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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Jan 09. 2020

그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영화 '맥베스'

 예언을 더 들어야겠소
 최악의 수단으로 최악의 결과일지라도
날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대의를 물리칠 것이오


 지옥 같은 전장을 뚫고 승리한 장군을 치하하는 과정이 부족했던 건가? 아니면 왕관을 얻는다는 것이 그렇게도 강렬한 욕망이었을까. 그 욕망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자신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겨우 몇 마디 뜻 모를 상징이 부추긴 욕망은 이루기 수월했다. 명령으로 살아왔던 이는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집념으로 일궈내는 전장 안의 승리와 전장을 벗어난 승리는 너무도 달랐다. 동기 없는 욕망은 부질없는 선언이다. 행동에 이유를 그 스스로는 찾지 못했으니 결과를 이야기해줘도 공허한 울음으로만 남는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계시와 예지. 왕이 되려는 자의 비극은 무엇이었을까?


 악심을 채워다오.

 기꺼이 악행으로, 기꺼이 왕관으로 향하게끔 해다오.


 맥베스는 욕망 앞에 순수하지 못했다. 나는 왕의 몸에 칼을 찔러 넣는 그의 모습에서 일말의 망설임을 봤다. 죄책이 손끝을 무디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리도 흥건한 피를 마주해야 했던 걸까. 그의 욕망은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다듬어진 것이었다. 타인의 목소리 없이 스스로 그 자리를 생각하는 것은 무거운 일이었다. 그 귀에 듣고 싶은 것만 담았으니 파멸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스코틀랜드는 가뜩이나 자욱한 안개와 바람 속 불안이 일렁이는 땅이다. 그러니 굳이 사람 때문에 더 어지러울 일이 생길 이유가 없어야 마땅한 땅인 것이다. 맥베스는 그 속에서 짙은 전투 화장으로 마음을 감추고 상대의 피로 범벅이 된 손을 들어 왕관을 자신의 머리 위로 올린다.


 때를 노리려거든 때에 맞게 행동하세요. 예언은 운명의 지침을 은유해 알려줄 뿐, 해석하는 이는 결국 사람이다. 때에 맞는 움직임이었을까? 조금 더 기다려도 괜찮지 않았을까? 어차피 결과라면 이때가 아닌 다른 때가 올 수도 있는 법이지 않을까? 갈팡질팡하던 맥베스는 어찌 되었든 때를 잡는다. 죄와 벌. 욕망은 강렬했고, 충동은 일시적이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선택했다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면 돌아선 등 뒤로는 단 하나의 후회도 남겨선 안 되는 일이다. 후회에 빠지는 순간, 돌아본 일생의 모든 시간이 원망스러울 테니까. 한 번 그릇된 선택을 하고 나서는 다음 선택에 거침이 없다. 그 시점에 내리는 포기의 용단은 무엇보다 강력한 생의 의지가 된다.


 그 모든 행동이 파멸로 이르는 선택임을 자각하고 있을지라도.


 유달리 맥베스는 정이 가지 않는 인물이었다. 오래전에 읽어 기억나지 않는 고전 소설 속 인물들 중에서도 그는 특히나 그랬다. 그에 비하면 리어왕이나 햄릿의 모습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좋았다. 아무래도 연민의 여지가 남는 사람들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맥베스라는 인물이 반갑지 않았던 이유, 어쩌면 그 이유는 나 또한 내 욕망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 또한 그처럼 수상쩍은 예언과 계시에 힘입어 지금의 욕망을 불태우고 있던 것은 아닐까? 무엇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잃어버리고 벌판을 헤매다 대적자를 마주친 그 모습이 떠오른다.


 공허한 욕망과 그 참담한 결과를 마주하는 그의 모습은 현대인의 초상을 닮아있다. 순수하지 못했던 욕망들, 홀린 듯 목소리에 이끌려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 세 마녀의 예언처럼 이미 결과는 나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받아들이는 이들이 지극한 인간이기에 벌어지는 일들일뿐. 결국,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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