 삶 속에서는 말이죠.

조치원 사진4.jpg 조치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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